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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평점 :
서른 세살의 나는 아직도 닉과 개츠비의 편이고, 그가 밀주업자인지, 과연 자기 손으로 사람을 죽였는지, 독일 황제의 조카인지를 따지는 것은 내게 의미가 없다. ”어처구니 없는 학살“이 개츠비의 운명의 몫으로 합당한가? 닉은 애도와 숭배를 선택한다. 개츠비를 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이 소설은 로맨스 소설의 구성을 지녔으나 아쉽게도 사랑의 이야기라 보긴 어렵다. <적과 흑>과 닮은 소설이다. 이것은 한 인간의 삶과 그 시대의 끝남을 애도하는 찬란한 추도사다. 개츠비와 같은 자식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아버지보다도 지신의 시대를 더 닮았다. 닉은 자신은 개츠비와 다른 인생을 살았다. 그는 아버지를 더 닮았다. 그러나 닉은 개츠비를 위해 그리고 과거와 미래의 친구들을 위해 이 글을 남긴다. 다음 시대에도 거듭 살해 당할 개츠비를 위해. 그러나 어느 시대에선는 자신의 일생만큼을 살아고 죽을, 자신의 탁월함만큼 자신의 희망만큼 위대해질 개츠비를 위해.
닉은 말한다. ”아니,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삶에서 이미 이룩한 것들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반복되지 않는 것은 단지 권태요, 우울함이나 실망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룩한 것이 없지만 이룩하고 하는 자에게는 역사는 반복되어야만 한다. 그 끝이 결국 이것 밖에 안 된다고 실망하는 것은 수 있는 것은 이미 가진 사람의 시각일 뿐이다. 심지어 단지 지나간 과거 속에서도 자신에게 편안한 삶만을 살아가고 싶어하다면 그는 분명 차고를 헐고 머굿간을 짓는 톰과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개츠비의 세계는 다르다. 그는 욕망하기 때문에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과 실패 모두를 겪게 되더라도 살아봐야 한다고 믿는다. 닉의 아버지의 충고 속에는 이미 이 가르침이 담겨있었다. 닉은 말한다. ”과거는 반복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닉은 틀렸다. 개츠비는 누구와도 전혀 다른 세상을 산다. ”과거가 반복될 수 없다고요? 아뇨, 그럴 수 있고 말고요!“
닉은 말한다. 오직 개츠비만이 “희망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다시 발견할 수 없는 것 같은 낭만적인 민감성“을 지녔다고. 동부를 떠나온 닉은 “더러운 먼지들”을 뒤로하고 고향에 정착한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짧은 슬픔이나 숨 가쁜 환희“를 다시금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진한 미래를 믿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갔지만 문제될 것은 없다. 내 일은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칠 것이다 … 그리고 어떤 맑게 갠 아침에는 …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왜 기회를 찾아 다시 서부에서 동부로 떠나가야 했었는지 깨닫는다. 개츠비는 오명을 쓰고 죽었고 그의 장례에는 친부와 단 한 명의 친구 밖에 자리하지 않았다. 그렇다해도 개츠비와 삶을 살아보겠는가?
나의 의견은 이렇다. 그렇기에 나는 개츠비가 결국 밀주업자나 갱스터일 뿐이지 않느냐, 그가 데이지를 사랑한다는 것도 어처구니 없는 변명에 지나지 않느냐는 의견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만약 데이지가 머틀을 뺑소니쳐서 살해하지 않았다면 나는 데이지와 개츠비가 행복해질 수 있었다고 믿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카렛 오하라와 레트 버틀러에 못 미치지만 말이다. 결혼에 대한 개츠비의 도전은 용납될 수 없는가? 정말로 데이지가 ”너무 행복해서 몸이 마비될 지경“이라면은 법과 도덕을 명분삼아 가로막는다고 해도 찬성할 수 있겠다. 돈을 쓰는 것과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것 외에는 톰과 데이지 모두 끔찍한 결혼생활을 지속할 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개츠비를 가로 막은 것이 사랑도 정당한 결혼제도도 아닌 범죄라는 사실에 절망감을 느낀다. 또 다른 지옥 같은 결혼생활을 누리는 윌슨-머틀 커플의 삶이, 머틀-톰의 간음의 죄의 대가가 의해 개츠비에게 뒤집어씌워진다. 이 소설에 결혼생활에서의 구원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기에 데이지와 개츠비에게 서로가 구원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다른 문제의 시작일 뿐이라고 보인다.
재의 골짜기로부터 노란 쿠페를 찾아나선 윌슨은 개츠비를 총격해 살해했다. 윌슨은 T.J. 에클버그 의사의 두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느님은 못 보는 것이 없으시지.” 그러나 윌슨은 아주 오래전에나 교회에 나갔고, 그는 결혼할 때를 빼곤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다. 그는 다른 신을 찾았고 그 신은 올바른 계시를 내려주지 않았다. 윌슨은 톰을 믿었고 결국 살인하고 자살한다. 복수를 전혀 이루지 못했다. 톰은 윌슨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윌슨은 왜 살아가는지 모를 사람이라고. 재의 골짜기에서 너무 오랫동안 살아가서 눈이 멀어버렸다고. 센트럴파크 호텔의 스위트룸에서의 사건이 있던 그날, 윌슨의 아내 머틀이 뺑소니 사고로 사망한 그날은 ”날씨가 푹푹 쪘다. 그해 여름이 끝날 무렵, 가장 더운 날임이 틀림없었다.“ 일행은 모두 땀에 젖고 자제력을 잃어버린다. 알콜과 더위에 절어버렸다. 그날 데이지는 정정하지만 톰에게 ”당신을 한 번도 사랑한적 없다“ 말하고, 개츠비에게는 ”아, 당신은 너무 바라는 것이 많”다 말한다. 곧 데이지는 노란 쿠페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뺑소니를 저지른다. 구조하지도 자수하지도 않는다.톰에게 의지한다.
“이 인간들은 썩어빠진 족속이오. 당신 한 사람이 그들을 모두 합쳐놓은 것만큼이나 훌륭“하다고 닉이 개츠비에게 말했다. 의미가 미묘하다. 썩어빠진 놈들을 합쳐봤자 썩어빠질 뿐인데, 어찌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닉은 이것이 자신이 항상 개츠비의 행동을 반대헀다는 것을 변명하면서도 개츠비를 칭찬할 수 있었던 말이라고 생각했던걸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이 닉과 개츠비 사이의 마지막 인사가 된다. 이 때문에 닉은 더 깊은 자책감에 시달렸으리라. 개츠비의 죽음의 장면이 따라나온다.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주목하는 점이다. 앞서 개츠비는 이렇게 닉에게 말했다. “그럼 풀장에 뛰어드는 건 어때요? 여름 내내 한 번도 쓰질 않았거든요.”, “take plunge in.” 개츠비는 여름 내내 사용하지 않던 풀장에서 죽는다. 곧 가을이 올 것이기 때문에 이제 풀장의 물을 빼야한다. 개츠비는 오전 내내 데이지의 전화를 기다렸으나 연락이 오지 않았다. 개츠비는 일어나고 풀장에 에어 매트리스를 물에 들어간다. 이 직후의 장면에 대한 작가의 서술이 없다. 독자가 상상을 통해 채우도록 빈 공간을 남겨뒀다. 나는 개츠기가 구원받으리라 상상한다.
나는 땀 뿐만이 아니라 집착과 정념, 잔뜩 묻은 더러운 먼지들까지 씻겨나가는 상상을 한다. 그리스도를 제외한 모든 사제들은 물로서 세례를 준다. 물은 생명이다. 그러나 개츠비는 다시 떠오르지 못한다. 자신의 삶이 소생한 순간 가라앉는다. 에어 매트리스와 그의 몸을 관통한 총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다시는 죽었다. 정화된 영혼으로 인생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 총탄이 그를 짓눌렀다. 흔히 총탄에는 눈이 없다라고 말한다. 총탄에만 없을까? 다수의사람에게도 멀쩡한 눈이 없다. 차라리 눈을 감고 살아가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희망의 초록빛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면, 판단하지 않고 유보하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 죽음이 개츠비의 몫으로 합다하다고 믿을 수 없다. 닉이 아무리 수소문하여도 장례에는 닉과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닉은 개츠비에게 타이틀을 붙여준다. The Great Gatsby. 나는 이 제목이 도치되어 있다고 느낀다.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할 때는 공식적인 느낌이 부족하다. Gatsby the great, Frederick the Great처럼 적어야 옳다. 작가는 자신의 다른 소설, Tender is the night에서처럼 도치법을 사용했다고 본다. The Great Gatbsy, 이 편이 도시의 어둠 속의 제왕이었을 개츠비에게 더 어울린다. 다른 대왕도 개츠비와 같을 수 없었으므로 적절하다.
사랑을 이루기 위한 파티를 열고 홀로 죽었다. 그러나 인생의 짧은 환희와 절정을 맛보고 죽었다. 일찍이 어떤 인물이 개츠비와 같이 살았던가? 떠올려지지 않는다. 그처럼 끊임없이 이어지는 크고 성대한 파티는 없었다. 이로 인해 미국문학에서 개츠비는 신화 속 인물의 자리까지 올라간다. 개츠비는 내가 떠올릴 수 있는 미국의 위대한 신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