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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지내나요, 청춘 - Soulmate in Tokyo
마이큐.목영교.장은석 지음 / 나무수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 (주)백도씨의 <잘 지내나요, 청춘>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는 예술은 죽었다고, 또는 뚜렷한 사조가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를 바꿔 말하자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뜻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 가능성에 눈을 뜨고 있다.
예술이란 '최신'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다음'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 <잘 지내나요, 청춘>의 본문(p177) 중에서.
망설임없이 제목이 끌렸다.
'왜'라는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일본이라는 이국적인 풍경속으로 무작정 배낭 하나 둘러매고 그곳으로 가고 싶었고,
어쩌면 기억속에서 잊혀져가던 내 청춘도 거기 있을 것만 같았다.
서른이란 말이 얼마나 두렵고 걱정스러웠던 나이였는지, 새삼 세 남자를 통해 다시 기억해냈다.
나는 서른은 스물과는 너무 달라서, 결코 되돌아 올 수 없는 큰 강처럼 느껴졌었다.
어린아이가 갑작스레 어른스러운 옷을 입고 말투를 바꿔야 하는 것처럼 부자연스럽게 느껴었고,
스물의 내가 가졌던 무엇을 포기하고 서른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막막했었다. 내 서른은 그랬다.
사진쟁이와 그림쟁이와 음악쟁이, 세 남자. 그들은 무엇 때문에 일본으로 갔던 걸까.
어쩌면 나처럼 서른이 되기 전에 혹은 서른을 축하하는 작은 의식처럼 일본을 선택했던 걸까?
그들 어깨너머로 이국의 도시풍경은 여행이 아니였다. 그렇다고 도피도 고민도 사색도 아니였다.
그들에게 처음부터 일본으로 가는 목적이 있었던 걸까?
서른 즈음 젊음이란 렌즈는 있는데, 그 렌즈를 들여다 보는 그들만의 온기나 색깔은 그다지 없다.
그들이 사진과 그림과 음악에 미쳐있는 뜨거운 젊은이일거라 생각했고,
그들이니까 가졌을 법한 그들만의 열정이나 솔직한 상처, 그리움이 보고 싶었다.
그것이 내게서 잊혀져가던 내 젊음의 열정을 다시 기억나게 하고,
혹시 내 삶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줄지도 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춘'이란 말 뒤에 감추어둔 인생의 열병같은 고뇌나 아픔, 열정을 담고 싶었다면
사진에 일본이 담기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도쿄나 낯선 거리이름 쯤 기억나지 않아도 좋았다.
창문 틀 하나만 내걸린 사진이라도 그 너머로 얼마든지 그들의 아픔과 비슷한 내 아픔을 만났을 것이고,
그들의 주체할 수 없어 흔들리던 열정에서 무모할만큼 뜨거웠던 내 열정도 기억해냈을테니.
그러나, 보여줄 수 있는 속마음들만 보여준다는 느낌. 말할 준비가 된 것들만 말하고 있다는 느낌이였다.
그것도 아니라면 특이한 느낌의 이국 땅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었다.
어쩌면 보통 사람들이 일본이라는 도시 곳곳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과 또다른 이국풍경이 보고 싶었다.
그것이 어느 이국의 처마 밑이라도 좋았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페인트 자욱이라도 좋았고
이국에서의 새벽 공기라도 좋았고, 또다른 이국의 젊은이들의 열정으로 뜨거운 장소라도 좋았다.
흔히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볼 수 있는 사진이 아니라, 열정을 한번쯤 품어 보았고
열정으로 온몸이 뜨거울 수 있었던 젊은이의 눈에 비춰질 수 있는 사물이나 사람이면 무엇이라도 좋았다.
그런데, 내게 그런 느낌으로 와닿는 사진은 없었다. 그 점이 아쉬웠다.
책 제목이 주는 아쉬움, 그것이 너무 커서 기대감 없이 보는 것만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