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 없이 살아보기 - 삶의 기적을 이루는 21일간의 도전
윌 보웬 지음, 김민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 세종서적 <불평없이 살아보기>
 

 

우리 웹사이트(www.AComplaintFreeWorld.org)에 들어와서 보라색 고무밴드를 받아보시기를 권한다.
밴드는 무료다(본 도서와 함께 제공). 이 프로그램은 기부금으로 운영되고 있고, 당신도 기부할 수 있다.
밴드 사용법은 다음과 같다. 

1. 한쪽 손목에 보라색 고무밴드를 착용한 뒤 21일간 불평을 참아보기로 결심한다.
2. 자신이 불평하고 있거나 누군가를 험담 또는 비난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밴드를 한쪽 손목에서 다른 쪽 손목으로 옮겨 끼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3. 같은 밴드를 가진 사람이 불평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에게 밴드를 옮겨 끼우라고 깨우쳐줄 수 있다.
   단, 자신도 밴드를 옮겨 끼워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도 다른 이의 불평에 불평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4. 밴드를 계속해서 착용한다. 단 하루도 불평없이 21일 보내려면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경험자들에 따르면 평균 4개월에서 8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 세종서적 <불평없이 살아보기>의 머리말 중에서. 

 

여느 서적들의 머리말에 비해 조금 독특한 시작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있는 200여 명의 작은 교회에서 시작되었다는,
<불평없는 세상> 단체와 <불평없는 세상>이라는 캠페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세계 80개국에 600만 개의 팔찌를 무료로 공급했고, 지금도 매일 1천개 이상의 팔찌를 보낸다.
나 스스로 인터넷 웹사이트에 직접 접속하거나 이 단체의 회원과 만난 일은 없으므로
나는 이 단체가 한국에는 존재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한국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아는 바가 없다.
나는 오직 책을 통해 그들을 알았고, 그들의 모임과 캠페인에 대해서 알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목사로 활동 중인 윌 보웬이다.
그는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 입에서 나오는 불평, 비난, 험담을 참아야 한다고 말한다.
머릿속에서 생각으로만 늘어놓는 부정적인 생각까지 막으려고 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고 하는 말이든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들이 부정적인 말이 된다면
그 잘못된 행동을 의식하고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한다.
말로 표현되는 불평, 비난, 험담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만으로도 생각 속에서 불평이 사라진다고 한다.
보라색 고무밴드는 바로,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기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상징인 보라색 고무밴드가 없어도 무방하며, 이 일은 당장 시작해야 할 일이라고 한다.
손목에 다른 색 고무밴드를 차거나 한쪽 주머니에 동전이나 작은 돌멩이를 넣어도 가능하며
그 물건이 무엇이 되었든 스스로 그것을 옮겨놓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는 것.
의식한 이후에 스스로 그 행동을 수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이 캠페인의 핵심이다.

물론, 때로 유익한 비판이나 충고는 필요하다. 그것은 서로의 관계를 더 유익하게 하며
우리 삶에서 수정해야 할 것들을 바로 잡아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도 할 것이다.
유의할 것은 잘못이나 부족한 어떤 것을 바로잡기 위한 충고나 비판과는 다른 부정적인 말이다.
다른 사람과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결과나 과정에서의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걱정하는 마음, 혹은 바로 잡으려는 마음, 함께 성장하려는 마음으로 하는 말들은
불만, 불평, 비난의 형태로 표현되지 않는다. 불만, 불평, 비난에는 분노나 우울함이 깔려있다.
감춰진 열등감이나, 다친 자존심이 깔려있기 때문에, 상대방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고 공격적이다.
그래서, 비판이나 충고는 불만, 불평, 비난과는 분명 다른 성질의 말이다. 이런 차이를 분명히 구분하고,
자신의 삶이나 타인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말들을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자는 것이다.

세상의 누구도 자신을 부정적인 사람이며, 자신이 하는 말들이 부정적인 것들이라고 상상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행동과 습관에 대해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자세히 알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티끌같은 잘못은 보여도, 내가 가진 커다란 허물은 쉽게 찾지 못하는 법이다.
그러나,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불만과 불평과 험담이나 비난에 익숙한 사람의 눈에
불만과 불평과 험담이나 비난할 것들로만 가득한 세상으로 보이고
세상의 모든 흐름은 자신의 욕구나 만족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것으로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단어를 주로 쓰며,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기 보다
자기 자신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에 타당한 이유가 있었고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자기방어에 더 익숙하다.
그러나, 그렇게 자신의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먼저 인정하지 않으면, 변화도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않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일이다.
그리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왜 21일이여야 했을까. 저자가 심리학의 전문가는 아니였지만, 저자 또한 많은 책을 읽는 독서가이며,
글은 그가 평범하지만 자신이 알고자 하는 분야에 관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심리학이나 뇌의 흐름에 관한 책도 접했던 것은 아닐까. 21일에 대한 근거를 정확히 내세우지 않지만,
사람에게 새로운 습관을 형성하는데 21일은 최소한의 반복을 요구하는 과학적인 숫자임은
심리학이나 뇌연구 과정에서 이미 밝혀진 바 있다. 그러니, 터무니없는 개인적인 주장은 아니다.
캠페인의 첫 시작이 누구 혹은 어느 단체에서 어떤 목적으로 시작되었든지 가능성을 가졌다는 뜻이다.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정직하게 자신의 말과 행동을 들여다 보고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생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로 삼아도 좋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자신이 무의식 단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쏟아내던 불평, 불만, 비난들을 의식의 단계까지 끌어내고
이것이 의식하면서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단계를 너머
언젠가 무의식 속에서조차 불평, 불만, 비난하지 않는 긍정적인 단계에 이를 때까지 노력해보면 어떨까,
어쩌면 자신의 내면이 먼저 느낄지도 모른다. 마음 속에 구름이 걷히듯이 행복해지고 있다는 것을. 
다른 누군가의 인정이나, 인증서보다 그것은 더 가치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도 아직, 21일 채우려면 아주 힘든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당신이 21일 동안 연속으로 불평하지 않고 지내기에 성공하면 우리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된다.
그러면 우리는 기꺼이 당신의 변화를 축하하는 행복 인증서를 보내줄 것이다.
                                         - 세종서적 <불평없이 살아보기>의 본문(p 180)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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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심리학 - 위기 극복을 위한 로라 데이의 12강의
로라 데이 지음, 채인영 옮김 / 허원미디어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 허원미디어 <위기의 심리학>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믿고 있다면, 바로 그게 당신이다.
세상이 이러 저러하다고 믿고 있다면, 당신은 바로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믿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더 이상 그 현실이 사실임을 믿을 수 없거나,
살아가는 데 신념이 더 이상 버팀목이 되지 못할 때 당신은 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 <위기의 심리학>의 본문(p38) 중에서.
 

 
나는 어느 책이든, 저자의 약력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한다.
덮어놓고 글을 읽고,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글을 쓰게 되었을지 궁금하면 그제서야 거꾸로 약력을 본다.
이것은 약력보다 중요한 글에 편견이라는 안경을 덧댈까봐 가진 습관이다.
이 책의 저자, 로라 데이도 그랬다. 그리고, 아직도 나는 그녀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녀가 과학과 직관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에 능숙하다는 것이며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러 책을 저술했다지만, 자신의 의도를 충분히 드러낼 만큼 저술에 능숙해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의 능력에 때문이 아니라, 논리를 맞추는 일에 익숙한 내 습관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가 머릿속에서 덜컥 덜컥 제동장치 걸리는 소리가 난다. 이것이 나의 집중과 몰입을 방해한다. 
한동안 그녀는 내 책 읽기에 혼란을 주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어려움을 주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글속에는 과학보다는 직관이 더 많고,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경계없이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라고 말한다. 그녀와 함께 자신을 제대로 알아가기를 권한다.
그래서 그녀가 먼저 과감할만큼 자신의 아픈 과거들을 하나 하나 솔직하게 숨김없이 꺼내 보여준다.
그녀가 만나고 경험했던 다른 사람들의 과거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그리고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하지만, 과학은 없다. 반듯하게 찾을 논리도 없다. 전문적인 용어도 없기 때문에 풀이도 없다.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신의 경험과 느낌과 믿음을 중심으로 글을 써내려 가고 있는 것이다.   

전체 내용을 보면, Step 1 은 언제나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충고한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을 어떻게 바꾸기를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자신의 내면과 자신이 처한 현실을 파악하게 한다.
Step 2 는 지금 자신이 정말 위기에 빠졌는지 알아내고, Step 3 은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것을 잡기를,
Step 4 는 위기에 반응하는 4유형을 소개하고, 자신의 유형을 찾고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Step 5 는 유형별로 위기상황에 어떻게 응급처치할 것인지, Step 6 은 위기를 스스로 치유할 방법들을
Step 7 은 세 가지 죽음의 덫으로 표현되는 반추, 비난, 복수심을 우리 내면에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Step 8 은 내면화 과정을 거쳐 자신의 신화를 새로 쓸 것을, Step 9 는 스스로 어떤 사람이 될지 결정하며
Step 10 은 자신에게 찾아온 위기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근원적인 자아를 찾아 연결하는 방법에 대해,
Step 11 은 각 유형을 자신의 내부에서 떠나보내며 축복과 기쁨을 함께 나누기를 ,
Step 12 는 위기없는 인생은 없으므로 차라리 환영하고, 새롭게 자신의 신화를 만들기를 권한다.  


상실은 우리가 진정한 자아와 진정한 삶을 살아가게 하려고 만들어낸 잘 짜인 시나리오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부서진다. 만일 당신이 어린이에서 완전히 성장이 멈췄다면 오늘 당신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생기면 이 점을 기억하라.
당신은 새로운 인생을 만들 것이다. 이미 설계하는 중이다. 

놀랍게도 새로운 인생에서 필요한 일을 처리하다 보면,
당신은 이미 새로운 인생으로 가는 과도기를 쉽게 넘어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해까지 할 필요도 없이 단순히 행동만 바꾸더라도, 연쇄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긍정적인 결과를 얻게 된다.
행동을 바꾼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위기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 <위기의 심리학>의 본문(p141. p144) 중에서.
 


그녀의 글을 읽고, 과학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반드시 과학이 필요하며, 과학만이 정답이고 진실일까 조심스레 생각해봤다.
직관은 무엇이고, 무엇이 우리의 신념을 이루고, 우리의 정신과 삶을 움직이는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녀는 심리학과 직관의 경계에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내가 심리학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겨났다.
그녀는 자신의 글 안에서도, 자신의 글 밖에서도 많은 의문과 생각이라는 숙제를 남겼다.
그리고 그 무엇에 대해서도 쉽게 명쾌하게 간단하게 정의내리지 못하겠다. 그것은 내게 과욕이다.
 
다만, 그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메세지들에 대해 수긍한다.
그것들이 내가 위기를 충분히 직감하지 못하고 힘들어할 때, 나를 위기와 직면하게 할 것이라는 것과
내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그녀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세지들을 믿고 싶어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의 메세지들에는 희망과 신념들로 가득차 있다. 위기에 빠진 누군가를 도우려는 마음과
위기를 새로운 자신의 모습과 새로운 삶을 선택하고 맞이할 기회로 보게 하려는 노력으로 가득하다.
앞부분의 Step보다 뒷부분의 Step으로 갈수록 그런 그녀의 노력들이 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조금씩 집중할 수 있었고, 머릿속의 제동장치에 힘들어하지 않고 마음의 평온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이상 과학과 직관, 심리학의 경계를 나누는 일을 그만 두었다.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변화와,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 내 삶을 돌아보는데 시간을 더 할애하기로 했다.
진실일까 아닐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믿고 싶어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가 아닐까.
그것이 인간이 가지는 이기심일지라도. 
 

      
우리집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모든 일은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거울을 깼다. 그것도 행운이요. 문지방을 밟았다. 그것도 행운이요.
가장 좋아하는 목걸이를 잃어버렸다. 그것도 더 좋은 것을 구입하게 될 기회가 온 것이다.
자신의 신화에 마술과 같은 힘을 불어넣어라.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주 좋은 신화를 창조하는 데 힘을 기울여라.
                                 - <위기의 심리학>의 본문(p25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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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청춘 - Soulmate in Tokyo
마이큐.목영교.장은석 지음 / 나무수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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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백도씨의 <잘 지내나요, 청춘>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는 예술은 죽었다고, 또는 뚜렷한 사조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자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가능성에 눈을 뜨고 있다. 

예술이란 '최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 <잘 지내나요, 청춘>의 본문(p177) 중에서.

 
 

망설임없이 제목이 끌렸다.
'왜'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일본이라는 이국적인 풍경속으로 무작정 배낭 하나 둘러매고 그곳으로 가고 싶었고,
어쩌면 기억속에서 잊혀져가던 내 청춘도 거기 있을 것만 같았다.
서른이란 말이 얼마나 두렵고 걱정스러웠던 나이였는지, 새삼 세 남자를 통해 다시 기억해냈다.
나는 서른은 스물과는 너무 달라서, 결코 되돌아 올 수 없는 큰 강처럼 느껴졌었다.
어린아이가 갑작스레 어른스러운 옷을 입고 말투를 바꿔야 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느껴었고,
스물의 내가 가졌던 무엇을 포기하고 서른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었다. 내 서른은 그랬다.

사진쟁이와 그림쟁이와 음악쟁이, 세 남자. 그들은 무엇 때문에 일본으로 갔던 걸까.
어쩌면 나처럼 서른이 되기 전에 혹은 서른을 축하하는 작은 의식처럼 일본을 선택했던 걸까?
그들 어깨너머로 이국의 도시풍경은 여행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도피도 고민도 사색도 아니였다.
그들에게 처음부터 일본으로 가는 목적이 있었던 걸까?
서른 즈음 젊음이란 렌즈는 있는데, 그 렌즈를 들여다 보는 그들만의 온기나 색깔은 그다지 없다.
그들이 사진과 그림과 음악에 미쳐있는 뜨거운 젊은이일거라 생각했고,
그들이니까 가졌을 법한 그들만의 열정이나 솔직한 상처, 그리움이 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게서 잊혀져가던 내 젊음의 열정을 다시 기억나게 하고,
혹시 내 삶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지도 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춘'이란 말 뒤에 감추어둔 인생의 열병같은 고뇌나 아픔, 열정을 담고 싶었다면
사진에 일본이 담기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도쿄나 낯선 거리이름 쯤 기억나지 않아도 좋았다.
창문 틀 하나만 내걸린 사진이라도 그 너머로 얼마든지 그들의 아픔과 비슷한 내 아픔을 만났을 것이고,
그들의 주체할 수 없어 흔들리던 열정에서 무모할만큼 뜨거웠던 내 열정도 기억해냈을테니.
그러나, 보여줄 수 있는 속마음들만 보여준다는 느낌. 말할 준비가 된 것들만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특이한 느낌의 이국 땅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었다.
어쩌면 보통 사람들이 일본이라는 도시 곳곳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과 또다른 이국풍경이 보고 싶었다.
그것이 어느 이국의 처마 밑이라도 좋았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페인트 자욱이라도 좋았고
이국에서의 새벽 공기라도 좋았고, 또다른 이국의 젊은이들의 열정으로 뜨거운 장소라도 좋았다.
흔히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볼 수 있는 사진이 아니라, 열정을 한번쯤 품어 보았고
열정으로 온몸이 뜨거울 수 있었던 젊은이의 눈에 비춰질 수 있는 사물이나 사람이면 무엇이라도 좋았다.
그런데, 내게 그런 느낌으로 와닿는 사진은 없었다. 그 점이 아쉬웠다.
책 제목이 주는 아쉬움, 그것이 너무 커서 기대감 없이 보는 것만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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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하지 말고 똑똑하게 말해요 - 올바른 의사표현을 도와주는 책 ㅣ 차일드 커뮤니케이션 Child Communication
안미연 글, 강경수 그림 / 상상스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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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스쿨 <우물쭈물하지 말고 똑똑하게 말해요>
                                 

 

표현력이 아직 미숙한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이에게 일상적인 여러 상황에서 사용하는 언어적 표현을 알려 주세요.
아이에게 질문을 할 때는 '예' 혹은 '아니오'처럼 단답형의 대답을 유도하기보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개방형 질문이 좋습니다.
                           - <우물쭈물하지 말고 똑똑하게 말해요>속의 선생님의 편지 중에서. 


   단어 몇 마디로 시작하던 아이의 말이 어느날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기쁨과 동시에 걱정도 생겨났다. 평소에는 충분히 자신의 의사를 잘 말하던 아이가, 부모 외에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는 머뭇거리거나 때로 자신의 의사전달 욕구를 포기하는 일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말을 몰라서 말을 못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이가 왜 말문을 닫을까. 하고 싶은 말을 왜 참으려고 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혹시 아이 내면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고민이나 문제가 생겼을까 싶은 고민과 함께, 이것이 아이의 자신감이나 성격과 연관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와줄 방법들을 찾다가 선택했던 책이다. 

   주인공 코니는 부끄럼쟁이다. 유치원의 수업 중에도 답은 속으로만 말하고, 손을 들고 발표하지 못한다. 친구들과 함께 놀 때도, 좋아하는 친구 앞에서도 너무 작게 말해서 들리지 않는다. 이 코니가 어떻게 자신의 어려움을 이겨낼까. 코니에게 부드럽게 타이르며,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혜로운 코니 엄마가 부럽다. 어쩌면 우리 아이도 코니 엄마가 부러울까. 그 비밀스러운 지혜는 차마 밝힐 수가 없다.

   가로 22 * 세로 24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푹신한 양장본이다. 모서리에 라운드 처리는 없지만, 표지가 푹신하게 처리되어 있어서 딱딱한 양장본에 비해서는 아이의 안전에 덜 걱정스럽다. 페이지마다 글밥이 적게는 5줄에서 많게는 20줄 가까이 되고 내용이 제법 길기 때문에, 유치부 아이들에게 더 적당할 듯하고, 읽기 독립용 보다는 엄마와 함께 읽고 대화 나누기에 더 적당한 책이다. 여러 동물들이 등장하는 그림이여서 호기심을 끌기에는 좋지만,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 잡아주기에는 그림이 아주 예쁘지는 않다. 아이에게도 다소 긴장감을 연상시키는 내용이여서 그런지, 그림 탓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아이가 스스로 좋아하고 꺼내와 읽기를 즐기는 책은 아닌 듯 싶다. 

   아이가 사람들 앞에서 말문을 쉽게 열지 못하는 이유나, 어떤 말을 하기 위해 망설이는 데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유가 있는 듯 싶다.  내용의 깊이나 소재가 심리학을 전공했다는 저자의 경력에 비하면 왠지 조금 허탈하다. 책 속의 저자는 그것을 수줍음과 용기의 부족이라고 단정짓지만, 실제로 어른들의 경우만 보아도 다른 누군가와 말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단지 수줍기 때문에 말을 하지 않는 경우보다 훨씬 여러가지 감정상태나 경험이 아이 내부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나, 말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가 단순한 수줍음 때문이 아닌 경우라면, 내용 전체에 대해 설득력이 없어지는 취약점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점이 가장 아쉬웠다. 책을 만들 때, 작가의 고민이 좀더 들어갔더라면, 말을 못하는 아이들에 대한 좀더 깊은 배려가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그랬다. 또한, 아이들이 읽는 책을 만들거나 쓰는 사람들은 보통 어른들의 눈이 아니라, 조금은 아동에 대해 전문가적인 안목을 가졌으면 싶다. 아이들이 책의 내용에 신뢰를 가지고 그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려는 순수한 마음과 의지를 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동화가 끝나면, 책 뒷부분에는 유아교육과 교수가 부모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있다. 오히려 이 글이 그나마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되는 듯 싶다. 아이들이 의사표현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알려주고, 어떻게 도와주고 이끌어야 할지에 대해 유아교육 전문가 답게 충고한다. 이것이 우물쭈물 하며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아이들에게 직접적이고 핵심적인 해결방법은 되어주지 못하더라도, 부모로서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되어야 할지, 어떤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간략하게라도 도움이 된다.
 
    모든 책이 내게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때로는 조금 아쉽고, 때로는 고맙기도 한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 책의 경우에도, 우리 아이가 때로 우물쭈물 하며 말을 못하는 것이 수줍음이나 용기 부족 때문이였다면 큰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다른 사람들은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내용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의 특성에 잘 맞아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가지는 아쉬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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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코의 지름길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3
나가시마 유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 비채의 <유코의 지름길> 

 


나도 멋대로 주위 사람에 대해 요모조모 생각한다.
특히 여기와서부터 이것저것 생각만 해 왔다.
지금 이러는 것처럼, 가스페이지를 보며, 혹은 횡단보도를 건너며, 2층 철 계단을 오도카니 서서.
                                         -  <유코의 지름길>의 본문 (p 237) 중에서.
  


    솔직하게 말해서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후에 느낌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던 책이다.
이 책을 에워싸고 있던 화려한 수식어가 많았다. 일본인으로서는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에 의해 제1회 오에 겐자부로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것과, 그의 심사평에 의하면
가능성과 성과를 인정할만한 ’문학의 언어’를 지닌 작품이라는 것이다. 또, 그리운 소설의 매력을
완연히 새로운 일본인을 통해 구현한 작품이며, 본인의 눈에만 발견된 것을 별다른 의식없이 소설
속에 드러내는 재미를 가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평가들은 오직 한 사람, 오에 겐자부
로의 나가사미 유에 대한 평가였다. 같은 글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유난히 실감나게 한다.

   나는 이 소설이 오에 겐자부로로부터 왜 그토록 칭송받는지 사실 납득이 쉽지 않다. 그리고 그가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의 경력을 가졌기 때문에 너무 쉽게 그의 평가를 사실화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생긴다. 내게는 오에 겐자부로도 한 사람의 독서가에 지나지 않으며, 그의 의견은
책을 읽으면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자기생각과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 작품
을 평가할 때, 얼마나 진지하고 고심하고 객관적이였을지에 대해 나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서로 다른 언어가 번역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 순수한 매력을 어느 정도 잃었거나 퇴색해서
제대로 공정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원작을 혼자 읽어낼 실력이 없으
므로 다만 나는 내 가슴이 느끼고, 내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정리할 뿐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특이하다. 이름도, 나이도 외모도, 과거나 성격상의 특성도 없다. 그러나
그 주인공의 눈과 귀를 통해서 주변인물과 상황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그를 쫒지 않
으면 안된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정보도 모르는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어렴
풋이 그를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 때문이였을까. 소설 속의 그의 표현처럼 누구나 다른 사
람을 두고 혼자 상상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를 통해 내 내부 어디엔가도 존재하는
나와 혹은 나 이외에 누군가와 비슷하다는 느낌들을 찾아냈기 때문일까. 어쨌든 어두운 얼굴을 
가졌고 일이 하기 싫어져버린 한 남자가 후라코코의 창고같은 2층 방에 옮겨와 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상자 그 자체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모양이야.
상자에 최소한의 유용성이 있기에, 희박한 의미 가운데 우연히 선택된 물체에 불과해.
오히려 그것을 쉼 없이 만들어 낸다는 것, 즉 행위를 반복하고 작업을 연속한 결과,
비슷하면서도 아주 조금씩 다른 물건이 만들어지면서 중첩해 간다는 것, 
그 모두가 창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유코의 지름길> 본문(p 124) 중에서. 

  
내 생각인데, 당신이랑 점장은 매일같이 내내 지켜봤잖아.
가게 뒤에서 아사코 씨가 만드는 걸, 그것 자체가 작품이 아니었을까.
                                 - <유코의 지름길> 본문(p 140) 중에서.

 
   아사코가 졸업 작품으로 여덟박스 분량의 많은 두껑있는 상자들을 만든 것을 두고, 그것을
지켜보거나 지원했던 많은 사람들을 저마다 그 상자에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쓴
다. 작가는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매일같이 몸을 아끼지 않고 그 상자들을 만들었는지 보
여주지만, 그 상자들은 수작업의 특성상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모두 같은 상자들이였다.
아사코는 이 작품을 보고 무엇인가 연상된다면, 자신의 작품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문득, 이 대목에서 매일 비슷한 일상들이 연속되고 있는 소설 속에서 나만의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느꼈다. 이토록 반복적이고 느리고 특별한 감정의 굴
곡도 그 흔한 남녀감정도, 슬픔이나 놀라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클라이막스 조차 없는 이 소설을 바라보는 내 느낌이 똑같은 수많은 상자들을 보는 그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혹시, 나가사미 유는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소설에서 무엇인가를 연상하게 된다면 실패한 것이라고. 약간의 쓴 웃음이 난다.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하나. 나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나. 이토록 난감한 소설은 처음이다. 
 
   파리로 훌쩍 날아가버리는 사람들. 주인공은 그들이 친절하고 특별한 이웃이라고 말하지만
그가 왜 그의 주변사람들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별로 공감되지는 않는다. ’미즈에’라면
모를까. 미즈에는 퍼주기에 도가 지나칠만큼의 관심을 가졌으니까. 하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특별한 정이라는 게 쌓이려면 그보다 좀더 우여곡절이 있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일본인 특유의 문화 안에서는 가능한걸까? 그렇다
면 이 부분의 공감은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덜 섬세한 그의 감정처리가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
이고, 또 한편으로 이국적인 감성에 충분히 젖어들지 못한 이질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끝끝내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왜 하필 괭이갈매기 소리였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특별히 따뜻한 것도 특별히 그리운 감정도, 강력한 메세지도 없었다.
꼭 그래야 하는가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문학작품이란 이름
을 가진 글은 평범한 수다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에는 글 속에서 뿐만 아니라,
글을 읽는 인간에게도 ’변화’라는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변화가 작든 크든,
외부적인 것이든 내부적인 것이든 나는 그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방식대로 소설을 읽었고, 허탈했다. 

    그래서 문득, ’매일같이 지켜보던 당신이 작품이 아닐까’라던 대목을 떠올렸다. 소설을 읽
는 내내 작품속의 인물들을 모두 빠짐없이 지켜보고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내 모습,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소설속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소중한 기억이나, 느낌, 생각들을 찾아내고
기억해내려고 애쓰던 내 모습이 그가 원한 작품은 아니였을까. 그렇게 멋대로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아사코가 만들었던 수많은 상자처럼, 모두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어느 하나도 똑같이
않은 두껑달린 상자들처럼. 글을 읽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기억과 경험과 그릇으로 찾아
내는 느낌과 생각들이 소설이 원하는 주제는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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