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 만한 인간

쓸 만한 인간 - 개정증보판
박정민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9월

사실 나에게 배우 박정민은 그다지 관심 있는 배우가 아니다. 그래도 장르 불문 연기 변신을 하는 배우라는 것은 영화를 좋아하는 나에게 낯설지 않은 존재였다. 배우 박정민에게 애정이 없는 내가 이 책을 통해 인간 박정민을 만난다는 건 조금 망설여지는 일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박정민은 꾸밈없이 참 솔직한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 속에 잊혀자도 달라지는 것들에 대해 덤덤하게 이야기해주고 있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쓴 책에서 공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잠시 의문을 가졌던 내가 어느새 문장에 밑줄을 치며 메모장에 남기고 있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꾸밈없이 참 솔직한 것 같다. 책에 이런 대화체가 종종 나오는데 그 상황이 되게 자연스럽고 웃프다. 박정민에 대해 조금 관심이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이상하게 글의 끝은 대부분 위로와 격려의 말로 끝낸다. 글이 이상하다는 것이 아니라 신기하다는 것이다(사실 무슨 단어로 내 생각을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약간 츤데레같은 책이다. 나는 이렇고 이랬는데 너는 잘 할 수 있다고, 어제보단 오늘이 더 낫다고 무심하게 툭툭 내뱉는 문체가 매우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에 남는 문장들이 있는데 이 책에서는 '가만히 보면, 모두가 의외로 살아 있다.'라는 문장이 제일 와닿았다. 저 '의외'라는 단어가 주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생각을 주는 것 같다.

책은 단순히 위로와 격려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 메시지도 전하고 있다. 읽으면서 생각이 바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인간 박정민에 대해 관심이 쌓인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쓸 만한 인간' 짧은 단어들이 묵직한 울림을 주는 것 같다. 초등학생 때 학원 끝나고 길을 걷는데 누군가가 '이 쓸모없는 인간아!'라고 내뱉는 걸 들은 적이 있다(나한테 한 말은 아니다, 진짜로). 그때는 어린 생각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슬픈 말인 것 같다. 그 말은 살아갈 이유, 존재의 이유를 소멸시키는 말이다. 그때 그 말을 들은 사람의 얼굴을 보진 못했지만 눈은 텅 빈 채 엄청 암울했을 것 같다. 이 책을 그때 그 사람에게 선물해 주고 싶다.

정말 책에는 화려하고 어여쁜 문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덤덤하지만 묵직한 울림들이 있었다. 책은 우리 모두가 영화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나도 이 책을 통해 누군가의 영화 같은 인생을 엿볼 수 있어 재미있었고 위로받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