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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하는 정신 -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유유 / 2012년 9월
평점 :
슈테판 츠바이크의 시대가 몽테뉴의 시대와 닮은 만큼 나의 시대도 그들의 시대와 닮았다. 나의 시대는 전 세계적 재블록화와 정체성 정치로 인해 분열하고 있다. 내가 처한 시대로부터 물러나는 ‘체념과 물러섬’을 몽테뉴로부터 얻었다. 역사의 광기는 반복되고 있지만 휘말리지 않기를 선택하는 인간이 있다는 사실, 이것이 주는 위로가 깊다.
생애 말년 슈테판 츠바이크는 16세기 인문주의자 중 한 명인 몽테뉴의 삶을 담은 책을 유고로 남겼다. 이 유고 덕분에 몽테뉴가 겪은 종교전쟁의 시기와 슈테판 츠바이크가 겪은 파시즘의 시기라는 유럽사의 두 극단의 시대를 두 인물 사이의 대화로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나치의 승기가 꺾이지 않던 1942년 망명지 브라질에서 자살을 선택했다.
유고로 남은 미완성 원고를 읽는 것은 생전에 출간된 저서를 읽는 것과는 다른 친밀함이 있다. 때문에 내게 이 책은 두꺼운 편지로 여겨진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의 선생님이 화자 ‘나’에게 책 한 권 분량의 편지를 유서로 남긴 것과 같은 비감함과 내밀함이 있다.
그의 유고는 위로하는 정신의 공간으로 남았다. 그들의 편지에 대한 답장을 나는 이 지면에 남긴다. 몽테뉴처럼 어느 나이에 성벽 속의 성채로 물러나지 않더라도, 잠시 내 시대로부터 ‘체념하고 물러서는’ 용기를 지닌다면 나의 치타델레에 머물 수 있다. 나의 치타델레를 갖기 위해서 재력도, 타인의 성채를 빼앗는 일도 필요하지 않다. 만나고 대화하는 시간 뒤에 우편을 주고받는다면, 우편의 그 지면이 치타델레이겠다. 우정이란 자신의 치타델레에서 타인의 치타델레로의 편지 교환이다.
“나는 어떤 믿음과 이상을 따라서 격하고 부조리한 망상을 쫓아서 지혜와 멀어졌는가?”
나의 치타델레를 갖고 싶었다. 나는 고전과 역사에서부터 해법을 얻고 싶어서 책을 사 모았다. 골동품 수집가의 창고처럼 내 방이 어지러워졌다. 골동품과 고서를 모아두는 일에 내 정력을 소진했다. 나의 서재가 작아 보였다. 박물관을 꾸려놓지 않으면 탐구를 시작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더 좋은 박물관은 어디에 있는가를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할 작품이 갖고 싶었다. 나만이 내 공간에서 관람한다면 어쩌면 내가 다른 사람은 모르는 대단한 것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나는 학교를 찾아서 그곳의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 지식에 대한 탐욕은 인문주의자들의 길이 아니다. 지난 시대의 형이상학적 욕망을 나의 시대의 이해의 대체품으로 삼을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은 우월한 텍스트란 존재할 수 없다. 내가 자기 자신으로 머물 수 있는 공간이라면 족하다. 치타델레는 성벽 속의 성채도, 사원들의 사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식의 축재로부터 치타델레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기만이고, 이것은 마술적인 사고에 가깝다고 하겠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었다. 그래서 고전을 열심히 많이 읽었다. 저절로 글을 잘 쓸 수 있게 될 거라고 믿었다. 주문을 암송하는 것과 같았다. 몽테뉴의 길과는 다른 길이었다. 나와 닮아 보이는 대가를 서둘러 찾고 그를 닮으려고 들었다. 그와 나와의 동일시 아래서 읽은 텍스트는 모두 내 것이 된 것으로 보였다. 도스토옙스키가 내게는 그런 작가였다. 서재를 더 채워서 만족감을 누렸지만, 이 길 또한 살아가며 우정을 쌓는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을 만들어 그에게 의탁하기였다. 그가 나를 가르칠 수 없는 것까지 나는 그에게 바랐다. 그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은 내가 그를 통해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내 감정만큼 컸다. 몽테뉴는 내게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내가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을 일깨워준다. 그는 내게 다정한 우정의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나를 위해 쓰는 기쁨을 느껴라.
몽테뉴는 누구도 그가 “유명하다”, “다들 좋아한다”,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 말하지 않는 사람이다. 되도록 자기 자신과의 대화에 시간을 보내고자 했던 그는 내게 너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라고 한다. 기억력을 괴롭히고, 좁은 방을 더 좁게 만들고자 책을 사라고 하지 않는다. 자신과 대화하는 때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 생각의 흐름을 느낄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내 마음이 흐르는 곳에서부터 내게 편지를 쓰듯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