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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멘탈
스티븐 포더 지음, 김은영 옮김 / 원더박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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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포더의 엘리멘탈은 생명을 구성하는 원소의 특성을 설명하는 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야심차다. 이 책은 원소와 생명 사이의 관계를 고정된 구조가 아니라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하는 역동적 관계로 제시한다. 나는 특히 이 지점에서 깊은 충격을 받았다. 포더가 보여주는 원소적 시각은 생명을 물질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을 지구 시스템의 설계자이자 재구성자로 바라보게 만드는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과학책을 읽다 보면 흔히 생명은 탄소를 기반으로 한다” “질소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이다와 같은 정언적 설명을 접하게 된다. 그러나 포더는 이러한 설명을 뒤집는다. 생명은 원소에 갇힌존재가 아니라, 원소가 제공하는 화학적 가능성의 공간에서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전략을 구축한 존재라는 것이다. 포더의 논지에 따르면 생명은 자연의 부산물이 아니라, 원소라는 물질적 토대 위에서 끊임없이 실험하고 변형하며 지구를 다듬어온 존재였다.

  포더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생명이 원소를 단순히 소비하거나 흡수하는 존재가 아니라, 원소의 지구적 이동 경로를 바꾸는 적극적 행위자라는 사실이다. 남세균이 산소를 배출하며 대기 조성을 완전히 바꿨다는 과학적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포더는 그것을 생명의 전략적 선택으로 보다 설명하고 있다. 지구는 생명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행성이 되었음을 고찰할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원소생명환경의 관계가 직선적이거나 일방향적이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지구적 질서를 만들어가는 순환적 구조라는 인식은 지금의 환경 논의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나아가 책의 후반부에서 포더는 인간을 단순히 진화의 결과물로 다루지 않는다. 인간은 원소의 흐름을 기술적·경제적·정치적 이유로 재구성하며, 그 속도는 과거 생명이 환경을 바꾸던 속도를 압도한다. 포더가 말하는 원소의 책임은 과학적 문제라기보다 우리 스스로 어떤 존재로 남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이다. 이는 책이 주는 정서적 울림이자, 서평자로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책의 핵심 가치다.

  《엘리멘탈은 우리가 생명을 바라보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생명은 원소의 제약을 극복하며 진화했고, 원소의 흐름을 새롭게 설계하며 지구를 변화시켰다. 그리고 지금, 인간은 그 흐름을 가장 거대한 규모로 바꾸고 있는 존재다. 우리는 원소를 다룰 능력은 갖추었지만 그 결과를 감당할 능력도 갖추었는가? 생명의 창조적 파괴라는 특성이 인간 문명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원소와 생명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의 환경 윤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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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 인생》은 노벨상이라는 드라마틱한 영예와 거리가 있는 여섯 명의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연구, 고민, 삶을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에세이집이다. 인스타그램 독자 후기만으로도 이 책이 전하는 정서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화려한 업적보다 묵묵한 과정, 성공보다 지속을 이야기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과학 인생》은 ‘과학’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사람’에 더 가까운 서사집으로 읽힌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과학자를 특별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연구실의 반복적인 일상, 예상치 못한 실패, 불규칙한 성취의 순간들이 솔직하고 담담하게 드러난다. 인스타그램 리뷰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현실적이다”, “거짓이 없다”는 표현은 이 책이 과학자의 삶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온다. 독자는 ‘성공한 과학자’가 아니라 ‘살아가는 과학자’를 마주하게 된다.

  《과학 인생》의 또 다른 미덕은 실패를 정면에서 다루는 태도다. 연구는 실패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이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기록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책 속의 여섯 사람은 실패를 숨기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실패의 순간들이 어떤 선택을 이끌었고, 어떻게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웠는지를 보여준다.

  한편 이 책의 글쓰기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담백하고 투명한 문장은 오히려 독자로 하여금 과학자들의 마음속으로 천천히 스며들게 만든다. 이 차분한 글쓰기 방식은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오며, 에세이의 본질인 ‘경험의 공유’에 충실하다.

  《과학 인생》은 과학자의 직업적 정체성을 넘어, 자신의 길을 조용히 계속 걸어가려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에 가깝다. 대단한 성취를 이루지 않았어도, 흔들리며 꾸준히 나아가는 삶 역시 충분히 가치 있다는 메시지가 은근하지만 단단하게 흐른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도뿐 아니라, 인생의 속도와 방향을 고민하는 누구에게나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섯 명의 과학자가 들려주는 인생 이야기는 담담하지만 깊다. 이 책은 ‘성공을 향해 달리는 사람’을 위한 책이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견디며 걸어가는 사람’을 위한 책에 가깝다. 과학이라는 배경은 단지 무대일 뿐, 그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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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컨트리』는 숨 막히는 긴장감과 뼈아픈 후회의 잔영을 동시에 남기는 심리 스릴러이다. 이 소설은 한 여인의 삶에 파고든 사랑의 지독함과, 그 대가로 짊어져야 할 책임의 무게를 정면으로 다룬다.
아이를 잃은 슬픔 속에 갇힌 베스가 13년 만에 첫사랑 게이브리얼과 재회하며 금단의 관계에 빠진다. 그녀의 이기적인 욕망과 선택은 결국 비극적인 죽음이라는 덫으로 모두를 몰아넣는다. 작가는 현재의 살인 재판과 과거의 순간들을 치밀하게 교차하며, 독자가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끊임없이 추리하게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의 진정한 힘은 단순한 미스터리 해결에 있지 않다. 작가는 독자가 특정 인물을 판단하게 만든 뒤, 마지막 순간 충격적인 반전을 터뜨린다. 이 과정을 통해 독자는 자신이 얼마나 쉽게 서사에 조종당했고, 타인을 성급하게 판단했는지 깨닫게 된다.

결국 『브로큰 컨트리』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 상실과 욕망 앞에서 저지르는 나약한 선택들을 보여준다. 베스가 감추려 했던 비밀과, 그로 인해 파생된 죄책감과 고통은 개인의 윤리적 선택이 얼마나 거대한 운명을 초래하는지 뼈아프게 증명한다.

소설은 책임과 후회라는 무거운 주제를 묵직하게 남긴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베스의 깨진 마음과 프랭크의 헌신, 게이브리얼의 불안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들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잘 짜인 서사 구조 속에서 인간 본질의 나약함을 해부한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도덕적 딜레마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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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짧은 역사
토마 피케티 지음, 전미연 옮김 / 그러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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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의 짧은 역사』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의 평등

피케티는 인류가 평등을 향해 온 여정을 주로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설명하고 있다. 왜 어느 때보다 기술이 진보한 오늘날에도 평등하지 않은지, 평등이 늘 형식적으로만 그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진보했음에도 평등에 대해 인류가 방향을 잡지 못했다면, 진정한 평등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왜 당연하다는 듯이 인간 사이에서만 평등을 찾고 있을까? 다른 종, 지구와의 관계에서의 평등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평등의 의미에 다가가는 매우 중요한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평등이 누군가를 위한 정의가 아닌 모두를 위한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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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의사 - 영화관에서 찾은 의학의 색다른 발견
유수연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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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간 의사』
영화관에 간 독자

영화관에 간 의사는 영화가 이끄는대로 줄거리만, 인물의 입장과 감정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저 인물이 저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혹은 저러한 내력을 가지고 있는데에는 어떠한 의학적인 이유가 있을지 고찰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영화관에 가면 나는 뭘 보고 나오는 걸까? 이 책을 통해 가장 먼저 나는 영화를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 돌이켜보게 되었다. 나의 경우에는 효과음, 배경음악과 상황의 조화?가 잘 맞는지 고민하며 영화를 본다. 또 저러한 사건, 인물이 행동하게된 이유가 개인이 아닌 시대적, 사회적인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는 것 같다.
이 밖에 저자는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간략하게 정리하며, 이를 신화와 연결지으며 분석한다. 의학과 영화 그리고 신화의 만남까지 한 책에서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된다. 여러분은 영화를 어떻게 자신만의 관점에서 감상하고 계신가요?

#영화관에간의사 #유수연 #원앤원북스 #mixcoffee_ono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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