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사 장기려
손홍규 지음 / 다산책방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의 길이 옳은지에 대해 반문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해댔던 의사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 말기와 남북 이념의 혼란기를 거치며 가족이 남과 북으로 갈려 생이별을 하면서도 오직 생명을 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신 장기려. 이 분의 삶을 나는 처음 뵈었다. 

지금에서야 안 것이 죄송스러울 만큼 존경스러운 이 분이 나와 같은 시대를 호흡하며 살다가 1995년에 86세의 삶을 마감하셨다고 한다. 마음만 먹으면 의사로서 부를 축적하고 높은 자리를 탐낼 수도 있었겠지만, 북쪽에 있는 헤어진 가족을 그리며 재혼도 하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집 한채 남기지 않고 무일푼인 채로 떠나셨다. 돈이 없어 진료를 못받는 사람들이 생기지 않도록 젊은 시절부터 무의촌진료를 했고, 받은 월급의 일부를 환자들을 위해 사용할 만큼 세상의 물욕과는 거리가 멀었던 분이다. 입고 있던 외투를 거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벗어주고 올 정도로 나누는 삶을 실천했지만, 그러면서도 눈에 보이는 일부 사람들만을 위하는 이 삶이 최선인지 고뇌하던 장기려의 순수한 마음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해방 후 좌익과 우익으로 갈린 이념의 시대를 겪으며 같은 민족끼리 증오와 반목을 일삼던 이때, 장기려는 평양의 병원에서 근무 중이었고 김일성의 충수염까지 수술하는 인연을 맺는다. 북한에서도 손꼽히는 의료인이었으며 김일성대학에서 교수로 일했던 경험은 후에 남쪽에서 빨갱이로 몰려 고초를 겪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당시는 이념으로 미친 시대였던 것 같다. 그 어느 곳도 식민시대의 아픈 상처를 차근차근 치료해나가려 하지 않았으며, 곪은 상처를 급하게 건드리다 탈이 난 것처럼 부작용이 가득했던 시대였다. 이념으로 몰아대고 이념으로 죽이던 시대에 진실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노력은 변두리만을 맴돌았다. 이런 혼란기 속에서 장기려는 또렷한 색깔을 원하던 남과 북 양쪽으로부터 이념과 사상을 의심받으며 살았지만, 오로지 환자들의 생명 구하기에 전념하며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장기려를 특별하거나 타고난 사람으로 미화하지 않았다. 대학시절, 성적이 그리 뛰어날 것도 없던 한 학생이 진로를 정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정상에 서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장기려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일제 강점기 말기의 일본의 발악과 해방을 맞아 기쁨을 즐기던 민초들의 마음, 그런 마음을 거스른 채 남과 북으로 갈리며 서로가 서로에게 적이 되어간 역사의 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된다. 남과 북이 친일파들을 다루는 데 있어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도 드러나며, 온건좌파와 우파였던 현준혁과 조만식 선생의 죽음으로 이념의 완충지대가 날아가버린 그때 그 사건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평양의 의사로서 6.25를 겪었던 장기려의 당시 고뇌가 그대로 배어 나온다. 

순수했던 젊은 시절에 삶의 목표를 세우며 큰 이념을 위한 원대한 포부를 세우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시절 자신과의 약속을 평생을 이끌어나가는 기준으로 삼고 꿋꿋하게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장기려는 의사가 되고자 했던 초기의 신념을 버리지 않았으며 성자란 말이 어울릴 정도의 삶을 살았음에도 스스로 의사로서의 삶에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반문하며 노력했다. 그의 삶 속에서 모든 위인과 성자는 타고난 것이 아니라, 자기 성찰을 반복하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