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
수산나 알라코스키 지음, 조혜정 옮김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표지의 그림이 예뻐서 '돼지우리'라는 제목과 좀처럼 어울리지가 않아 보였다. 그러나, 표지의 소녀인 레나가 흰 고양이와 함께 앉아있는 지붕의 건물은 '돼지우리'라고 불리는 스웨덴의 임대아파트이다. 레나의 가족은 핀란드에서 더 나은 삶을 찾아 스웨덴으로 이주해왔으며, 경제적 기반이 허약한 탓에 살던 곳보다는 천국인 이 아파트에 입주했다. 보기 흉한 것들을 가려버리는 밤의 효과인지 창문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근심어린 표정은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저 밤풍경을 만끽하는 사람들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처음 책을 넘기면 조금은 충격적인 내용이 나온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뿌띠가 새끼를 낳으면 레나의 부모는 그즉시 물에 빠뜨려 죽인다. 그중 한 마리를 남겨두고 띠뿌라고 이름지었다가 그 고양이가 새끼를 낳으면 또 물에 빠뜨려 죽이는 것의 반복이 이어진다. 잘못 생각하면 동물 학대주의자가 아닌가 싶지만, 레나의 부모는 다만 그 많은 고양이들을 키울 수가 없는 형편이라는 이유로 하기 싫은 행동을 하는 것일 뿐이다. 죄없는 새끼고양이까지 죽여야 하는 현실은 앞으로 펼쳐질 순탄치 못한 삶, 현실을 현명하게 풀어나가지 못하는 우둔한 삶을 예고하는 듯 했다.

레나가 새 보금자리에서 새 친구를 사귀고 이웃들과 관계를 맺어나가는 일상적 광경을 책은 영화를 보여주듯이 묘사한다. 곧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은 어머니의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다를 훔쳐듣는 레나는 그 이야기들 속에서 어른의 세계를 배우기도 하고, 남편없이 혼자 사는 친구 오쎄의 어머니가 애인과 만나는 장면을 엿보기도 한다. 가난, 되는대로의 삶, 그래도 따뜻함이 흐르던 분위기는 곧 반전으로 치닫는다. 이웃끼리 모여 친목을 다지는 자리는 곧 술판이 되어버리고, 삶에 지친 레나의 아버지는 서서히 알콜중독에 빠져 집안을 공포 분위기로 만든다. 레나의 어머니는 함께 술을 마시는 방법으로 고단한 삶에 대적할 뿐 돌파구를 찾지 못하여, 레나와 형제들은 의지할 곳 없이 고통의 나락으로 빠져든다.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알콜중독 치료를 받은지도 여러 번, 알콜중독이란 것이 이렇게 끈질긴 것이구나 싶을 정도로 레나의 아버지는 음주를 반복한다. 지겹고도 끈적끈적하게.

부모가 각각 병원과 보호소로 떠나자 정부의 공인 가정부가 레나의 집에 온다. 말끔히 청소하는 건 물론이고 맛있는 음식, 그리고 어디서부터인지 새 침구들을 배달시켜 집안을 정리해준다. 복지국가 스웨덴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안정을 되찾은 레나의 집으로 다시 돌아온 부모님은 예전의 좋았던 모습으로 돌아가는 듯 하다가도 끝내는 레나의 마음에 배신감을 심어주곤 했다. 음주기간과 금주기간의 끝없는 반복으로 인해, 짧게 찾아온 금주기간의 평온함은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레나는 좀더 나은 환경을 찾아 집을 옮기는 철새처럼 집으로부터의 독립을 준비하며 내일을 준비한다.

제3자의 시선으로 묘사한 프리드햄 이웃들의 희망없는 삶을 따라가며 돌파구가 보이지 않음에 같이 답답해했다. 그들의 삶에 나까지 매몰되어가는 것 같아 책을 읽는 것이 즐겁지 않았다. 처절하게 망가져가는 레나의 아빠와 무력하게 생을 마감하려 하는 엄마 밑에서 10대 초반의 어린 소녀의 선택권은 그리 넓지 못하다.
삶을 파괴하는 알콜, 알콜과 가까워지게 만드는 세상.
그러나, 레나는 그런 세상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부모세대와는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 분명한 레나의 단단하게 여문 정신을 만난 것은 책의 결말이 준 선물이다. 문제아가 될 수도 있었던 문제의 환경이었지만, 환경에 굴복하지 않은 채 심지를 굳히고 솟아오르는 단단한 새싹과도 같았다. 레나가 어린 시절에 경험한 고생이 상처가 되기보다는 교훈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은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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