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3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남창작선 121
류주현 지음 / 나남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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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에 책상이 있다. 그리 넓지 않은 아담한 책상과 그리 크지 않고 바깥을 볼 수 있는 아담한 창. 마침 창이 동쪽으로 나 있어서 아침에 앉아 있으면 붉게 빛나는 태양과 마주할 수 있다. 이 창을 통해 사계절을 본다. 예쁜 색채로 자신의 마지막을 불태우며 떨어지는 낙엽, 그 아래 은행을 주는 할머니들과 거리를 청소하시는 청소부 아저씨들. 언제나 같은 색과 모양으로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상록수에 자전거를 묶어두고 슈퍼에 물건 사러 가는 친구들 등 좁은 창틀 안에 비추어진 가을의 풍경은 사소하지만 다채롭다.

 

해가 바뀐 1월에는 한파로 꽁꽁 얼어 창가에 고드름이 얼고 서리가 끼어 창이 꼼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창 너머의 세상은 부산히 돌아간다. 주차할 자리가 없어 서로 아웅다웅 소리치고 욕하는 사람들. 에스키모처럼 눈만 빼꼼히 내어 놓고 온 몸을 돌돌 감은 채 엄마에 딱 달라붙어 세상구경하고 있는 아이들. 추운 겨울이 더욱 좋은 연인들의 모습 등이 얼어붙은 창에 비추어진다.

 

어느 덧 해가 달라진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뜨는 시간, 높이, 각도 등이 변하면서 점차 햇살도 따스해 진다. 얼어붙어 삽으로도 들어가지 않던 땅을 작고 연약한 녹색의 새싹이 뚫고 올라온다.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고, 어서 나오라고 이야기해 주는 이가 없어서 본능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놈들을 볼 때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매년 반복되는 좁은 창 너머의 세상들. 특별할 것도 눈에 띄는 것도 없는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들이다. 그럼에도 오늘은 이것들이 더욱 특별해 보인다. 평범하지 못한 시대에 태어나 평범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신 일제 강점기의 우리 선조들의 이야기를 활자로 나마 접한 지금 그들에 대한 슬픔과 감사함, 그리고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친 나의 무지와 무관심에 그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고개 숙어 미안함과 죄송함을 표한다.

 

김구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등과 같은 역사의 기록에 남아 있는 분들 뿐만 아니라 그 험한 시대를 살아가시며 후손을 키우신 우리 아버님 어머님들에게 지금 세대는 빚을 지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더 지금의 평범한 일상들을 감사해 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일상은 그들의 피와 살과 땀으로 이루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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