영원과 사랑의 대화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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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이 인생이다이것이 삶인 것이다유로 있으려 하면서 무로 가는 것끝까지 스스로의 유를 보존하려 하다가 속절없이 무로 스며들고 마는 것누가 인간의 이러한 현실과 실상을 부정할 수 있으며이 엄연한 사실을 외면할 수 있겠는가?’

 

<영원과 사랑의 대화>야 말로 이 책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영원은 인간의 유한성이 주는 무한함에 대한 그리움을 말한다.

언젠가는 소멸하고야 만다는 그 유한성이 우리에게 영원에 대한 갈망을 심어준다.

하지만 그 영원이라는 이상과 언젠가 죽는다는 현실의 사이는 좁힐 수 없다.

그런 간극이 사람들에게 유한한 삶에 대한 고민을 가져온다.

 

어떻게 하면 끝이 있는 내 인생을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저자 김형석은 유의미한 삶으로 꼽는다.

 

그가 본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책을 앞을 주로 읽는다는 것을 아셨는지 감사하게도 그 요약을 이 책의 시작인 생활의 좌표에 넣어주셨다한 문장으로 더 짧게 요약해보자면 스스로의 문제의식과 신념을 가지고 이웃()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무엇인가?

 

내가 이 에세이에서 본 사랑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에로스만이 아닌 가족 간의 사랑이웃과 감사한 이들의 사랑살았던 곳에 대한 애정 그리고 더 나아가 신이 내게 주는 사랑까지도 지칭하는 것이었다.

 

유한한 인생에서 우리는 혼자 살아가지 않음을 김형석은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다모든 파트에서 그는 그의 주변 사람들과 신의 사랑을 강조한다.

 

왜 그는 사랑을 강조한 것인가?

 

인생은 혼자 살다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관계를 맺으며 사는 사회적인 동물이다.

우리는 그 관계 속에서 서로 조금씩 결이 다른 사랑을 주고받아 연대하며 살아나가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나의 인생을 의미 있게 사는 것을 논할 때 사랑을 빼 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는 신이라는 논란이 많은 존재의 사랑을 얘기하는가?

그는 단순히 그의 신앙을 전도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철학자이자 신앙인으로 신을 얘기한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이 무한과 영원에 대하는 고독은 누구도 해결 지어줄 수 없는 고독이다죽음을 앞에 대하는 것보다도 정신적으로는 더 뼈저린 고독이다무한이라는 무궁히 긴 시간을 혼자 영원히 걸어가야 하는 인간의 고독이다.’

···(중략)···

인생의 강가에 서서이제는 넘어야 할 허무의 흐름만이 있는 석양의 피안 저쪽에서 찾아주는 영원한 음성의 주인공이 사랑이다우리는 그를 신이라 부르기 때문에 영원에의 그리움과 갈망에서 오는 고독은 영원만이 해결지어 주는 것이다.’

 

인류학에서는 종교가 죽음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죽음을 목격한 인류는 자신들이 무한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이 주는 허무감과 공포를 달래기 위해 인간은 자신들과 달리 영원을 살 수 있는 신과 내세에 대해 상상하는 것이다.

그 상상을 구체화하고 현실화하며 그에 따라 가치 있는 삶을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 정교화 되면서 종교가 된 것이다.

 

신은 단순히 죽음 이후의 세계를 관장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탄생을 관장하기도 했다.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세계를 창조하고 우리 인간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종교에는 반드시 포함된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낸 것들을 사람이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듯 내리 사랑을 보여준다.

 

우리는 신을 영원과 사랑 그 자체라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하지만 영원을 그리워하는’ 철학자로서 저자는 신에 대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통해 인생을 보고 있지만 이 책은 사실 전혀 어렵지도 무겁지도 않았다. 1920년에 태어나 현재는 연세대학교 명예 교수를 하고 있는 저자의 삶의 이야기가 정말 진솔하게 펼쳐져 있다그가 살아오며 체득한 그의 수많은 정체성들이 녹아 내려 있는 그의 이야기들은 마치 시골집에 내려가 할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요새 말하듯 꼰대처럼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노오력을 하라고 잔소리 하는 책이 아니다.

첫 챕터를 읽고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끝까지 그의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저자가 젊은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차분히 그의 인생 이야기를 바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설득하는 에세이임을 알 수 있다.


어느 늦은 저녁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본 아버지께서 무슨 책을 읽고 있었느냐 물어보셨다. 1세대 철학자인 김형석 씨의 에세이를 읽는다하자 아버지께서는 사뭇 놀라며 젊을 적 그 분의 글을 좋아하셔서 김형석 씨의 책은 다 읽어 보셨다며 반가워하셨다.


56년 전 세상에 나온 책을 왜 지금 다시 낸 것일까?


그것은 아버지가 읽었던 책을 딸이 읽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세련되지만 진솔하게 인생의 정수를 담은 에세이집이라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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