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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ㅣ 시대예보
송길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9월
평점 :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새 시대가 도래했다는 두려움
1. 그래서 핵개인이 뭔가요..?
"이 책에서는 이러한 새로운 개인을 '핵개인'이라 정의합니다(20)."
하지만 저자는 핵개인이 어떤 의미인지 정의내려주지 않았다. 대중서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도 이렇게 불친절할 수가 있나 싶었다. 심지어 저자는 '언어가 바뀌면 개념, 관점이 달라진다(55).'라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저자가 핵개인을 핵가족에, 가족주의에 반대하는 의미로서 택한 용어인지, 핵가족에서 더 쪼개졌다는
의미인지, '새로운 개인이 핵개인이다'라고 했을 때, 과거의 개인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인지(예를 들어 전체의 일부에
불과했던 개인과 다르다는 의미?) 등 왜 '핵개인'이라는 용어를 택하게 되었는지가 문제의식의 시작점이자 핵심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이를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부분이 없어서 의문만 잔뜩 남게 되었다.
2. 상상된 공동체 vs 망상된
개인
베네딕트 앤더슨이 설명한 대로 공동체는, 하나라는 민족은
상상된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것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과연
조선의 사람들이 자신을 조선 사람이라고 여겼을까? 그것은 얼마나 우선시 되는 정체성이었을까? 더 과거로 돌아간다면, 고려와 발해 사람들은 서로를 하나의 민족이라고
여겼을까? 백제, 신라, 고구려, 가야는 어땠을까? (심지어 말은 통했을까? 이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전체주의 사상에서 집단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개인의 희생은 당연하게 여기는 관념의 반작용으로 나오게
된 개인주의는 '이기적이다'와 동일어 정도로 몰이해 되어온 경향도 있다. 근대에 강력한 민족주의, 전체주의 등 공동체를 중요시하고, 상대적으로 개인의 욕구는 억누르는
관념이 강하게 작동되었다. 이에 전복이 일어나며 서서히 개인에게 집중하는 시기가 오고 있다. 그런데 개인주의가 커져간다는 것이 관계를 단절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간(人間), 사이 간자를 쓰는 인간은 관계가 지금까지의 생존의 핵심이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더라도 인간들은 관계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온전한 개인'은 망상된 것이다.
(직전의 팬데믹 사태에서 한국은 개인주의와 가장 거리가 멀지 않았나? 개인의 욕망이 우선시되었더라면
상황이 어땠을까?) 저자가 말한 새로운(?) 개인을 통해, '개인' 그리고 '개인주의'가 어떤 의미였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편 '로봇은 관계를 요구하지 않는다(102).' 로봇, AI의 출현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속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관계가 사라진 인간은 새로운 종의 탄생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3. 한국의 가족주의와 개인
이 책의 많은 부분에서 (가족주의, 정상가족, 비혼, 가족
내의 돌봄문제 등) 가족과 개인에 대한 논의들이 연상되었다. 여전히
한국의 제도는 과거의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삼고 있다. (위독한 상황에서의 보호자, 유산 상속, 동거인의 인정 문제 등) 많은 사람들은 각자의 바쁜 생활 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가족끼리도 밥을 모두 모여 같이 먹는 일이 쉽지 않다. 일가친척이 명절에 모이는 일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가족의 의미가 퇴색되었다거나, 연대가 느슨해진
것만은 아니다. 사례마다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며, 비혼이
늘어나며 출생가족과의 연대가 훨씬 강해지고 있다는 연구들도 있다.
가족은 사회의 기본 단위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개인이
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더 작은 단위로 보아야 할 것인지, 가족이라는 단위보다 개인이라는 단위가 우선시되어야
하는 것인지 등은 개인을 논하는 데에 빠지지 않는 논의거리이다. 따라서 핵개인(?)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가 말하는 가족 그리고 가족주의란 무엇인지 고찰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4. 새 시대가 도래했다는 두려움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 기술의 발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인간이 지구에 너무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은 늘 시간이 흘러가는 것과 같이 살아왔다. 기실
시대를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디서 부터 새 시대가 시작되었는지 변화를 잡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계속 살아왔고, 그러다 무언갈 만들기도
했고, 대단해 보이는 발명 혹은 발견을 하기도 했으며, 그
과정 속에서 서로 편을 가르기도, 연대하기도 했다. 인류는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제멋대로) 살아갈 것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라투르의 '우린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 없다'라는 해석이 떠올랐다. (라투르가 이런 의도에서 썼던 것은 아니었으나,) 우리가 근대와
전근대를 나누는 기준은 말그대로 인위적이다. 새 시대가 도래했다고 구분짓는 것 또한 과연
의미가 있을까? 변화를 적극적으로 논의하되, 변화에 방점을
두지 않고, 남아있는 것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인다면 새 시대가 도래했다는 두려움도 사라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