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밀사 - 일본 막부 잠입 사건
허수정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팩션을 통해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한 요즘이다. 좀더 구체적인 상황에서 역사의 한 부분을 관조하면서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을 마치 눈앞에 보는 듯이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어느 정도의 허구가 섞여 있어 완전한 진실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지라도 소설가들의 고증과 상상력으로 역사의 줄기에 접근하는 것은 독자들에겐 훌륭한 선물과 같다. 그러나, 역사의 일정 부분만을 차용했을 뿐 연계성이 떨어지는 허무맹랑한 스토리나, 고증이 뒷받침되지 않은 겉모양만의 팩션은 독자들에게 곧바로 외면당할 수 있다. 다행히도 '왕의 밀사'는 그런 류의 작품은 아니다.

북벌정책을 추구했던 효종은 북쪽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히 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조선통신사를 이용해 막부의 권위를 다지려던 일본의 이해관계와도 맞아떨어져 효종 6년에 485명으로 구성된 조선통신사가 일본에 파견되는데, 이 조선통신사의 파견은실제로도 있었던 일이다.
책에서는 조선통신사의 종사관이었던 실제인물 남용익을 등장시키고 통역사의 역할을 맡은 가상의 인물 박명준을 주인공으로 하여 일본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박명준은 탐정과도 같은 추리력으로 누명을 쓰고 갇힌 남용익을 구출하는 역할을 맡는다.

사건이 일본에서 벌어지는 만큼 일본 내의 정치상황이 곧 중요 배경이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에서 막부를 열어 상업과 서민문화를 발달시켜 나가며 교토의 천황도 제압할만한 세력을 과시한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막부와 황실의 세력 다툼이 소설을 지탱시켜 나가는 배경이 되므로, 일본 내의 정치상황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상태에서 소설을 읽으면 좋다. 소설의 내용을 따라가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기도 하지만, 배경을 탄탄히 하기 위해서는 책 뒤에 소개된 '당시 일본 권력 지형도'를 참고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살인의 동기는 쇄국정책을 펴는 막부에 대한 반감에서 연유하였으며, 외부와 당당히 통상하는 일본의 변화된 모습을 만들기 위한 신념이 이런 거사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역사적 사건에 살인사건을 접목시키면서 살인의 동기와 설득력,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느꼈던 점이다. 즉, 탄탄한 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범인을 잡는 과정의 긴장감처럼 추리소설에서 찾을 수 있는 재미의 측면에서는 썩 만족하진 못하였다. 역사를 고증하면서 서스펜스까지 가미시키기란 좀 어려운 과정이었던 것도 같다.

남용익과 박명준은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가 효종을 대하게 되는데, 미리부터 일본과 은밀하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던 효종의 영민함과, 벼슬보다는 어린 시절의 사랑을 찾아 떠나는 박명준의 세상을 달관한 자의 여유가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여유롭게 빛내며 마무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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