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는 언제나 그 책을 읽었다 - 영화와 책이 있는 내 영혼의 성장기
이하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영화와 영화 속 장소를 연결시켜 쓴 책을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영화 속에 등장한 책으로 시선을 돌려 영화와 책의 만남을 시도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영화 '러브레터'에 등장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란 책이었지만, 아쉽게도 이 책엔 그 내용이 빠져 있다. 그래도 다른 23편의 매력적인 영화와 책을 만날 수 있었으니, 내겐 가을걷이처럼 풍성한 수확이었다.

책의 제목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영화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조제에서 따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제란 이름은 영화 이전에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라는 책 속에 존재했었다. 난 책을 먼저 읽었지만 별다른 감흥을 얻지는 못했는데, 불륜의 엇갈린 화살표가 쿨한 이별로 전환하는 과정이 썩 개운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별만 쿨하면 다인가?' 하는 심통맞은 생각이 들기도 했었으니.

그 이후에 봤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구미코는 조제를 거의 동경하다시피 한 나머지 이름까지 조제로 불리길 원한다. 그녀는 왜 조제를 좋아할까? 어렴풋하게 추측했던 내용이 맞다는 걸 이 책의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달 후, 일 년 후'는 구미코의 조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은 영화에, 영화는 책에 옭아매여 있는 듯 하다.

'유브 갓 메일'의 캐슬린은 '오만과 편견'을 200번도 넘게 읽었다는데, 영화를 봤을 때 슬쩍 넘겨버렸는지 그런 말을 했던 장면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채팅으로 만나는 남녀의 얘기여서 컴퓨터나 아기자기한 서점의 내부 모습, 그리고 폭스 서점의 머그컵 따위에 집중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책 '오만과 편견'의 등장은 캐슬린이 상대인 조에게 편견을 갖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책은 기저에 깔아놓은 은근한 복선인 경우가 많다. 영화 속 책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더라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걸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영화 속의 책을 탐구하는 여행은 이 세계를 그동안 놓치고 살았다는 것이 억울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앞으로 영화를 볼 때면 책으로 추정되는 사물이 눈에 보일 때마다 화면을 확대시켜 제목을 알아내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죄와 벌'과 '데미안'이 이토록 다시 읽고 싶어질지 누가 알았으랴!

또하나의 매력은 라디오 프로그램의 방송작가로 일하고 있는 이하영 작가의 글솜씨이다. 저자의 주관적 생각과 경험이 여기저기에 녹아나오고 있는데, 조금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고 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가까운 사람이 들려주는 얘기처럼 편안해서, 모처럼 내가 좋아하는 삼박자인 영화, 도서, 글이 딱 맞아 떨어지는 이상적 배합의 경험을 취할 수 있었다. 기지개를 잔뜩 켠 듯한 나른한 만족감이 밀려오는 것은 이 책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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