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 ㅣ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
펄 벅 지음, 안정효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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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후이에 닥친 기근은 왕룽이 가족과 대지를 떠나 남쪽 도시로 이주하게 한다. 노인인 아버지, 어린 첫째와 둘째 아들, 갓난쟁이 딸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화차를 탔고, 도시의 성곽 아래 구호소에 의존한 채 난민으로 기약 없이 입에 풀칠을 하며 버틴다. 왕룽은 오란과 결혼하고부터 재산을 쌓는 재미로 왕성하게 노동했다. 그 결과 황 대감으로부터 비옥한 논마지기를 사들였고, 풍족한 몇 해를 보냈다. 그러나 이곳 대지는 짧게는 5년, 길게는 7년 사이로 극심한 기근과 홍수가 번갈아 들었다. 이번 가뭄에 왕룽 가족은 모든 걸 버리고 오직 땅만을 말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남쪽 도시 성곽 아래 거렁뱅이로 전락했다.


2년의 극빈 생활을 아내 오란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 오란은 굶주림이 극에 달했을 때조차 단호하게 땅을 팔지 않는다. 미련없이 가구와 집안 물품을 모조리 팔아치워 여비로 삼았다. 남쪽 도시에 도착한 직후 여자인 자신과 아이들은 구걸로 먹고 살 수 있으니 남편은 돈을 모아 집으로 돌아갈 대책을 세우라고 조언한다. 만약 필요하다면 딸아이를 팔아서라도 모두 살아남아 돌아가는 방법도 있다고 말한다. 왕룽은 오란이 마찬가지로 굶주린 처지의 부모가 노예로 팔아넘겨 황 대감댁 계집종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너무 부유해진 부자들이 혁명으로 몰락할 때 기회가 생겼다. 피난한 도시 부자의 집에서 왕룽은 금화를, 오란은 보석주머니를 노략질했다. 이를 밑천 삼아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대지는 펄 S. 벅의 대표작으로 <아들들>, <분열된 집안>으로 이어지는 3부작의 첫 소설이다. 이야기는 왕룽이 오란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시작한다. 왕룽을 중심으로 그의 집안 가족들의 생애를 따라가고 있다. 안후이 농촌의 전근대적인 중국 가족의 삶과 풍습이 생생하다. 딸을 노예로 팔아치우는 부모, 전족을 강요받는 여성의 삶, 지주의 축첩과 축재라는 사회 문제를 놓치지 않고 다루지만, 이야기는 농부 왕룽이 대지와 맺은 “풍요의 약속”을 신화의 이야기처럼 전한다. <대지>는 도시화 이전의 삶, 농촌과 농사, 땅과 인간의 풍요와 생명력의 이야기이다. 이러한 농촌문명의 풍습을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성장하고 변모하는 인물인 왕룽의 시야를 따라서 모험하듯 체험해 볼 수 있다. 이야기의 인물들은 개성적이고 특출나다기보다는 관습적이고 전형적이지만 생생하고 강렬하다.


오란의 죽음 이전과 이후로 왕룽의 인생의 챕터가 나뉜다. 1부는 고난과 축재, 2부는 풍요와 병폐라고 할 수 있겠다. 아내를 맞이하기 위해서 황 대감 댁에 들렀던 가난한 농부 왕룽은 2부에 들어 대감 댁의 땅뿐 아니라 집까지 모조리 자기 것으로 사들일 수 있었다. 이제 자신도 대감의 입장에 선 것이다. 왕룽은 고민을 겪지만 평온한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아들들의 이야기는 다르다. 왕룽은 계집종 출신이었던 오란을 소중한 아내로 맞았고 땅에서 노동하며 스스로 일어선 인물이다. 그의 첫째와 둘째 두 아들은 어린 시절 남쪽 도시에서의 극빈을 경험했으나 이후 왕룽이 재산을 쌓으면서 노동이 면제되고 간단한 글공부를 배우며 땅으로부터 멀어졌다. 터울이 있는 막내 아들은

글공부를 시키지 않고 농부로 키웠다. 막내 아들은 형들과 다른 처우에 피해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는 모습에 있어서 아버지보다 어머니 오란을 닮았고 말수가 적은 점까지 물려받았다.


맏아들의 혼례를 보고 오란은 죽었다. 왕룽에게 오란은 몹시 가난하고 어려울 때 고생을 함께 겪은 아내로 말 그대로 조강지처(糟糠之妻)이다. 이어서 늙은 왕룽의 아버지가 죽었다. 옆집 남자였고 자신을 잘 따르며 집사 역할을 했던 칭도 죽었다. 이 집에서 이제 과거 가난한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가 사라졌다. 둘째 딸은 시집 보냈고, 백치 딸을 돌볼 사람이 없어 자신이 돌본다. 집안에서 오란이 묵묵하게 맡았던 조화는 사라졌다. 첫째와 둘째 아들의 며느리가 싸우고,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로 인해 골치를 썩지만 아편을 제공해서 무마시켜나간다. 위협이 되던 종제가 전쟁터를 찾아 떠났기 때문에 왕룽은 한시름을 덜었다. 이런 그에게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친다. 막내 아들이다. 막내 아들은 배움을 원했다. 왕룽은 농사일을 맡겨 막내 아들만은 농부로 키우려던 생각을 접었고, 가정교사를 붙여줬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왕룽의 말년은 조용히 흘러갔다. 종제의 위협마저도 지니고 있는 재산이라 할 수 있는 계집종을 한 명 내주면서 파국을 피했다. 늙은 롄화 대신 몸종이던 어린 리화를 취했다. 평온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고 체면이 조금 상하지만 원하는 건 모두 가졌고 표면적으로는 두 아들도 자신의 뜻을 따랐다. 그러나 막내 아들만은 달랐다. 자신에게 대드는 막내 아들에게 원한다면 계집종을 줄 수 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농엔과 눙웬에게는 어린 리화를 애첩으로 삼은 것을 보이는 것이 껄끄럽지 않았다. 막내 아들에게는 달랐고 두려움을 느꼈다. 

“전 이제 군대에 가겠어요. 이제 전 떠나야겠어요.”

막내 아들은 리화를 애첩으로 삼은 것을 문제 삼고 대들지는 않았지만 “왕룽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별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이 아들이 갑자기 두려워졌다.”


<대지>의 후속편 <아들들>로 이어지는 30장의 이 부분은 이야기의 경첩이 되는 부분일 것이다. 여기서 독자들은 (1) 왕룽과 막내 아들의 관계가 어떻게 끝났지, (2) 막내아들이 두 형 농엔과 농웬과 어떤 다른 감정과 동기를 지니고 살아갈 것인가를 어렴풋하게 가늠해보게 한다. 오란은 26챕터에서 죽었고, 30챕터에서 막내 아들이 농부 역할을 면제받았다. 왕룽은 가부장으로서 자식들의 인생을 자신 뜻대로 결정해 왔으나 자식들은 대체로 따라주지 않았다. 장남은 위신을 위해서 가르치고 재물을 대주었고, 차남은 잇속을 챙기기 위해 곡물상으로 밀어줬다. 그 결과 장남 농엔은 허례허식과 허영으로 가득한 놈팽이가 되어갔고, 차남 농웬은 자기 결혼식 하객에게도 고기와 음식을 아끼는 재산만 쫓는 자로 성장했다. 왕룽이 베풀어준 도움이 좋게 작용한 적이 별로 없고 아들들의 본성의 나쁜 면이 더 무성하게 자라나게 했다. 그에 비해 어머니가 죽기 전까지 막내 아들은 하인이나 일꾼처럼 농사일만 하고 컸다. 오란과 막내 아들이 닮은 지점들이 연결된다. 참고 견디는 이들에게 왕룽은 무심했고 이들은 굳은 결심을 가진 채로 세월을 견뎠다.


<대지>의 풍요는 정의로움과 관련이 얕다. 자연이 주는 벌과 선물은 짧은 인생사를 예측불허하게끔 만든다. 누가 부를 쌓을지, 누가 번성할지에 있어서 대지가 요구하는 자격 조건은 무엇일까? 아무튼, 왕룽은 대지의 풍요를 누렸다. 재산과 처첩, 자손과 수명에 있어서 은혜를 입었고, 그렇기에 그는 두 아들이 땅을 팔아치울 생각임에 분노한다. 대지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펄 S. 벅의 필체는 다음 시대를 예고했다. 막내 아들은 천하를 주유하는 삶으로 나아간다. 중국 역사의 최대 혼돈기이기도 했던 이 시대 왕룽의 자손들은 무엇을 마주할 것인가? 왕룽과 오란에게는 굶어죽지 않기 위해 찾았던 남쪽 도시였고, 맏아들에게는 향락과 도피의 장소였던 남쪽 도시였다. 작가의 펜은 막내 아들의 발걸음을 따라 남쪽 도시를 향해 천천히 옮겨가고, 수많은 도시와 전장의 사람들이 쏟아내는 젊고 빠른 말 속으로 뒤섞이며, 그들이 말했던 것보다 더 거대한 현대의 태동을 향해 약진할 것이다.




추기

  1. <대지>의 배경은 어림잡아 1900~1910년대 초반이다. 이때 중국의 도시화율은 10%에 미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UN이 추정한 2025년 기준 세계 인구의 45%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1. 막내 아들이 친모 오란에 대해서 더 깊은 정을 느낀다는 것이 소설에 표현된 부분은 없다. 부자가 된 이후 왕룽은 아이들에 관심을 잃고, ‘롄화’라는 첩을 들이고 재산의 즐거움을 느끼는 데 몰두한다. 막내 아들은 이 시기 사춘기를 겪으며 성장했을 것으로 보인다. 롄화 사건이 정점을 치고 수그러들즘에 오란은 병으로 수명이 다하고 재산을 누려보지 못하고 일찍 죽는다. 가부장질서에 따라서 글공부를 했던 농엔과 농웬에 대해서 어머니 오란은 자신이 모셨던 황 대감댁의 도련님들처럼 엇나가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왕룽에게 돈을 받아 서당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첫째와 둘째 아들은 어른대우를 받으며 오란의 품을 벗어난다. 오란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세번째인 백치 딸과 그 아래 막내 아들, 막내 딸이 많았을 것이다. 백치인 딸과 시집으로 떠난 막내 딸의 이야기를 알 수 없고, 막내 아들만이 가부장 왕룽에 대적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이 막내 아들의 입장에서 볼때, ‘자신이 겪는 것보다 부당한 대우에 순종하는’ 어머니 오란의 죽음 다음인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오란의 죽음 이후 막내 아들의 이탈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된다. 오란의 죽음은 이미 싹트고 있던 막내 아들의 이탈과 결단이 새로운 국면으로 넘어가는 서사적 경첩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


  1. 오란의 존재는 훗날 토지개혁을 다룬 중국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들이 형상화한 ‘고대구심한 노동인민’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그러므로 중국 현대문학의 혁명적 서사와 비교할 때 펄 S. 벅의 접근은 다른 방향에 서 있다. 오란과 같이 가장 미천한 사람이 때론 가장 강인하고 지혜로운 존재로 그려지고, 주목받지 않던 막내 아들이 미래를 열어가는 점에서 그러하다. 《대지》의 후속편 《아들들》의 서사 구조는 약한 자가 뒤집는 성서의 문법과 닮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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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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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는 어떤가? 만 28살 남자는 결혼을 했고 교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라는 별명의 친구와 이런저런 강연을 들으러 다니고 곤충 채집과 모래 연구가 흥미를 가진 인물이다. 정신적인 성병을 앓고 있었지만, 그것도 특별한 질환은 아니었다. 8월 어느 날, 곤충 채집을 위해 모래 마을을 향했던 이 남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그가 실종된 진정한 이유를 모르는 채 7년이 지나, 민법 제30조에 의해 끝내 사망으로 인정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모래 마을’은 어떤가? 그곳에서 남자는 모래의 여자와 어느 구덩이에 감금당했다. 처음은 도망가고자 하는 원초적 욕구로 가득했다. 이곳에 갇혀 있는 것 자체가 벌이었다. 그러나 지금 남자는 유수장치에 관해 느끼는 흥분에 도취했다. “도주 수단은, 그다음 날 생각해도 무방하다.” 무인도를 문명화하려고 분투했던 로빈슨 크루소와 달리, 남자는 모래 환경의 생리를 발견-탐구하는 유희를 즐긴다. 벌이 없으면, 도망치는 재미도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모래를 파헤치는 사이 7년이 넘는다. 남자는 실종선고를 받는다. 니키 준페이, 1927년 3월 7일생. 만 35세 때다.


‘사회’와 ‘모래 마을’은 어떤가? 결말에 도착한 남자에게는 더 이상 ‘사회’와 ‘모래 마을’을 서로 다른 두 공간으로 나눌 이유가 없다. 이 점은 탈출할 동기가 사라졌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사회’와 ‘모래 마을’을 분절된 두 공간으로 인식하기를 멈춘다. 남자는 이전까지 사회와 모래 마을의 관계를 중심과 주변, 안과 밖처럼 인식했고 자신이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기대했다. 그러나 남자가 놓인 이 초현실적인 공간의 구조가 뫼비우스의 띠와 닮았다면 어떨까? 더 이상 어디로 이동해도 탈출할 수 없다. 더욱이 이 공간에서는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을 통한 탈출이라는 개념의 의미 자체가 부재한다.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밖’이라는 다른 영역에 도달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뜻이다.


구덩이에 갇힌 남자에 대한 정보는 극히 적다. 그의 과거에 대해서는 그의 기억 속 두 명의 인물과의 에피소드가 전해지는 게 전부이다. 그는 모래 마을 이전에도 인생이 만족스러웠던 인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아내로 보이는 여자가 있고, 두 번째로 뫼비우스의 띠라는 별명을 가진 동료교사 친구가 있다. 남자는 단출한 인간관계만을 자랑하지만 특이한 에피소드를 전달한다. 남자는 아내와의 관계에서는 반드시 콘돔을 사용하는 규칙을 지키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아내에게 ‘상품 견본을 교환하는’ 그런 거나 다름없는 관계를 갖는다는 섹스에 대한 불평을 듣는다. 그가 콘돔 없이는 발기부전에 빠지는 불능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으나… 직장에서 만난 친구와는 활발한 교사노조 활동을 하고 있다. 사복 경찰이 감시하는 강연에도 참석했던 적이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뫼비우스의 띠이다. 이유는 친구의 ‘직장과 사생활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모래의 여자>의 공간에서는 “곤충 : 모래 = 인간 : 사회”라는 유비의 비례식이 성립한다. 곤충 포획을 위해 모래 마을을 찾은 남자는 포획당한다. 마을 사람들이 그의 신원을 묻더니 관청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란 것을 확인했다. 그는 모래의 여자가 사는 구덩이에 갇혔다. 이곳에 온 까닭은 Cicinaledela Japana Motschulsky라는 학명을 지닌 곤충을 찾고자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모래에 갇혔다. 모래: 암석의 파편의 집합체. 때로 자철광, 주석, 그리고 간혹 사금을 포함하고 있다. 직경 1/16~2mm. 채집하고자 하는 곤충의 생태를 연구하면서 모래라는 물질에 대해서 알게 된 흥미로운 사실이다.


남자는 며칠이 지나도 구조되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은 그가 아무리 절규해도 들을 채 하지 않았다. 이곳에 완전히 붙잡혔다. 인간이 모래 구덩이에 갇혀 살 수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도주하였으나 실패했다. 마을 사람들에게 “살려달라” 애원하여 구조되어 다시 모래의 여자의 구덩이로 돌아왔다. 모래의 여자는 라디오를 살 수 있을 돈을 모으고자 구슬을 꿰는 부업에 열심이다. 남자는 희망을 갖고 새를 잡기 위한 장치를 만들었다가 우연히 “유수장치”를 개발한다. 모래 구덩이에서 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고, 왜 이 모래가 나무집을 부패하게 하고 무너뜨리는지도 납득하였다.


남자는 모래의 여자가 마치 곤충의 개체처럼 모래 환경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사실에 경악한다. 강제로 제압하고 마을 사람들을 유인해서 탈출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나서 남자는 모래의 여자와 강압적인 섹스를 한다. 모래의 여자는 순응하고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다고 밝힌다. 전 남편과 아이의 뼈가 이곳 모래 어딘가에 묻혀 있으며, 폐허의 시대 끊임없이 걷다가 겨우 도착한 이 모래 마을을 떠나서 어딘가로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모래의 여자는 돈을 벌어서 라디오를 사고 싶다는 욕망을 거듭 말하고 결국 산다. 마을 사람들은 모래를 퍼내서 도시의 건축업자들에게 팔고 있다고 한다. 남자는 소금기 많은 이 모래를 사용하면 부실공사이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하지만, 여자가 말한다. “무슨 상관이에요. 그건 남의 일이야. 어떻게 되든!”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탈출하고자 했던 남자가 모래 마을을 더 이상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으며 끝난다. 물을 얻을 수 있는 “유수 장치”를 통한 실험에만 관심이 사로잡혀 있다. 왜 그의 태도가 바뀌었을까? 정신질환적인 해석도 가능할 테지만 나는 지양한다. 그가 지내면서 모래의 여자와 쌓은 관계 때문에 떠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다. 모래의 여자와의 섹스에서는 콘돔이 없이도 원만하고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다른 그 무엇보다 그가 모래에 대한 탐구에 재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구덩이에 감금된 이후 모래의 여자와의 관계에서 노동과 섹스를 충족했으나 그가 이 모래 마을에 처음 찾아온 까닭인 관찰과 탐구의 유희는 얻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점은 결말에서 충족된다. 그리고 남자는 탐구를 계속해 나간다. 마치 곤충이 자신에게 주어진 생태환경에 맞춰서 다른 독특한 형태로 자신의 종을 진화시켜 나가듯이 남자는 모래 마을에서 변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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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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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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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 최신개정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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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는 순례자다. 우리는 그를 폐교회에서 처음 만난다. 사제가 되어야 할 재목이었다. 여행을 꿈꾸기에 소명을 거부했다. 사제는 교회를 위해 살아간다. 마치 양치기가 양을 위해 살아야 하듯 메여 있다. 아버지는 허락한다. 아들에게 재물을 주고, 아들의 바램대로 양을 살 수 있게 해준다. 아버지의 눈에 산티아고는 그다지 다른 삶을 살지 않는다. 안달루시아를 떠나지도 않았고, 선한 목자가 되었다. 금새 마을 소녀와 눈이 맞아 정착할테지.


그러나 신은 다시 산티아고를 부른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날 것을 허락했던 아버지에게 산티아고의 여흥은 기다릴만 했지만, 양들에게 메여 음식과 물만을 찾아 다니는 산티아고는 가여웠는지, 꿈을 보낸다. 소년은 지상의 기적을 꿈꾼다. 사막과 피라미드가 보이는 꿈. 그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집시 여인은 그곳에 보물이 있다고 한다. 살렘의 왕을 만나게 된다. 아불싸, 정착하긴 틀렸군. 이때 양 10분의 1을 내놓는다.


해협을 건너 탕헤르 항구에서 남은 양을 모두 잃는다. 사막을 건너긴 틀렸다고 생각이 들었을쯤 살렘의 왕의 조언과 두 돌맹이가 아직 남아 있단걸 상기한다. 크리스탈잔을 팔고 돈을 모아서 다시 떠날 준비를 한다. 아랍어도 배운다. 이때, 전재산을 지불한 대가로 얻은 것은 다른 장소에서 사는 경험, 여행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익힘, 메카로 떠나는 것이 꿈이지만 결코 떠나지 못하는 중년의 인생과 마주함이다. 양치기를 버리니 사막을 건널 준비가 조금은 되었다.


산티아고는 되돌아가서 다시 양치기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지상의 기적과 보물에 이끌려 사막을 건넌다. 책에 파묻힌 영국인을 만나다. 그는 연금술을 공부한다고 한다. 산티아고도 연금술을 배워보려 하지만, 그에겐 사막이 더 유혹적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여정과 밤의 휴식과 모닥붉. 부족간의 전쟁이 이어지는 두려운 땅. 양들마저도 살아남을 수 없을 정도로 척박한 땅. 광야이다. 아랍어를 배웠듯 사막에서 사막을 배운다. 살렘(오아시스)에 도착한다.


왜 피라미드일까? 예루살렘은 무너졌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 함께 한다면 어째서 로마에게 무너졌겠는가. 피라미드를 향해 떠나는 여정은 오아시스 마을에서 잠시 멈춘다. 파티마를 만난다. 소년과 소녀는 사랑한다. 매의 오멘(표지)을 읽는다. 습격이다. 사랑하는 소녀와 살렘을 지키기 위해 소년은 목숨을 건다. 마크툽. 낙타잡이에게 배운 아랍의 아멘. 산티아고는 쓰여진 것을 바꾸었을까? 그가 쓰여진대로 지켜낸 것일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연금술사가 나타나고 그에게 말한다.


너는 누구이길래. 감히 오멘을 읽는가. 어째서 이곳에 있고 어디로 향하는가 말한다. 파티마를 두고 떠난다. 재회를 꿈꾸며 더 깊은 사랑을 느낀다. 파티마는 무하마드의 넷째, 막내 딸의 이름이기도 하다. 그녀의 위상은 그리스도교의 성모에 비견될 만하다. 오아시스에 다다른 소년은 자신이 이미 지상의 기적들을 마주하고 있다는걸 여렴풋하게 느낀다. 파티마의 가호였을까? 산티아고는 예언을 행했다. 연금술사는 어린 예언자에게 길을 인도하기 위해 사막을 건넌다.


사막에 갇힌다. 부족 전쟁에 휘말렸고, 모든 재산을 내놓았고 간신히 사흘을 벌었다. 연금술사는 담담하게 말한다. 충분한 시간이다. 바람이 되어여라. 나는 이미 바람이 될 줄 안다. 소년은 기적을 행하여야 살아남는다. 오랜 성서의 숱한 예언자들처럼. 다행하게도 바람이 되기만 하면 된다. 불도 물도 대지도 아닌 바람이다.  연금술사는 물질만이 아니라 영혼을 꿰뚫어보고 연성하는 대가인듯 하다. 산티아고는 그는 본디 순례자이고 그는 살아 숨쉬는 이상 여행하고자 한다.


숨을 쉬는 것과 바람이 되는 것은 산티아고에게 있어서 같다. 모두 여행이란 자아 신화를 향한다. 납이 금이 되는 연금술의 변환처럼 둘은 서로 뒤바뀔 수 있다. 사막의 인간은 사막을 통해 이 진리를 느끼지만, 이것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죽는다. 인간은 진리의 문을 오직 죽음 다음에서야 마주하게 되고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며 잊는다. 그러나 그 진리가 어딘가 쓰여져 있단 것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창조를 보고 싶고, 완성을 보고 싶고,  연금술을 보고 싶어한다.


바위 산에 오른 소년은 모르는 사막을 부르고, 사막은 바람을 부르고, 바람은 태양을 부른다. 이들에게 소년은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자연은 진리를 안다. 그러나 사랑을 모른다. 소년은 자신의 목숨과 사랑을 알려주겠다는 약속을 통해 신을 만날 수 있게 된다. 산티아고의 여러 여정 중 하나의 여정이 이곳에서 끝난다. 신을 향한 여정이 완성된다. 기적이 완성되고 바람이 된다. 소명을 거부했던 이유는 교회가 아닌 신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렇기에 파티마가 인도해줬던 걸까.


이후 여정은 피라미드를 향한다. 연금술사가 납으로 금을 만드는 연금술을 보여주지만, 소년은 배우지 못한다. 산티아고는 숨쉬는 생명으로부터 바람이 되어, 원소가 되어 자신의 연금술을 보여줬다. 굳이 더 배워야 할 이유도 가르쳐줘야 할 이유도 없었다. 연금술사 자신이 금을 연성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둘은 헤어진다. 소년을 아들이라 부른다. 연금술사에게 천사가 깃들 것일까? 알 수 없다.


이때, 소년에게 연금술사는 그리스도를 만난 로마의 백인대장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어째서 이 기도가 널리퍼졌는가. 연금술사는 그때 평범한 사람이 기적을 행하는 것을 보았다. 신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기적이다. 소년이 바람이 되는 것 또한 잊혀지지 않을 이야기가 될 것이라 말한다. 소년의 일생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기도할 때 마음 속에 그리는 이야기로.


마지막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꿈을 꾸었지만 안달루시아 교회로 떠나지 않은 청년은 아무 것도 겪지 않았다. 그는 보물이 그곳에 묻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악한지 선한지 알수 없을 유혹에 따르지 않았다. 나 같은 놈들이 세상에 널렸는데, 그곳까지 간다고? 그건 너무 위험하잖아. 산티아고는 바람보다 빠르게 재회하고 싶은 사막의 여인을 만났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보물은 거기에 있다.




여기서부터는 나의 추측이다.

1. 파티마는 성모 마리아다. 산티아고는 그 소녀를 다시 만나진 못한다. 이 소설의 모든 인물들은 산티아고를 제외하고는 보통명사로 이름붙여져 있다. 파티마 예외일까? 아닐 것이다. 그녀는 사랑을 가르친다. 기적을 향하게 한다. 그리고 널리 여행하게 한다. 파티마는 포르투칼의 도시의 이름이기도 하다. 코엘료는 포르투칼어로 글을 썼다. 아래는 위키피디아 파티마 항목이다: “파티마의 유명한 성지인 대성당은 1917년 세 어린이가 파티마의 성모를 목격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름이 무엇이냐는 어린이들의 물음에 대해, 여인은 “나는 로사리오의 성모다.”라고 대답하였다. 어린이들은 코바 다 이리아라고 불리는 목초 지대에서 성모 발현을 경험한 것이었다.”


2. 보물은 폐교회에 있거나 없거나 알 수 없다. 신은 결코 부를 약속하진 않는다. 스스로 일궈내는 것이다. 건강과 생명의 은총만을 내려주지 부를 내려주진 않는다. 낙태잡이 아저씨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라. 그렇다면 첫 장면의 폐교회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째서 산티아고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할까. 나는 그곳에서 산티아고가 파티마를 만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아시스를 지나서 파티마를 데리고 교회로 가도 되는 것인데, 어째서 먼저 보물을 얻고 파티마와 재회할 것을 꿈꿨을까?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보물은 파티마다. 소녀로 발현했던 성모가 이번엔 진정한 모습으로 산티아고를 기다린다. 내가 생각하는 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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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 - 최신개정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최정수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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