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1 - 시대를 일깨운 역사의 웅대한 산
한승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다산'을 읽으면서 초기에 든 느낌은 '그리움'이었다. 진실로 백성을 생각하는 참된 정치가의 모습을 지닌 정약용이 그립고, 노론의 강대한 힘에 맞서며 바른 정치를 펴셨던 정조가 그리웠다. 조선의 역사를 발전적인 모습으로 한참을 끌어당기셨던 두 분의 업적이 없었다면, 미래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아니 그같은 분들이 한차례 더 나와 전성기를 구가했었다면 어땠을까...군신간에 믿음과 존경이 오가는 보기 좋은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할 수만 있다면 2008년을 고이 접어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역사는 돌고 돈다는데, 내가 있는 곳은 어디쯤일까.

소설 '다산'에서 정조를 만나고, 희미하게나마 사도세자의 흔적까지 밟을 수 있었던 것은 덤으로 얻은 즐거움이었다. 사도세자를 그리 만든 노론이란 정치집단에 깊은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그같은 이익집단의 존재와 이기경의 배신과 같은 사건들이 자꾸 현재의 정치 현실과 오버랩되어진다. 역사서를 읽는 또다른 재미이다.

진리를 추구하던 학문에의 열정은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유학의 논리를 뛰어넘어 천주교의 교리와 맞닿으며 새로운 깨달음을 구했다. 천주교의 이론을 빌린 주자학의 해석은 기존의 학문에 갈등을 느끼던 정약용과 진보적 남인 세력들에게 물꼬를 터주는 역할을 했고, 한번 천주교로 빠졌던 전력은 내내 노론으로부터의 공격 대상이 되어 유배길로 오르는 원인이 된다. 지금도 다산의 사상은 깊이 존경받으며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산비결'의 혁신적인 내용은 당시 조선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평등과 개혁 사상을 내포하고 있어, 그의 사상이 시대를 뚫고 먼저 한참을 앞서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의 형제들 또한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다.
4살 터울의 형인 정약전과의 우애는 깊고도 깊어 함께 유배길에 올라 이별을 나누면서도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 될까봐 마음 졸이던 행동이 잘 나타나 있다. 행여나 근심 속에 약주로 몸을 버릴까 서로 잔소리도 잊지 않는 형제는 그 예감이 맞아떨어져 이후 다시 보지 못한 채 정약전이 먼저 눈을 감게 된다. 정약전은 흑산도의 유배생활 도중 '자산어보(현산어보)'를 남겼다. 조만간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이다.
한편, 천주교를 학문으로 받아들이고자 했던 정약용과는 달리 깊은 신앙으로 모든 것을 걸었던 정약종은 순교의 길을 택했다. 총명했던 정약용의 어린시절과는 별개로, 바로 윗형이면서 동생에게 뒤져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열등감과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내쳐진 경험이 있는 아픈 기억을 안고 사는 정약종의 삶은 내내 가시를 씹는 것처럼 편안하지 못했다. 그의 억눌린 소외감은 천주교의 하나님을 만나면서 절대적 신앙의 경지에 도달하여 순교도 그 무엇도 겁내지 않는 신념으로 승화한다.

저자 한승원은 다산을 매우 아끼는 작기라고 한다. '다산' 집필에 앞서 '흑산도 하늘길'에서 정약전을, '초의'에서는 제자였던 초의스님을 소설로 그려냈었다. 이런 작업들은 모두 '다산'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왔으며, 그 대단원의 결과물이 '다산'인 셈이다. 짤막하게 나누어져 있는 단원들의 스피디한 전개로 지루할 틈없이 읽어내려가게 만든 힘은 오랜 시간을 거친 준비작업의 힘이자 결과라고 여겨진다.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역사를 바로 보게 만드는 소설가의 힘은 크고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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