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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터월드 - 알고리즘이 찍어내는 똑같은 세상
카일 차이카 지음, 김익성 옮김 / 미래의창 / 2024년 7월
평점 :
『필터월드』
알고리즘 문제풀이
1.
취향 → 알고리즘 → 문화↓ ?
오늘날 우리는 개인적인 삶에서도 사회적인 체제 속에서도 많은 것들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다. 저자는 알고리즘이란 어떤 것인지, 어디에 어떠한 형태로
쓰여지고 있는지, 알고리즘으로 말미암은 문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해결책은
무엇인지까지 책에 정말 방대한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중간 중간 논의해봐야 할 필요가
있는 많은 지점들을 독자들에게 넘겨주고 있기도 하다. 책의 많은 부분에서 자세한 설명이나 근거 없이
상투적인 설명으로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에 대해 주장만 강화하는 식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또한 가장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저자는
문화를 마치 고정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한국에서 소위 ‘문화예술’ 정도로 부르는 영역만을 문화로 상정한 것 같다는 것이다. 문화는
고정적이고 불변의 것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항상 변화되고 있는 것이며, 고상하고 거창한 취향의 영역 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 그러니까 삶이 곧 문화이다. 이에 저자가
알고리즘에 갇혀버린 현대인들은 ‘문화 소비자’에 불과한 것인가? 라는 물음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만일 알고리즘이 시키는대로만 보고, 사고,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이 행위가 문화를 형성하고 변화시켜 나가는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문화소비자는 문화의 주체이자 문화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일 수밖에 없다. 같은 결에서 저자가 마치 현대인들의 취향이 알고리즘으로 인해 저하되고, 궁극적으로는
문화의 질이 떨어졌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자신의 과거 인터넷 문화에 대한 향수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문화상대주의를 피해가지 못한 것 같다.
2.
알고리즘과 함께 살아가기
앞서 많은 부분을 비판하였지만, 저자가 알고리즘이 현실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담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우리는 알고리즘과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앞으로는 더욱 많은 영역에서 더욱 밀접하게 말이다. 알고리즘을
거부하는 것은 저자도 언질했듯이 너무나 많은 뜻밖의 영역에서도 알고리즘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따라서 나는 알고리즘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하고, 특징이 무엇인지, 부작용은 무엇인지 등 알고리즘에 대한 이해와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생각이라는 회로를 미처 가동하기도 전에 결과를 제시해버린다. 이에 따라 우리는 생각없이 받아들이거나, 찰나의 순간 고민하며 넘겨버리고, 새로운 결과를 받아들이면 된다. 한 마디로 알고리즘은 편하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에서 진실을 택하지 않고 살아가면 편한 것처럼 말이다.
알고리즘은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추려내주기까지 한다. 심지어
내가 원하는 것들로만 둘러쌓여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알고리즘과 함께라면 온라인 상에서 나는 높고
안락한 성 안의 왕이 될 수 있다. 우물 안의 개구리는 밖의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성 안의 왕도 그렇다. 알고리즘은 우리를 편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는 선택 그 자체를 포기해야 하고, 나의 취향이라고
여겨지는 어쩌면 심각하게 착각된 것들로 견고한 성벽을 쌓게 되고, 그 안에서 바보가 되거나 극단주의자가
될지도 모른다. 알고리즘과 거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유용하게 이용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편안함’ 과 맞바꾸는 것이 무엇인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3.
알고리즘 X 자본주의
저자가 설명했듯, 알고리즘은 인간에게 ‘편안함’을 선사하기 위해 상용화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논리 아래에서 이익의 창출을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알고리즘은 거의 시작부터 자본주의와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 밖에도 저자는 알고리즘 기반의
현실이 지니고 있는 특징 중 하나를 ‘동질화’로 설명한다. 사람들의 취향은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대로 흘러가다 보니 동질화가 일어난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취향이 어느 정도 동질화가 이루어져야 알고리즘이 추천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적어도 우리가 주로 맞닥뜨리게 되는 알고리즘은 나를 위한 혹은 나의 취향에 맞춰서 추천을 해주기 보다는 회사에서 광고하고 싶은 것들을
위주로 추천해준다. 즉 알고리즘은 자본의 강력한 영향 아래에 있다. 자본은
계속해서 증식해야만 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알고리즘으로 세계가 동질화 된다면, 자본에게는 좋은 일일까?
한편 저자는 알고리즘이 개인의 취향뿐만 아니라 공동체 또한 와해시키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를 반대로, 낙관적으로 조망해보는 것은 어떨까?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이 SNS를 이용하고, 알고리즘에 빠져있고, 어쨌거나 취향을 공유한다. 이를 강조하며 전 세계가 거대하고 느슨한 공동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알고리즘보다는 인간이 직접하는 큐레이션이 훨씬 나은 것으로 여기며, 이를 대안처럼 강조하고 있는데,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의 입장에서는 알고리즘이던 큐레이션이던 나 이외의 다른 존재가 생각하여 선택해준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인간이 상호작용을 통해 더 넓은 시야와 경험을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박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입력만 제대로 한다면 알고리즘이 그를 기반으로 훨씬 더 풍부한 선택을 처리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오히려 이 지점에서 인간의 큐레이션과 알고리즘이 아닌, 자본의 개입 정도에 따라 제시되는 선택안이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했어야 했다.
4.
우리는 호모 하빌리스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알고리즘에 대해 비판적이고 경계심을 가지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알고리즘이라는 편리하고 훌륭한 도구를 기피하는 것은 앞으로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은 항상 우연에서든 의도하여서든 도구를 만들어왔으며, 그 도구를
어떻게 쓸지도 전적으로 인간에게 달려 있다. 알고리즘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문제를 우리는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