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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 - 삶과 책에 대한 사색
어슐러 K. 르 귄 지음, 이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2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슐러 르 귄의 유작 에세이가 막 나왔을 때 황금가지 SNS를 팔로하고 있던 나는 정말 정말 이 책이 너무 읽고 싶었다! 사람들이 읽으면서 공유한 글귀들이 황홀하리만치 근사하고 반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황금가지는 또 어쩜 그렇게 리트윗을 많이 해주는지. 그래서 언제 살지 날짜만 재고 있었는데 계속 고민하고 있으려니 무려 친구가 갑자기 선물을 해주지 뭔가! 상냥한 내 친구.
그렇게 읽기 시작한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인데, 설마 완독까지 이렇게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ㅋㅋ 2월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8월에 마무리를 짓다니요. 무려 6개월이다. 이럴수가. 변명을 하자면 이 책은 절반 가량 다른 책을 읽고 쓴 르 귄의 감상문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어차피 번역본도 나오지 않은 책들의 짤막한 리뷰를 연달아 읽기가 어려웠다. 안 그래도 르 귄의 에세이집은 아예 별개로 쓰여진 단문을 엮어 만드는 것들이라 읽기가 어렵단 말입니다.
<밤의 언어(http://naver.me/GGh2EKoH)>가 젊고 혈기왕성하던 시절의 르 귄을 담고 있다면,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는 더 온화하면서 단단해진 노년의 르 귄이 담겨있다. 처음 <찾을 수 있다면 어떻게든 읽을 겁니다>를 읽으면서 받은 충격을 잊지 못한 상태로 <밤의 언어>를 읽었더니 거기서는 더 과격한 어조로 같은 주장을 하고 있었다. 노회하고 우아하고 강인하고 멋진 작가, 어슐러 르 귄. 설령 작가를 모르더라도 꿈 꾸는 듯 환상적이고 가슴이 뛰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책에 당연하면서도 충격적인 이야기가 어찌나 많던지 보이는 족족 인용으로 따서 공유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처음 접했던 문구들도 다 그런 거겠지. 그런 인용문을 다 모아보면 책 한 권이 완성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솔직히 어떻게 이 멋진 책을 공유하지 않고, 멀리 퍼뜨리지 않고 읽을 수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르 귄은 모든 이야기가 작가의 계산 속에서 어떤 노림수를 가지고 만들어진다는 편견을 부정하고, 리얼리즘 문학이 가장 발전된 문학이라는 편견을 부정하고, SF와 판타지를 읽지 않고도 쓸 수 있다는 편견을 부정한다. 그게 얼마나 당연하면서 낯설던지. 내심 아니라고 늘 생각해왔지만 한 번도 소리내서 말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들은 적도 없었다. 이렇게 말해줄 사람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생생하고 힘 있는 르 귄의 목소리로 꼭 저 이야기들을 들어봤으면 좋겠다.
내가 읽기 버거웠을 뿐이지 수많은 소설 감상문도 좋기는 했다. 내가 모르던 작가와 작품을 알게 됐고(상당수는 한국에 번역본이 존재하지 않지만) 또 당연하다는 듯이 사용되던 SF 소재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됐으니까. 찬사도 혹평도 내게는 도움이 됐다. 그냥 르 귄의 말이 좋았다고 해야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