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나 싶으면 비바람에 밀려나고 해가 나는가 싶으면

어느새 구름과 황사가 몰려와 지리한 하늘이 입맛까지 껄끄럽게 한다.

 

친구들과 짧은 1박2일을 계획하고 목포행 KTX 막차를 탔다.

반건조 오징어에 적당한 딱 그 온도의 캔맥주..수다와 더불어 늦은 시간이 까만 밤과 같이 달린다.

밤 12시 넘어 도착한 목포역에서 숙소를 찾아 탄 택시의  기사 아저씨는 사정없이 사투리를 뱉어낸다. 

 

서울서 오셨오잉? 놀러 오셨는가요잉? 

어째 유달산을 한바퀴 돌고 가실랍니껴 그냥 가실랍니껴? (이 밤중에? 이사람 혹시? )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어려운 곳을 시속 100 킬로 넘게 질주하는 15분 동안 아줌마 셋은 두려움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어디 으슥한 곳에다 데려다 주는건 아닐까? 3대 1인데 뭐 설마..가져간 꾸러미를 꽉 움켜쥐며 속에 있는 물병으로 ...옆으로 힐끔 본 아저씨는 웬지 조폭의 포스가..^^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휘~익 유턴을 하더니 호텔에 내려주었다..에고 살았네...대한민국 아줌마도 무서운게 있더란 말이다. ㅎㅎ 

 

다음날 9시반 최대한 시간 허비를 막자고 다짐하며 하루일정을 어림했다. 먼저 보성 대한다원을 목적지로 하고 가는 길에 영암에서 낙지 연포탕을 아침 메뉴로 선택했다. 누워있던 황소도 일으킨다는 낙지의 위력을 한번 실감해보려고...세마리는 먹어야 한다는데 두마리만 먹어서일까 불끈 힘이 솟는 것 같지는 않았다..ㅋ 참기름이 듬뿍 들어가 재료 본연의 맛을 살짝 해친 건 있지만 어쨋든 산지에서 싱싱한 낙지에 맑게 끓여낸 연포탕은 기분좋은 출발을 예고했다. 월출산을 바라보며 달리는 도로는 만개한 벚꽃 터널과 간간이 노란 유채밭이 어우러져 올해의 꽃구경은 목포에서 선사받는 기분이였다. 

 

어딜가나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봄 기운으로 차밭도 아직은 파릇한 새순을 보긴 어려웠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연인들을 한층 더 근사하게 그려준.. 죽기전에 꼭 가봐야할 곳으로 동그라미 치기에 전혀 부족함 없는 곳이 여기 보성 다원이 아닐까? 유치원 아이들의 봄견학으로 고요함은 날아갔지만 삼나무길을 걷다가 만나는 거대한 녹색의 물결은 장관이다. 쌀쌀한 기운에도 기념으로 녹차아이스크림을 한컵씩 주문했다..쌉싸름한 이 맛..목을 넘어가며 남기는 차 향기...곡우 5일전 채취한 새순으로 만든다는 우전..녹차중 최상품이다..떫고 쓴맛이 덜해 목넘김이 아주 부드러워 뒷맛이 달큰한 기분좋은 차. 녹차도 그 종류가 참으로 많다.

 

바쁜 일정땜에 다시 이동한다...강진 버스터미널 근처 해태 식당...연포의 여운이 아직도 그득한데 또 상다리 부러지는 한정식 밥상을 받는다...예전에 해남에서 먹었던 큰상엔 온갖 젓갈과 나물로 손도 미처 대지 못하고 나가는 찬들이 많았는데 다행히도 이곳은 가짓수를 대폭 줄이고 똘똘한 것들로 슬림하게 내왔다...활어의 탱탱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는 회접시, 잘게 쪼사놓은 산낙지, 숯불에 구워낸 맥적, 평소에 손도 안대는 육회(유명한 장흥한우가 근처임)가 제법 맛있다. 국산임에 분명한 여수 게불과 전복, 문어숙회, 소라, 굴등의 해물, 쫀쫀하게 구워낸 적당한 크기의 생물조기, 젓가락이 바빠 주체할 길이 없을 정도...거기에 절대 빠질 수 없는 홍어..그와중에 간간이 먹는 촌나물도 금방 부쳐 내오는 투박한 전도 상에서 제외시킬 수 없는 메뉴였다...남은 음식에 미련이 한가득이었으나 더 이상은 공간이 없다고 삐삐 신호가 들어온다.

 

몇번 도로를 타고 갔는지...진도를 향하는 도로 주변에도 벚꽃이 한창이라 게속 예쁘다는 환호성을 멈출 수가 없었다. 울돌목..명량대첩을 기념하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그곳을 지나는 진도대교옆으로 보인다...그냥 보기에도 물살이 예사롭지 않았다...그 좁은 물길에서 있었던 역사의 하루가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밑거름이 되었겠지..

 

멀지 않아 도착한 운림산방..어디나 그렇듯 울긋불긋 색을 입었으면..노오란 햇살이 더해졌으면 한껏 더 멋스러웠을 그곳..예전 배용준 주연의 영화 스캔들에서 배를 띄웠던 연못이 화면보다 훨씬 왜소하지만 참으로 아담하고 예뻤다. 남농 허건 선생..남종화의 대가로 익히 그 이름을 들어왔던 바로 그 집안의 개인 화실과 같은 곳으로 집안 대대로 화가의 명맥을 이어온 곳이다. 운림산방을 지은 분이 남농의 조부..조선시대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선생이란다. 남농과 허백련선생의 이름이 귀에 익어 자세히 보니 허백련 선생은 한 집안 사람이었다. 이분들의 화풍을 볼 수 있도록 시대별로 간략한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흑과 백으로만도 표현할 수 있는 세계는 무궁무진함을 보여준다. 잔잔한 산수화가 발길을 오래도록 끌어당긴다. 등 따신 햇살 보일 때 월출산과 더불어 한번쯤 더 오고 싶은 곳이다.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게 느껴진다..서둘러 목포로 씽씽..한숨 돌려 차 한잔 마시고 그래도 목포에서 유달산은 봐야지싶어 드라이브를 한바퀴...여기도 거의 산전체가 벚꽃 일색이였다. 목포에 오면 3가지를 꼭 먹고 가야한다는 친구의 간곡한(?) 설득에 ..^^  아직도 부른 배를 문지르며 저녁을 먹으러 갔다. 민어회 전문..서울 사람들의 여름 보양식인 민어..기름기 적고 담백한 고급 생선.. 민어전을 먹고 나면 대구나 동태전은 먹기 싫어진단다. 수북히 담겨 나오는 회 한접시와 매운탕에  맛만 보자 했다가 그 맛에 자꾸만 일어나기 싫어졌다...기차타기 10분전까지 먹다가 허겁지겁 서울행 KTX를 타고 때아닌 눈발을 맞으며 귀경. 이렇게 긴 1박 2일이 있나 싶게 배를 호강시키며 참 열심히 다녔다. 

 

시간이란게 정말 요리하기 나름인가 보다. 함께 어우러지는 사람(재료),  날씨와 먹거리(양념), 적절한 타이밍(불조절) 이 세가지가 조화로우니 기분좋은 포만감에 세상이 모두 아름다워 보인다.  만 24시간 동안 딴세상을 다녀온 것 같았다.  지루한 일상이 행복한 시간으로 변신하는 건 환자들의 열렬한 성원을 살짝 눈감을 수 있는 용기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요즘은 그 용기가 너무 충만한게 탈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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