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스 뜨는 여자
파스칼 레네 지음, 이재형 옮김 / 부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레이스 뜨는 여자'를 읽기 시작하면서 작가가 문장을 풀어나가는 섬세함과 독특함으로 인해 미로를 걷는 것처럼 어지럽기도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내용을 줄줄이 나열하여 읽기 쉽고 속도감이 빠른 소설과는 절대적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바라보기만 해도 그 살결이 손가락 씻는 예쁜 물그릇을 차갑고 투명하게 만들 것 같은 아주 갸날픈 쳐녀들의 그 매력적인 연약함은 지니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손은 아래팔에 대충대충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단하게 붙어 있었고, 아래팔은 위팔에, 그리고 잇달아 그런 식으로 붙어 있었다.(p 11)--
--아무리 추한 계집아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꿰뚫고 지나가며 그드의 내부에서 자신을 스스로 모색하고, 어떤 식의 공모로도 결코 축소할 수 없는 욕망으로 말미암아 은은히 반짝이는 삶의 그 경이로운 순간, 뽐므는 그 순간을 거의 무한정으로 연장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었다.(p 28)--
읽다 말고 이게 무슨 소리야 하며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구절들. 그래서 두께가 얇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린다. 소설은 시각적 매체가 아니라서 그만큼의 상상력과 뇌의 활동을 필요로 한다더니, 그야말로 집중과 상상력이 곁들여지지 않으면 그 감칠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내용은 미용업에 종사하는 뽐므라는 아가씨와 대학생인 에므리의 연애담이다. 줄거리의 표면만 보면  신분 차이가 나는 커플 중 위의 계급에 속한 인물이 자신보다 못한 상대에게 싫증을 느끼고 떠나는 것이지만, 이 이야기는 단순함을 훨씬 넘어선 소통과 사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선, 필요한 말밖에는 하지 않았던 아빠의 가출과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가족이라는 편한 공간에서의 소통조차 원활하지 못했던 뽐므의 상태를 알 수 있다. 또한, 지적인 영역까지 교감하길 바랐던 에므리로서는 빗자루와 깡통따개, 빨간 고무장갑이 먼저 생각나는 뽐므와 오랜 기간동안 연인의 관계를 지속하기가 불가능했다. 연인으로부터 버림받고 들어온 뽐므에게 엄마는 많은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되지 않았고, 뽐므는 서러움을 표현하고 위로받기보다 의젓하게 행동하며 수치심을 감추는데 급급했다. 뽐므는 하고픈 말을 속에 담은 채 거식증에 걸려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입원하여 치료중인 뽐므는 문병차 찾아온 에므리에게 담당 의사 선생님을 소개해 주려고 하나, 의사는 못들은 척 계속 걸어가기만 할 뿐이다.
--그는 그녀를 못 보거나 그녀의 말을 못 들은 듯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는 다시 정신과 의사, 감시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짐승에게 함부로 먹이를 던져 주지 않는다. '레이스 뜨는 여자'는 그녀의 벤치 위에, 그녀의 창유리, 그녀의 창살 뒤에 다시 앉았다.(p 150)--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한 동명 영화의 엔딩 장면은 관객을 응시하며 많은 이미지를 함축했던 뽐므의 눈길이었지만, 소설의 결말은 뽐므가 에므리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려는 듯 짐짓 웃음까지 보여준 부분에서 끝난다. 뽐므의 미래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불분명하다.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거식증을 회복하고 퇴원할 수 있었을까? 뒷줄거리는 독자들의 몫이다. 소설 속의 사회성과 철학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따라 그 결말은 바뀌어 저마다 다른 의미의 '레이스 뜨는 여자'를 가슴 속에 품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