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코의 지름길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3
나가시마 유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 비채의 <유코의 지름길> 

 


나도 멋대로 주위 사람에 대해 요모조모 생각한다.
특히 여기와서부터 이것저것 생각만 해 왔다.
지금 이러는 것처럼, 가스페이지를 보며, 혹은 횡단보도를 건너며, 2층 철 계단을 오도카니 서서.
                                         -  <유코의 지름길>의 본문 (p 237) 중에서.
  


    솔직하게 말해서 읽는 순간보다, 읽고 난 후에 느낌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던 책이다.
이 책을 에워싸고 있던 화려한 수식어가 많았다. 일본인으로서는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에 의해 제1회 오에 겐자부로상을 수상한 작품이라는 것과, 그의 심사평에 의하면
가능성과 성과를 인정할만한 ’문학의 언어’를 지닌 작품이라는 것이다. 또, 그리운 소설의 매력을
완연히 새로운 일본인을 통해 구현한 작품이며, 본인의 눈에만 발견된 것을 별다른 의식없이 소설
속에 드러내는 재미를 가진 작품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평가들은 오직 한 사람, 오에 겐자부
로의 나가사미 유에 대한 평가였다. 같은 글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고,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유난히 실감나게 한다.

   나는 이 소설이 오에 겐자부로로부터 왜 그토록 칭송받는지 사실 납득이 쉽지 않다. 그리고 그가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의 경력을 가졌기 때문에 너무 쉽게 그의 평가를 사실화 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생긴다. 내게는 오에 겐자부로도 한 사람의 독서가에 지나지 않으며, 그의 의견은
책을 읽으면서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자기생각과 느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 작품
을 평가할 때, 얼마나 진지하고 고심하고 객관적이였을지에 대해 나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또한 서로 다른 언어가 번역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 순수한 매력을 어느 정도 잃었거나 퇴색해서
제대로 공정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원작을 혼자 읽어낼 실력이 없으
므로 다만 나는 내 가슴이 느끼고, 내 머리가 생각하는 대로 정리할 뿐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특이하다. 이름도, 나이도 외모도, 과거나 성격상의 특성도 없다. 그러나
그 주인공의 눈과 귀를 통해서 주변인물과 상황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그를 쫒지 않
으면 안된다. 소설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정보도 모르는 이 남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어렴
풋이 그를 알고 있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 때문이였을까. 소설 속의 그의 표현처럼 누구나 다른 사
람을 두고 혼자 상상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를 통해 내 내부 어디엔가도 존재하는
나와 혹은 나 이외에 누군가와 비슷하다는 느낌들을 찾아냈기 때문일까. 어쨌든 어두운 얼굴을 
가졌고 일이 하기 싫어져버린 한 남자가 후라코코의 창고같은 2층 방에 옮겨와 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상자 그 자체에는 아무 의미가 없는 모양이야.
상자에 최소한의 유용성이 있기에, 희박한 의미 가운데 우연히 선택된 물체에 불과해.
오히려 그것을 쉼 없이 만들어 낸다는 것, 즉 행위를 반복하고 작업을 연속한 결과,
비슷하면서도 아주 조금씩 다른 물건이 만들어지면서 중첩해 간다는 것, 
그 모두가 창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 <유코의 지름길> 본문(p 124) 중에서. 

  
내 생각인데, 당신이랑 점장은 매일같이 내내 지켜봤잖아.
가게 뒤에서 아사코 씨가 만드는 걸, 그것 자체가 작품이 아니었을까.
                                 - <유코의 지름길> 본문(p 140) 중에서.

 
   아사코가 졸업 작품으로 여덟박스 분량의 많은 두껑있는 상자들을 만든 것을 두고, 그것을
지켜보거나 지원했던 많은 사람들을 저마다 그 상자에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쓴
다. 작가는 그녀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매일같이 몸을 아끼지 않고 그 상자들을 만들었는지 보
여주지만, 그 상자들은 수작업의 특성상 완전히 똑같지는 않더라도 모두 같은 상자들이였다.
아사코는 이 작품을 보고 무엇인가 연상된다면, 자신의 작품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문득, 이 대목에서 매일 비슷한 일상들이 연속되고 있는 소설 속에서 나만의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내 모습을 느꼈다. 이토록 반복적이고 느리고 특별한 감정의 굴
곡도 그 흔한 남녀감정도, 슬픔이나 놀라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클라이막스 조차 없는 이 소설을 바라보는 내 느낌이 똑같은 수많은 상자들을 보는 그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혹시, 나가사미 유는 내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소설에서 무엇인가를 연상하게 된다면 실패한 것이라고. 약간의 쓴 웃음이 난다. 나는 무엇을 느껴야 하나. 나는 무엇을 생각해야 하나. 이토록 난감한 소설은 처음이다. 
 
   파리로 훌쩍 날아가버리는 사람들. 주인공은 그들이 친절하고 특별한 이웃이라고 말하지만
그가 왜 그의 주변사람들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별로 공감되지는 않는다. ’미즈에’라면
모를까. 미즈에는 퍼주기에 도가 지나칠만큼의 관심을 가졌으니까. 하지만, 사람이 사람에게
특별한 정이라는 게 쌓이려면 그보다 좀더 우여곡절이 있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일본인 특유의 문화 안에서는 가능한걸까? 그렇다
면 이 부분의 공감은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덜 섬세한 그의 감정처리가 마음에 와닿지 않아서
이고, 또 한편으로 이국적인 감성에 충분히 젖어들지 못한 이질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끝끝내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왜 하필 괭이갈매기 소리였는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특별히 따뜻한 것도 특별히 그리운 감정도, 강력한 메세지도 없었다.
꼭 그래야 하는가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문학작품이란 이름
을 가진 글은 평범한 수다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에는 글 속에서 뿐만 아니라,
글을 읽는 인간에게도 ’변화’라는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변화가 작든 크든,
외부적인 것이든 내부적인 것이든 나는 그것이 선택이 아니라, 필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방식대로 소설을 읽었고, 허탈했다. 

    그래서 문득, ’매일같이 지켜보던 당신이 작품이 아닐까’라던 대목을 떠올렸다. 소설을 읽
는 내내 작품속의 인물들을 모두 빠짐없이 지켜보고 그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내 모습,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고 소설속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소중한 기억이나, 느낌, 생각들을 찾아내고
기억해내려고 애쓰던 내 모습이 그가 원한 작품은 아니였을까. 그렇게 멋대로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아사코가 만들었던 수많은 상자처럼, 모두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어느 하나도 똑같이
않은 두껑달린 상자들처럼. 글을 읽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기억과 경험과 그릇으로 찾아
내는 느낌과 생각들이 소설이 원하는 주제는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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