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씩 끊어 읽어서 사실 앞부분 기억이 좀 희미하긴 한데 다 읽었다. 참고하려고 앞권 감상문 찾았는데 5권까지 밖에 없더라.

여름이 지나면서 컨디션이 무너졌는지 도저히 독서가 손에 잡히지 않아 한동안 책을 못 읽었는데 오랜만에 페이지를 팍팍 넘겨가면서 읽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사실 이 소설이 그렇게 잘 쓴 소설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문장력이 탁월한 것도 아니고 짜임새가 좋은 것도 아니고 심리묘사를 직접적인 대사로 처리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는 결국 등장인물 때문이다.
조건은 멀게 느껴질지 몰라도 행동과 말에서 친근감이 느껴지는 청춘들. 제 마음에도 확신이 없어 갈팡질팡하며 주변 사람의 말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사랑스럽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16권이나 되는 길이인 만큼 등장인물도 많고 사건도 많아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분명한 건 내가 15-16권을 읽는 동안 펑펑 울었단 거고, 완결을 보고 난 지금 천영이가 아까워 죽겠다! 아니, 그렇게 밀어주시곤 왜 천영이만 이렇죠ㅠㅠ 왜 여섯 명 중에 천영이 혼자만ㅠㅠㅠㅠㅠㅠ

인소의 법칙, 그러니까 인터넷 소설의 법칙이라는 제목이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 그다지 인소와는 관련없는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인물들 스펙 빼고는. 본격적인 인간드라마에 가깝지 않나...
아, 모르겠다. 떠오르는 감상이 대부분 결말 관련 내용이라서 쓰기가 그러네ㅠㅠ 차라리 본격적으로 스포일러를 각오하고 쓰면 모르겠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다. 중간 과정 다 빼먹고 결말 부분 내용만 쓰면 그냥 스포일러일 뿐이잖아ㅠㅠ
우리 애들 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원하던 커플이 이어지지 않은 건 아쉽지만 수록 외전에서 두 사람이 연인다운 관계로 발전해나가는 모습도 재밌고 좋았으니 아무래도 좋다.

중학교 1학년에서 대학 입학까지 6년, 책 발간 시기로만 봐도 6년 정도 되는 긴 시간동안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 보여주신 작가님께도 감사합니다. 저는 뒤늦게 몰아봤지만 단이랑 애들이랑 같이 다시 한 번, 조금 색다른 학교 생활을 즐기는 기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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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참으려고만 할까? -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감정 조절 심리학
이시하라 가즈코 지음, 이정민 옮김 / 필름(Feelm)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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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룩 읽고 끝내려고 했는데 중간에 독서를 못 하는 기간이 제법 길어지면서 꽤 오래 읽고 말았다. 독서기록어플 북적북적 이벤트에 당첨되어서 받았는데 글씨가 크고 책이 가벼울 뿐더러 나로서는 내용도 가벼워보여서 쉽게 읽었다. 왠지 친구가 좋아할 것 같아서 강제로 빌려줄 예정(ㅋㅋ)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바로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행복으로 채워가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양하겠지만, 그 왕도가 될 수 있는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이야기한다. 자기 중심 심리학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종합해보면 자기 자신과 현재에 충실하자는 이야기다.

책은 분노, 인내, 경쟁심, 허세, 불안, 초조함의 순서로 부정적인 감정을 타파하고 그 원인이 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가 일본인이라서 사회나 인간관계 환경 묘사 면에서 약간 한국 사회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하는 점은 아쉽지만 내용면에서는 충실하고 괜찮은 책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선호하지 않는 타입의 도서라서 가볍게 읽고 말았지만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문적인 심리학 도서라기보다는 마음 수양을 위한 기초 안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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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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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슐러 르 귄의 유작 에세이가 막 나왔을 때 황금가지 SNS를 팔로하고 있던 나는 정말 정말 이 책이 너무 읽고 싶었다! 사람들이 읽으면서 공유한 글귀들이 황홀하리만치 근사하고 반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금가지는 또 어쩜 그렇게 리트윗을 많이 해주는지. 그래서 언제 살지 날짜만 재고 있었는데 계속 고민하고 있으려니 무려 친구가 갑자기 선물을 해주지 뭔가! 상냥한 내 친구.

그렇게 읽기 시작한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인데, 설마 완독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ㅋㅋ 2월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8월에 마무리를 짓다니요. 무려 6개월이다. 이럴수가. 변명을 하자면 이 책은 절반 가량 다른 책을 읽고 쓴 르 귄의 감상문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어차피 번역본도 나오지 않은 책들의 짤막한 리뷰를 연달아 읽기가 어려웠다. 안 그래도 르 귄의 에세이집은 아예 별개로 쓰여진 단문을 엮어 만드는 것들이라 읽기가 어렵단 말입니다.

<밤의 언어(http://naver.me/GGh2EKoH)>가 젊고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르 귄을 담고 있다면,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는 더 온화하면서 단단해진 노년의 르 귄이 담겨있다. 처음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를 읽으면서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한 상태로 <밤의 언어>를 읽었더니 거기서는 더 과격한 어조로 같은 주장을 하고 있었다. 노회하고 우아하고 강인하고 멋진 작가, 어슐러 르 귄. 설령 작가를 모르더라도 꿈 꾸는 듯 환상적이고 가슴이 뛰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책에 당연하면서도 충격적인 이야기가 어찌나 많던지 보이는 족족 인용으로 따서 공유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처음 접했던 문구들도 다 그런 거겠지. 그런 인용문을 다 모아보면 책 한 권이 완성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솔직히 어떻게 이 멋진 책을 공유하지 않고, 멀리 퍼뜨리지 않고 읽을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르 귄은 모든 이야기가 작가의 계산 속에서 어떤 노림수를 가지고 만들어진다는 편견을 부정하고, 리얼리즘 문학이 가장 발전된 문학이라는 편견을 부정하고, SF와 판타지를 읽지 않고도 쓸 수 있다는 편견을 부정한다. 그게 얼마나 당연하면서 낯설던지. 내심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지만 한 번도 소리내서 말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들은 적도 없었다. 이렇게 말해줄 사람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생생하고 힘 있는 르 귄의 목소리로 꼭 저 이야기들을 들어봤으면 좋겠다.

내가 읽기 버거웠을 뿐이지 수많은 소설 감상문도 좋기는 했다. 내가 모르던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됐고(상당수는 한국에 번역본이 존재하지 않지만) 또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되던 SF 소재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됐으니까. 찬사도 혹평도 내게는 도움이 됐다. 그냥 르 귄의 말이 좋았다고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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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여름이 끝나면 불청객은 떠난다
도개비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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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작가 유폴히님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로맨스를 읽는 밤(https://www.podbbang.com/channels/1777468)˝에서 무려 첫 타자로 소개된 책이다. 세상에 읽고 싶은 책은 많고 그런 책을 추천해주는 매체도 많지만, 로맨스를 읽는 밤(줄여서 로밤)은 어쩌면 내게는 처음으로 책과 관련된 감상을 들려주는 매체였다. 그저 좋아하는 소설을 쓴 작가님의 SNS를 팔로했는데 이렇게 즐거운 컨텐츠를 준비해주실 줄은 몰랐고, 덕분에 더욱 작가님이 좋아졌다.

로밤에서 <여름이 끝나면 불청객을 떠난다>를 소개하며 했던 이야기를 어렴풋이 기억한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들 하지만, 반대로 더 많이 표현하고 사랑하는 쪽이 가질 수 있는 주도권이 있다던가. 아마 정확힌 표현은 이게 아닐테지만 대충 그런 느낌의 말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거둬갈 수 있지만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랑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그 말이 참 좋았다.

키워드만 놓고 보면 사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소재는 아니다. 연하남. 연상녀. 시골마을. 여름. 여름의 숨막히는 공기도 싫고 폐쇄적인 시골 마을도 싫고 열정적인 연하남도 싫다. 특별히 더 좋아하는 요소는 없어도 사소하게 더 싫은 요소는 있는 내게 다소 좋지 않은 소재의 묶음이었다. 그럼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건 유폴히 작가님의 애정 넘치는 소개 덕분이었다. 읽으며 무척 즐거웠던 소설을 쓴 작가님에 대한 신뢰도 함께.

전체적으로는 큰 우여곡절 없이 잔잔하게, 그러나 먹먹하게 종하의 사랑에 젖어갈 수 있는 작품이다. 첫 만남부터 저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종하를 마음에 담게 된 수연이 종하를 사랑하지 않기 위해 벌이는 혼자만의 사투가 중심 내용. 그게 반한 거냐고? 반한 게 아니면 왜 굳이 첫만남에 보았던 등을 종이에 옮겨 담았을까. 종하를 받아들일 수 없기에 쌀쌀맞았던 수연과 수연을 놓칠까봐 솔직해질 수 없었던 종하를 대신해 두 사람의 마음은 종이 위에서 피어난다.

눅눅하고 숨 막히는 여름 공기와 고요한 시골 풍경은 있는 그대로 수연의 마음 속 풍경이다. 비록 사연은 뒤늦게, 아주 짤막하게 소개되고 말 뿐이지만 독자인 나는 수연이 어떤 마음으로 매일 아침 눈을 뜨는지 절절하게 알 수 있다. 수연이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힘겨운 수연의 마음에 선풍기가 되고 에어컨이 되고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맥주가 되어 종하가 찾아온다. 무뚝뚝하고 퉁퉁거리지만 더없이 다정한 손길로 열렬한 갈망의 눈길을 보내오는 청년은 순식간에 수연의 삶에 파고든다. 황폐한 방안에 훈기를 돌게 하고 맥주 밖에 없던 냉장고에 음식을 채운다. 수연의 생활은 종하로 인해 풍성해진다. 첫눈에 맘에 담게 된 이의 다정한 보살핌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수연은 종하를 떨쳐내야한다고 계속 되내면서도 제 곁을 맴도는 그를 방치한다.

수연은 종하와 자신을 함께 방치함으로써 제 마음을 외면한다. 사랑도 상처도 함께다. 상처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사랑도 받아들일 수 없고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해 상처도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격이다. 엇나가는 마음과 붕 떠있는 수연의 태도에 상처받으면서도 종하는 수연을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 결국 마지막 순간, 수연은 지나간 옛 상처와 함께 종하를 마주 안는다.

이 책을 사놓고 정작 한동안 잡질 못 했다. 읽을 책이 워낙 많기도 했거니와 최근 한달 가량 책이 읽히질 않았다. 그래서 사놓고 안 읽다가, 또 중간까지 읽다가 중단했다가 그랬다. 그래서 지금 이 감상문을 쓰는 시점은 지난 번에 읽은 뒤로 한주 반 정도가 흐른 뒤다. 마지막 페이지를 이렇게 오래 걸려서 닫을 줄은 나도 몰랐다. 그래서 사실 쭉 읽었으면 지금과는 조금 감상이 달랐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기분이 좋고, 친구들에게 한 번쯤 읽어보는 게 어떻겠냐 권하고 싶으니 그 마음을 그대로 적는다.

수연의 마음이 되어 종하에게 사랑받는 기분이 드는, 그렇게 크고도 멋진 사랑에 푹 젖어볼 수 있게 되는 사랑이야기, 추천합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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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 코니 윌리스 소설집
코니 윌리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아작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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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격주로 운동 삼아 도서관에 들른다. 집에서 걸어가면 30분 정도 걸리는 거린데 요즘은 자전거 타고 다니는 중. 원래는 <지브리의 천재들>을 빌려오려고 했는데 자리에 없더라. 그 뒤로 쭉 대여 중인 거 보면 겹친 듯…

하여, 대신 전부터 탐내던 <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를 빌려왔다. 표지가 워낙 마음에 들어서 탐내고 있었는데 저자는 코니 윌리스지 SNS 친구가 표지에 혹해있는 나를 보고 추천까지 해줘서 사는 게 먼저냐 읽는 게 먼저냐 상태였기 때문에 눈에 띄자마자 집어왔다. 원래 도서관에서는 비문학(중에서도 특히 에세이류)만 대여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되나요. 마침 도서관에 들렀을 때 읽던 책이 <밤의 언어>라 둘을 바꿔 읽으면 되겠거니 싶기도 했다.

그나마도 본래 대여기간 안에는 못 읽어서 한 주 연장하고 읽었다. 원래는 안 읽고 반납할 생각이었는데 너무 궁금하더라고. 그리고 서문을 읽고 생각했지. 이건 다 읽고 반납해야한다!

때마침 <밤의 언어>를 읽는 중이어서 더 그렇게 느낀 거겠지만 대가들은 까다로운 게 보통인가보다. 어슐러 르 귄도 코니 윌리스도 어쩜 그렇게 취향이 섬세하고 확고한지. 물론 그런 점을 더할나위 없이 좋아하기는 한다.

서문에서 코니 윌리스는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극명한 호불호를 드러낸다. 이런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좋고 저런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싫다고 갖가지 예시와 함께 줄줄이 늘어놓는데, 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코니 윌리스와 내 취향은 정말 꼭 닮았다. 크리스마스라면 사랑과 희망이 넘쳐야죠. 하지만 아이러니가 없어서도 안 돼요!

코니 윌리스의 소설을 읽은 건 정말 오랜만인데 수월하게 읽히는 정감가는 문장과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너무 좋았다. 단편집이라기엔 전체적으로 좀 길어서 대부분 중편~단편 사이쯤 되는 듯.

< 기적 >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건데 역시 미국인들도 명절 새는 거 힘들어한다.
크리스마스가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의 놀이판이지만 미국에선 가족 명절이라는 거, 알고는 있었지만 읽으니 실감이 난다. 서문에서 언급된 <멋진 여행>과 <34번가의 기적>이라는 영화가 주요 소재로 다뤄지는데 둘 다 본 적 없는 영화라 아쉽다. 나중에 꼭 봐야지.
앞서 읽은 코니 윌리스 소설은 하나 뿐인데 그때 기억이 가물거려서 조금 긴장하고 읽었었다. 그런데 참 부드럽게 잘 읽혀서 역시 코니 윌리스! 했다. 코니 윌리스는 은근히 연인의 사랑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단 말이야.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야기라서 그런지 좋았다. 크리스마스는 어떤 종류든 사랑이 가득해야 즐겁지 않던가.

< 빨간 구두 꺼져! 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었다고! >
원제는 All about Amily 였던 것 같다. 확실치 않은데 책을 반납해버려서 확인할 수가 없네. 개인적으로는 원제가 더 마음에 든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인공지능 로봇을 다루다니 이것 또한 ‘역시 코니 윌리스!’다. 표제작인만큼 인상적인 이야기라서 조금 자세히 적어본다.
화자는 한때는 전설이었던, 어쩌면 지금은 한물 갔을지도 모르는 여배우로 앞선 단편 <기적>과 마찬가지로 다른 영화/연극이 계속 언급된다. 그 영화/연극에 나오는 특정 인물의 상황에 계속해서 비유가 되는데 나이든 여배우가 젊은 여배우에게 밀려난다는 이야기다.
그러던 와중에, 화자는 인공지능 로봇 에밀리를 만나게 된다. 에밀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까봐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무해한 외모와 성격으로 설계된 인공지능 로봇이다. 얼마나 정교한지 비를 맞으면 파리하게 질려선 애처롭게 떤다. 에밀리를 만든 박사는 인공지능 컴퓨터에게 선호라는 것이 없으며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선택만을 한다고 주장하고, 화자는 여러 개의 선택지 중에서 특정한 것을 택할 수 있는 선호가 있다면 당연히 욕망도 존재한다고 속으로 반박한다.그리고 곧 화자의 판단은 옳았다고 증명된다. 에밀리가 수많은 소녀들이 선망하는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다고 소망하게 된 것이다.
에밀리는 로켓 무용단에 들어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화자에게 도움을 청하고, 화자는 에밀리를 성심성의껏 돕는다. 에밀리가 자신의 일자리, 즉 배우의 자리를 넘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변명하면서. 에밀리를 만든 박사는 다른 문화권에 맞게 설계된 인공지능 로봇을 데리고 출장을 나간 상태였고, 에밀리는 여론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리고 박사가 돌아와 에밀리를 로켓 무용단이 되고 싶어하기 전 상태로 되돌린다.
이때까지의 섬세한 설계도 좋았지만 이후의 전개와 결말이 충격적일 정도로 좋았다. 화자는 에밀리에게 제안했던 동정심 사기 작전을 자기가 실천한다. 추위에 떨며 서명 운동을 벌인 것이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의 자신 같았던 에밀리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비교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모두가 말리고 비웃을지언정 어린 시절 꿈 꾸던 자신의 머릿속을 열어 꿈을 지워버린 사람은 없었노라고. 그건 정말 부당하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비슷한 갈등은 계속되고 있다. 사람을 너무 닮은 인공지능과 그런 인공지능을 경계하는 사람들. 나는 이 소설의 결말이 정말 마음에 든다. 설령 인공지능이 사람의 자리를 탐낸다고 해도, 그건 결국 인간의 욕심이 낳은 비극일 것이다. 가장 하찮은 인간이 대체될 수 있다면, 가장 고귀한 인간도 대체될 수 있다. 나는 그들을 경계하고 배척하기보다는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싶다.

< 우리 여관에는 방이 없어요 >
현대의 교회에 요셉과 마리아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일상적이고 평범한 미국 교회 풍경을 엿볼 수 있는 단편이다.
주의 자비를 찬미하는 크리스마스 예식과 교회를 찾은 노숙자들을 쫓아내는 현실이 대비된다. 화자인 샤론은 추위에 떠는 요셉과 마리아를 교회에 들였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언제 들켜서 쫓겨날까 안절부절 못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을 숨기며 아슬아슬한 모험을 하는 사이 이 어리고 꾀죄죄한 부부가 길을 떠난 요셉과 마리아란 사실을 깨닫고 나사렛으로 가는 길을 찾아주는 이야기.
굉장히 신비롭고도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인데 성경에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은 재미가 없겠다 싶다. 늘 이야기로 들어온 사람들이 내 세상에 파고들어 생기는 기이한 사건이 생겼다는 환상적인 느낌, 현재의 여러가지 상황이 섬세하게 짜여있다. 결국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마음 따뜻한 이야기. 현대 미국 교회 사람들의 연례행사를 적당히 귀찮아하는 모습이 이 작품에서도 나오는데 인상적이고도 기분 좋다.

< 모두가 땅에 앉아 있었는데 >
이것도 크리스마스 이야기치고는 굉장히 독특한 소재다. 타임 슬립 정도는 흔하지만 외계인이 나오는 건 정말 드물잖아요. 외계인이 나오는데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어울리는 건 더더욱 드물 게 틀림없다.
못마땅하게 노려보기만 하는 아주아주 이상한 외계인이 나오는 이야기. 정말로 아무것도 안 하고 노려보기만 하는 바람에 온 미국이 당황한다. 외계인 앞에서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사람들 중 하나인 화자가 계속 연구를 하다가 결국 답을 발견한다.
이때 좋은 답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재밌다. 아주아주 비위를 맞추기 어려웠던 친척 어른의 사례를 떠올리다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외계인에게도 고집스런 친척 어른에게도 자신이 생각하는 훌륭한 예의가 있다. 거기에 맞추지 않으면 제대로 대화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의를 갖추지 않은 상대를 그저 노려보기만 하다가 예의를 갖춰 말을 걸 때만 반응하는 외계인의 반응이 재밌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신사적이지 않나. 무례하다고 화를 내고 떠나버리거나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그저 노려보기만 한다는 게. 결국은 서로 인사하고 새롭게 관계를 만들어나간다는 점이 참 크리스마스다웠다.

< 코펠리우스 장난감 가게 >
이 책에서 가장 짧은 소설인데 인상적이면서도 재밌었다. 화자인 남자놈이 너무너무 재수없고 싫은 인물이라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거든. 그게 이런 결말일 줄이야! 장난감 가게를 빙글빙글 돌다가 결국 장난감이 되어버린 못된 남자의 이야기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웃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 장식하세 닷컴 >
원제가 특이해서 원제를 눈여겨보게 된 마지막 소설. deck.halls@boughs/holly라는 제목이었는데 정확히 무슨 의민지 모르겠다. 몇 개는 알겠는데 몇 개는 정말 모르겠음.
약간 미래의 이야기인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이 직접 만나지 않고 통신으로 대화한다. 화자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해주는 전문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와는 크게 관련 없는 장식을 하는 듯하다. 그에 대한 소소한 항의라던가 반전이 재밌었다. 결말은 새로운 사람과의 로맨스인데 뻔하다면 뻔하지만, 나는 이런 크리스마스 이야기 좋아한다. 가족들의 축복 속에서 키스로 끝나는 그런 거. 크리스마스는 용서와 자비의 날이라는 이야기도 배신당했다고 느끼면서도 최선을 다해 크리스마스다운 따스함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도 좋았다. 크리스마스는 소중한 명절이구나 싶어서.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읽다보니 한국의 명절 이야기는 뭐가 있나 하는 생각이 없잖아 들었다. 명절 이야기도 많아지면 좋겠다. 명절마다 그 날에 어울리는 이야기가 많아져서 그걸 가족들끼리 함께 보고 웃고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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