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펭귄클래식 19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최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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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클래식의 두 번째 책으로 만난 '첫사랑'은 투르게네프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어머니와 강제결혼을 해야 했던 가난한 가문 태생의 아버지는 가정과 아들에게 모두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예의바르게 대했고, 투르게네프는 그런 아버지를 사랑하면서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바라봤다. 이 점은 소설 속 블라디미르와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와 닮아 있다. 

한 소년이 사랑에 눈을 뜨면서 겪는 심리의 변화, 맹목적인 열정이 이성을 갖추는 단계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려낸 이 소설은 점차 붕괴되어 가는 러시아의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몰락한 공작가의 딸로서 남자들의 애를 태우며 그들의 감정을 조종하던 지나이다의 행실은 어찌 보면 한심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진짜 사랑에 눈을 뜨면서부터는 앞뒤 사정 가리지 않고 열중하는 순정파이기도 하다. 물론 상대가 유부남이라는 것에서 도덕적 비난이 따르지만, 뛰어난 외모에 영리함을 갖춘 그녀는 최소한 된장녀는 아니었던 셈이다.

항상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첫사랑의 여인에 대한 애태움, 그녀의 행동거지 하나에 감정의 파란이 들썩이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블라디미르가 원래 해야만 했던 공부는 뒷전이 되고 만다. 왠지 사랑에 빠진 듯이 보이는 지나이다로부터 의심의 눈길을 거둬들일 수 없었던 그는 밤에 아버지의 존재를 목격하여 충격을 받았고, 이어 누군가의 투서로 아버지의 외도가 어머니에게까지 알려지며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투르게네프가 이 소설을 처음 썼을 때에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고아의 입장이나 마찬가지가 된 블라디미르가 다른 아저씨의 집에서 사는 것으로 설정되었다고 한다. 이후 작품을 개작하면서, 사랑하는 여인인 지나이다에 대한 마음과는 또다른 차원의 애정의 대상인 아버지를 질투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독특한 관계로 바뀌었다. 사랑의 완성인지 실패인지를 따지는 결과론을 떠나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복잡다난한 감정의 하나로 사랑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개작의 결과가 더 맛깔스럽다고 생각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 사랑을 완성하기는 커녕, 지나이다의 배신(그 혼자만의 생각으로는)의 대상이 아버지였다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블라디미르는 차츰 제자리를 찾아간다. 아버지와 지나이다의 사랑은 그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강력하고 원숙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후 대학을 졸업한 후 직업을 정하려는 시점에서 우연히 듣게 된 지나이다의 사망 소식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젊은 날의 사랑과 아픔을 떠올리게 한다. 첫사랑은 블라디미르의 남은 인생동안 그가 영원히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 추억으로 가슴속에 포개진다. 사랑은 최고점의 클라이맥스를 넘어서는 순간 한풀 꺾이며 식혀진 열정이 되는, 마치 변화하는 생물체처럼 행동하는 감정이지만, 휘몰아치는 열정의 힘이 지배하는 첫사랑의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나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잡기 마련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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