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키핑
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책을 덮고 나서야 뒤 표지에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하우스키핑>은 절대로 서둘러서 읽어야 하는 소설이 아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의 성격을 명확하게 진단해주는 도리스 레싱의 글이다.

개인적으로 한참 바쁜 시기에 책을 읽게 되어 문장을 음미할 새도 없이 읽어대는 동안, 마음은 어쩐지 느릿느릿하게 읽을 것을 권유한다 했다. 결코 예사롭지 않은 문장이었다. 번역한 것도 이런 정도라면 영문 자체의 멋은 훨씬 더할 것만 같았다. 유창한 독해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원서로 읽어보면 어떨까? 이런 이유로 영어 잘하는 사람이 부러워보긴 처음이다. 

루스와 루실의 엄마는 아이들을 할머니 집에 맡긴 채 차와 함께 호수로 돌진한다. 호수는 오래 전 외할아버지가 탄 기차가 떨어지면서 수몰된 장소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에서 알 수 있듯이 지극히 목가적이고 자연적인 주변 환경이지만, 가끔은 홍수의 피해를 겪게 되는, 그 누구도 자연재해 앞에서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이곳에서 이모와 함께 사는 루스와 루실은 서로의 많은 것을 공유하던 자매지간이었지만, 이모의 떠돌이 기질을 참을 수 없었던 루실은 집을 나가 다른 삶을 택한다. 루실과는 달리 이모에게서 엄마를 느끼는 루스는 아이를 키울 자격이 이모에게 없다고 생각하여 둘 사이를 떨어뜨리려는 사람들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모와 함께 집을 떠난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하우스키핑의 삶이라고 해서 그 이외의 다른 삶을 배척해도 되는 것인지,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은 없다는 식으로 살아도 되는 것인지, 이미 꽁꽁 다져진 채 굳어버린 사고를 뒤흔든다.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포기되어야 하는 다양성의 삶을 너희가 막을 권리가 있는지 책은 묻고 있는 것 같다.

소설은 언어로 쓰인 작품이라는 것이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문장이 모이고 모여 줄거리를 이루면서 문장 자체로서는 설 자리가 좁은 일부 책과는 달리, 문장의 자리가 굳건한 이 책은 단번에 줄거리로 가도록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문장의 유려함을 한 고개 타고 넘으면서 서서히 줄거리의 파악도 이루어진다.

책 뒤에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의 해설이 실려 있다. 내가 느끼지 못했던 부분까지 잡아준 기막힌 해설로 책을 200% 완벽하게 설명해내고 있다. 여유를 가지고 읽지 못했던 불완전한 독서의 보충을 이 해설로서 많이 메꿀 수 있었다. 여유가 생기는 날,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어 읽으며 완성도 높은 문학작품을 즐기리라 기약하면서 아쉽고 성급한, 그러나 흐뭇했던 독서 시간에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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