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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여름이 끝나면 불청객은 떠난다
도개비 / 봄출판사(봄미디어) / 2018년 8월
평점 :
웹소설 작가 유폴히님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로맨스를 읽는 밤(https://www.podbbang.com/channels/1777468)˝에서 무려 첫 타자로 소개된 책이다. 세상에 읽고 싶은 책은 많고 그런 책을 추천해주는 매체도 많지만, 로맨스를 읽는 밤(줄여서 로밤)은 어쩌면 내게는 처음으로 책과 관련된 감상을 들려주는 매체였다. 그저 좋아하는 소설을 쓴 작가님의 SNS를 팔로했는데 이렇게 즐거운 컨텐츠를 준비해주실 줄은 몰랐고, 덕분에 더욱 작가님이 좋아졌다.
로밤에서 <여름이 끝나면 불청객을 떠난다>를 소개하며 했던 이야기를 어렴풋이 기억한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거라고들 하지만, 반대로 더 많이 표현하고 사랑하는 쪽이 가질 수 있는 주도권이 있다던가. 아마 정확힌 표현은 이게 아닐테지만 대충 그런 느낌의 말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거둬갈 수 있지만 사랑을 받는 사람은 그 사랑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그 말이 참 좋았다.
키워드만 놓고 보면 사실 이 책은 내가 좋아하는 소재는 아니다. 연하남. 연상녀. 시골마을. 여름. 여름의 숨막히는 공기도 싫고 폐쇄적인 시골 마을도 싫고 열정적인 연하남도 싫다. 특별히 더 좋아하는 요소는 없어도 사소하게 더 싫은 요소는 있는 내게 다소 좋지 않은 소재의 묶음이었다. 그럼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건 유폴히 작가님의 애정 넘치는 소개 덕분이었다. 읽으며 무척 즐거웠던 소설을 쓴 작가님에 대한 신뢰도 함께.
전체적으로는 큰 우여곡절 없이 잔잔하게, 그러나 먹먹하게 종하의 사랑에 젖어갈 수 있는 작품이다. 첫 만남부터 저도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종하를 마음에 담게 된 수연이 종하를 사랑하지 않기 위해 벌이는 혼자만의 사투가 중심 내용. 그게 반한 거냐고? 반한 게 아니면 왜 굳이 첫만남에 보았던 등을 종이에 옮겨 담았을까. 종하를 받아들일 수 없기에 쌀쌀맞았던 수연과 수연을 놓칠까봐 솔직해질 수 없었던 종하를 대신해 두 사람의 마음은 종이 위에서 피어난다.
눅눅하고 숨 막히는 여름 공기와 고요한 시골 풍경은 있는 그대로 수연의 마음 속 풍경이다. 비록 사연은 뒤늦게, 아주 짤막하게 소개되고 말 뿐이지만 독자인 나는 수연이 어떤 마음으로 매일 아침 눈을 뜨는지 절절하게 알 수 있다. 수연이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힘겨운 수연의 마음에 선풍기가 되고 에어컨이 되고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맥주가 되어 종하가 찾아온다. 무뚝뚝하고 퉁퉁거리지만 더없이 다정한 손길로 열렬한 갈망의 눈길을 보내오는 청년은 순식간에 수연의 삶에 파고든다. 황폐한 방안에 훈기를 돌게 하고 맥주 밖에 없던 냉장고에 음식을 채운다. 수연의 생활은 종하로 인해 풍성해진다. 첫눈에 맘에 담게 된 이의 다정한 보살핌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수연은 종하를 떨쳐내야한다고 계속 되내면서도 제 곁을 맴도는 그를 방치한다.
수연은 종하와 자신을 함께 방치함으로써 제 마음을 외면한다. 사랑도 상처도 함께다. 상처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사랑도 받아들일 수 없고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해 상처도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격이다. 엇나가는 마음과 붕 떠있는 수연의 태도에 상처받으면서도 종하는 수연을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 결국 마지막 순간, 수연은 지나간 옛 상처와 함께 종하를 마주 안는다.
이 책을 사놓고 정작 한동안 잡질 못 했다. 읽을 책이 워낙 많기도 했거니와 최근 한달 가량 책이 읽히질 않았다. 그래서 사놓고 안 읽다가, 또 중간까지 읽다가 중단했다가 그랬다. 그래서 지금 이 감상문을 쓰는 시점은 지난 번에 읽은 뒤로 한주 반 정도가 흐른 뒤다. 마지막 페이지를 이렇게 오래 걸려서 닫을 줄은 나도 몰랐다. 그래서 사실 쭉 읽었으면 지금과는 조금 감상이 달랐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기분이 좋고, 친구들에게 한 번쯤 읽어보는 게 어떻겠냐 권하고 싶으니 그 마음을 그대로 적는다.
수연의 마음이 되어 종하에게 사랑받는 기분이 드는, 그렇게 크고도 멋진 사랑에 푹 젖어볼 수 있게 되는 사랑이야기, 추천합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