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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이동 경로
김화진 지음 / 스위밍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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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창작이 재료가 되곤 하는데, 특히나 아픈 기억은 오래 남고 몸에 각인된듯 떠나지 않고 한다. 사랑과 이별의 기억도 그런 타입이라 할 수 있다. '피망이'는 솔아가 지원과 몸이 닿았던 순간에 만들어진 기억이고, 풋사랑이란 의미를 품고 있다. 이젠 공룡처럼 사라져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그 시절의 그 기억. 솔아가 더 좋은 사랑을 하고 살아갈 미래가 있다해도, 그 시절 지원을 사랑했던 그 풋풋하고 귀엽던 피망이처럼 사랑했던 솔아는 돌아오진 못 한다. 피망이는 몸에서 지워져 기억으로, 솔아의 곁 어딘가로 숨어 들었다. 만화를 그리고 글을 쓰고 타투를 그리는 이 세 친구들에게 모두 공룡이 있었고, 각자의 공룡의 의미가 다르지만 겹치는 이미지들이 있다. 모두 픽션을 만드는 사람들, 현우는 조금 다르다. 그는 항상 비평가마냥 얘기하고 신문에 글을 쓰는 문화권력이니까. 솔아에게 '파망이'가 사라졌을 때, 병원에서 온갖 진단을 받고, 어디 숨었는지 열심히 찾는다. 이런 귀염성이 있는 솔아한텐 언젠가 '피망이'가 다시 돌아와 줄 거 같다. 그렇게 열심히 찾은 걸 기억해 줄테고, 지원이 보내준 부채로도 돌아왔고, 나중엔 솔아가 써낼 픽션 속에 '피망이'가 숨어 있어 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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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이동 경로
김화진 지음 / 스위밍꿀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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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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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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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이란 엔진으로 달리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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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 출간 20주년 기념 개정판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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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소설을 범죄자의 인격 해부로 읽겠습니다. 〈퍼레이드〉를 신뢰할 수 없는 서술자를 내세운 심리 서사물로 간주하는 입장입니다. 비슷한 결을 가진 작품으로 영화 〈버닝〉(원작: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 〈택시 드라이버〉, 〈셔터 아일랜드〉를 들 수 있는데, 다만 이 글의 해석이 구조적으로 가장 가까운 건 〈셔터 아일랜드〉예요. 다중인격이라는 틀 자체가 그쪽에 더 가깝습니다. 〈버닝〉과는 "애매성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방향은 달라요.

제 가설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설의 등장인물들 — 미라이, 요스케, 고토미, 사토루 — 은 나오키라는 인물의 해리된 자아들이며, 소설의 표면 서사는 나오키의 분열된 내면이 만들어낸 구성이다.

이 해석은 소설의 미스터리를 완전히 해소하지 못합니다. 이건 해답풀이가 아니라 결말이 남긴 질문들을 따라가는 사후적 재구성이에요. 다만 그 재구성 과정에서 표면 서사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장면들이, 이 가설 아래에서는 오히려 일관성을 가집니다.

시작하면서 한 가지만 짚어두겠습니다. 요스케 챕터에서 "프로이트의 심층"이라는 표현이 등장해요. 작가가 직접 이 소설에 심층 심리학의 독법을 적어 넣은 것인지, 아니면 요스케라는 인물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언급이 텍스트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소설을 심층적으로 읽으려는 시도에 일종의 허가를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건의 재구성

나오키와 룸메이트들의 출현 순서, 그리고 소설 안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은폐된 기억들은 깊이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소설의 표면 서사를 따라가면 다음과 같은 순서가 됩니다.

① 미라이 — 강간의 외화(外化)

나오키와 미사키 사이에 강간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나오키의 자아는 분열하여 미라이라는 인격이 출현합니다. 미라이는 강간 테이프의 존재를 통해 처음 소개되는데, 이 테이프는 나오키 자신의 범행 기록입니다. 그런데 서술 안에서 미라이는 피해자처럼, 혹은 목격자처럼 등장해요. 이게 핵심입니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자기 바깥의 사건으로 처리하는 것 — 이건 해리의 전형적인 방어 구조입니다.

나오키와 미라이가 공유하는 속성이 있어요. 둘 다 폭음형 알코올 중독자예요. 표면 서사에서 미라이는 나오키와 미사키의 결별을 가볍게 언급합니다. 이건 나오키가 자신의 범행 이후 미사키와의 이별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② 요스케 — 책임 회피의 외화

미사키는 나오키를 피해 401호를 떠납니다. 나오키는 미사키의 집을 반복적으로 찾아갑니다. 이것이 요스케의 행위가 은폐하고 있는 진실이라고 저는 읽습니다.

요스케는 우메사키 선배의 여자친구 기와코가 자신을 유혹했다고 말합니다. 기와코가 먼저였다는 서술, 아침에 남동생에게 발각된 후의 기이한 울음 — 이건 책임을 타인에게 귀속시키면서 자신은 피해자 혹은 어린아이로 퇴행하는 방어입니다. 나오키와 요스케의 공통점은 단순히 "책임 회피"만이 아니에요. 더이상 자신의 파트너가 아닌 여성을 향한 집착을 공유합니다. 기와코는 선배의 여자친구이고, 미사키는 이미 이별한 연인입니다.

요스케가 다른 인격들과 달리 남성이라는 점은 이 구도의 예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요스케는 자기 행동의 주체로 완전히 기능하는 인격이 아니에요. 기와코의 유혹을 받고 떠밀리듯 행동한 뒤 아이처럼 무너지는 요스케는, 나오키의 행위성을 외부로 넘기는 방식에서 미라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집니다.

③ 고토미 — 망상적 재결합의 외화

나오키는 미사키와 언젠가 재결합할 거라는 믿음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고토미는 마루야마라는 남성 연예인의 연락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는 인물로 소개됩니다. 미라이, 고토미가 모두 여성 인격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나오키는 자신이 원하는 관계를 여성의 위치에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고토미와 마루야마의 관계는 나오키와 미사키의 관계에 대한 나오키 측의 망상적 구성이에요.

고토미의 낙태 문제에 나오키가 깊이 관여하는 표면 서사는, 고토미 인격이 현실적 책임을 홀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합니다. 나오키(마스터 인격)가 대신 감당해야 하는 거예요. 미라이와 요스케를 거치면서 미사키와의 재결합 가능성은 소멸했지만, 나오키는 포기를 거부합니다. 이 포기 거부가 고토미 인격의 핵심 속성입니다.

④ 사토루 — 원초아의 외화

좌절이 극에 달하면서 나오키는 젊은 여성들에 대한 연쇄 폭행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기억을 자기 내면에서 분리합니다. 사토루는 미라이가 술자리에서 데려온 남창으로 소개되는데, 사토루와 연결된 요소들 — 필로폰, 남창, 주거침입 — 은 나오키의 원초적 충동들이 한 인격에 집약된 형태입니다. 살인의 가능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긍정하는 것도 사토루예요. 인물들 중 유일하게 나오키의 폭행사건에 직접 목적자로서 참여합니다. 범행의 죄책감에 빠진 나오키를 구조하는 도피하도록 돕는 인물 또한 사토루입니다. 생존 본능과 자기보존의 역할 또한 초자아가 아닌 원초아가 맡고 있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아는 범행의 과정의 스트레스로 인해 마치 테이프가 멈추듯 중단되었고요. 여기서 핑크 팬더로 가득찬 테이프의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습니다.


미사키의 401호 재방문에 대한 해석

나오키는 신혼부부를 위한 맨션에 거주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나오키가 미사키와 파혼 혹은 이혼에 준하는 관계 실패를 겪었음을 추론할 수 있어요.

소설 280~281쪽에 걸쳐 나오키는 미사키가 현재 남자친구와 함께 401호를 방문해 시간을 보내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현실로서 성립하지 않아요. 현재 여자친구가 전 남자친구의 집을 새 남자친구와 함께 방문하고, 비어 있는 방을 자기 집인 양 들어와 상당한 시간을 보내다 말없이 나가는 건 — 상식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이 장면은 나오키의 망상입니다.

소설 안에서 라쇼몽이 언급되는 맥락은 이 해석과 연결됩니다. 라쇼몽이 다루는 건 "동일한 사건에 대한 복수의 서술"이에요. 같은 사건을 미라이가 보고, 요스케가 보고, 고토미가 보고, 사토루가 보는 구조 — 이건 서로 다른 증언자들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 안에서 분열된 시점들이 같은 사건을 각기 다르게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이 망상 장면 직후 나오키는 조깅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고, 또 한 번의 범행을 저지릅니다. 시퀀스가 의미심장합니다. 질투와 증오의 망상이 범행으로 직결되어 있어요.


정신 해리를 암시하는 작가의 서술들

아래 인용들은 다중인격 해석을 지지하는 텍스트 내부의 근거입니다.

"여기 사는 건 나와 나오키 두 사람 뿐이잖아. 그런데 가끔 난 여기에 또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뭐라고 잘 표현할 순 없지만, 그건 분명 나와 나오키 둘이서 만들어낸 괴물 같은 존재일 거야."

— 미사키의 말. 이별 이전에 이미 나오키 안의 분열을 감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나 자신도 그다음 어떻게 행동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그 여자의 입을 막은 채 여자의 등을 녹슨 담장에 무자비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289~290쪽)

— 범행 중 기억의 공백. 해리 상태에서의 행위를 서술하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미라이와 고토와 요스케와 사토루도 각기 다른 장소에 자신만의 방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을 뒤집으면 곧 눈앞에 보이는 맨션에서 살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는 뜻이 된다.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지만, 그 공상은 나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282쪽)

— 이게 이 소설을 다중인격으로 읽을 때 가장 결정적인 인용이에요. 나오키 자신이, 자신만이 이 공간에 실재한다는 공상에 당혹감을 느낍니다. 당혹감인 이유는, 그것이 어느 순간 "공상"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집에 있는 애들한테 뭐라고 할 거야?" "아무 말도 안 할 건데." 사토루의 말에 나도 모르게 발이 멈췄다. (295쪽)

— 이 교환이 이상한 이유는 사토루의 반응이 나오키의 예상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같은 정신 안의 인격들이라면 — 나오키가 사토루의 대답에 멈추는 건, 나오키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이에요.

만약 이 세계에 또 하나의 도쿄가 있다면, 그래서 그곳에 그 여자가 쓰러져 있다면 나는 분명 당장이라도 그녀를 구하러 갈 것이다. (302쪽)

— "이 세계"와 "또 하나의 도쿄"의 분리. 자신이 범행을 저지른 세계와 그것을 부정하는 세계를 동시에 상상하는 나오키의 내면입니다.


결말 — 분열의 현현

결말에서 모두가 모여 미라이의 강간 테이프를 텔레비전으로 재생하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시퀀스예요. 그리고 그 흉한 장면 위에 핑크 팬더의 행진이 덮입니다.

"흉한 강간 장면 위에, 그것을 감추기 위해 되풀이해 녹화한 몇 마리의 핑크 팬더. …웃는 얼굴로 허리를 흔들며 춤추는 핑크 팬더들의 행진." (302쪽)

이 이미지는 나오키 내면의 구조와 정확히 대응합니다. 강간 테이프 위에 핑크 팬더를 녹화해 덮은 것처럼, 나오키는 자신의 범죄 위에 미라이, 요스케, 고토미, 사토루를 덮어 씌웠습니다. 퍼레이드는 아름답고 경쾌해 보이지만, 그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 이 소설은 끝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 다만 보여줍니다.

결말이 "나오키의 내면 분열" 읽히는가, "401호의 부조리한 현실" 읽히는가. 저는 분기점 자체가 작가의 의도라고 봐요. 그러나 글에서 제시한 독법은 전자입니다. 퍼레이드는 결코 밖에 있지 않았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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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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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베트남 전쟁과 유대인 학살에 대해 긴 글을 쓴다. 그러나 정해진 곳에서 차례를 맞춰 죽는 죽음에 대하여는 침묵한다. 썩은 몸과 똥 냄새가 차오른 다음에서야 청소하듯 장례를 치르도록 만드는 것은 죄이다. 위생적이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진실은 분명 몇몇 사람들과 달리 대부분의 이들은 그토록 소란스럽게 죽을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모모는 로자가 병원이 아닌 그녀의 유대인 둥지에서 죽을 수 있도록 도왔다. 자신이 굶어죽기 직전까지 로자를 떠나지 못 했다. 생은 버림받음이 아닌 만남이다.


모모는 묻는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나 또한 어느새 하밀처럼 세월 앞에 늙어버렸다. 가끔씩 이 질문을 잊곤 했다. 그래서 난 다른 질문들과 다른 대답들을 찾아다녔었다. 천국이 있다고 믿고 다시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빌어보는 것이 그 하나였고, 내가 되고자 하는 '나'를 달성하며 살아보는 것이 또 다른 하나였다. 나는 다른 질문의 답을 찾아 다니던 중 모모의 질문을 어디선가 포기했었다. 가끔씩 잊는다니, 그건 노인에게만 허락된 평화다. 하물며 모모는 하밀에게도 다시 한번 묻는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모모의 질문에 대답한다.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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