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초등학생용 세계명작에도 나올 만큼 대중적인 소설이지만, 성인용으로 나온 책을 정식으로 읽어보긴 이번이 처음이다. 펭귄 클래식 시리즈 중에서 처음 읽어보는 책이라 번역은 성의껏 되었는지, 안의 구성은 어떠한지 따위가 은근히 궁금하기도 했다. 일단 형식면에서 합격점을 주었다. 판본에 관한 내용의 서문과 뒤편에 나오는 지킬박사 분석에 관한 글, 그리고 저자인 스티븐슨이 소설 집필 과정을 쓴 '꿈에 관하여'와 같은 충분한 배경지식이 나를 만족시켰다. 번역도 훌륭하다. 몇 페이지를 읽어내리기도 전에 이 책은 속독으로 읽으면 안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괴기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주변풍경을 그려내는 문장이나 심리상태 등의 묘사가 충분히 작품이라 손꼽힐 만큼 수준 이상이어서 문장을 음미하며 읽어야만 제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킬은 왜 하이드로 변신하는 크나큰 실수를 저질렀던 것일까? 갑자기 성선설과 성악설이 생각난다. 인간의 본성이 어느 것에 더 가까운지 모르겠지만, 누구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갖고 있다면 나쁜 면을 억누르고 좋은 점을 발현시키기 위해 교육을 받고 교양을 쌓는 것이리라. 그러나 젊은 시절 쾌락을 맛본 지킬은 의사라는 신분에 걸맞게 철저히 도덕적으로 무장된 모습을 보이지만, 내면에서 꿈틀대던 방탕한 악마적인 면도 또한 자신의 다른 모습이기에 약물까지 만들게 된다. 이 부분이 현실성이 떨어져 비판을 받았다고는 하나, 인간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악마적 성향을 분리하여 보여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설정이었던 것 같다. 도덕성에 상처를 주지 않고 양심의 가책도 받지 않으며 두 삶을 영위하던 지킬은 악의 힘이 점점 커지면서 약물의 힘을 빌리지도 않고 가끔씩 튀어나오는 하이드의 존재로 파멸의 길을 걷는다. 

어쩌면 지킬과 하이드는 우리 생활에서 동떨어진 소설 속의 일만은 아니다. 다중인격 쟝애라는 병은 한 몸 안에 전혀 다른 여러 개의 인격이 있어 하나의 인격이 활동할 동안 다른 인격은 그 기억으로부터 분리된다고 한다. 어떠한 충격이 해결되지 못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리시켰던 자아가 나중에 나타난다는 원인 면에서의 차이는 있으나, 인간의 분열된 자아의 존재면에서 동질성이 있다.
또한, 어떤 일을 앞두고 마음 속에서 천사와 악마가 싸우는 설정은 만화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분열된 자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내면의 여러 인성을 내보이는 점에서 조금은 닮아 있다.
하이드라는 존재는 인간이 쉬쉬하며 감추고 싶었던 부분일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의 한계상 갈등을 빚는 여러 인성이 존재하고 나쁜 쪽으로 치닫는 인성이 분명 내부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것을 지킬박사처럼 외부로 발현시켜 욕구를 충족시키기보다 억누르고 순화해 나가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있다.

이외에도 두 편의 단편이 더 있다. '시체 도둑'은 짤막하고 으스스한 내용이 추리소설처럼 재미있었고, '오랄라'는 심리를 장황하게 다룬 면이 조금 지루했고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은 면은 있지만 스티븐슨의 작가적 역량이 충분히 드러난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흡혈귀라는 설정을 나중에서야 알고 조금 당황했다. 피를 보고 손가락을 물어뜯던 장면에서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으니, 어지간히 둔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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