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 고종황제 - 조선의 마지막 승부사
이상각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고종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고종 자신에 대한 것들보다는 흥선대원군 그리고 명성황후에 대한 것들뿐이다. 고종도 왕으로서의 분명한 역할과 사명이 있었을 진데 우리는 언제나 명성황후에 눈물 흘리며 흥선대원군에 답답한 만을 토로하는가? 하지만 언제나 고종은 나약하고 줏대 없이 갈팡질팡하는 군주로 기억되어 있다. 과연 우리는 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그럼 질문을 바꾸어 고종이 왕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없도록 만든 것들이 무엇일까? 이런 의문을 머릿속에 품고서 책을 읽어 나가도 보니 세 가지 정도가 떠올랐다.

 

 

첫째, 고종은 준비된 왕이 아니었다. 그는 철종이 후사 없이 죽게 되자 조대비와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도움으로 갑자기 왕좌에 앉았다. 왕이 된 후에도 거의 모든 정치를 아버지가 관리하게 된다. 이런 배경에서는 한나라의 왕으로서 분명한 통치철학, 그리고 왕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질을 제대로 갖추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섭정아래에서 그리고 왕비인 명성황후의 도움으로 실수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그는 정치를 배워갔다. 태평시대였다면 충분한 시간과 여력이 있었겠지만 난국의 시대에 그런 것은 사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고종의 무능력을 탓하기보다는 그런 시대에 준비되지 않은 왕이 된 그의 불운을 탓해야 되지 않을까?

 

둘째, 인조반정이후에 권력의 중심에는 노론이 있었다. 명에 대한 사대는 그들에게 있어서 바꿀 수 없는 진리였다. 광해군이 반정에 의해 물러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명과 오랑캐인 후금사이에서 후금을 선택한 그의 정책 때문이니 그들에게 조선의 왕보다는 명의 황제가 우선이었다. 그들의 맹신은 그들 뿐 만아니라 조선의 눈을 가려 조선을 맹인으로 만들어버렸다. 유교만을 숭상해 서학을 오랑캐의 학문이라 하여 반대했으며 일찌감치 망한 명에 대한 충성으로 주위정세에 눈을 감아버렸다. 눈을 가리고 정치를 하고 이들을 등에 업고서 어떤 왕이라도 제대로 된 정치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분열이다. 조선의 위정자들은 중요한 매 순간마다 갈등을 일으킨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갈등이라는 것은 분명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결과를 이끌어 내야하는 순간에는 최선의 합일점을 찾아서 문제해결에 힘써야 한다. 하지만 고종시대의 양반과 정치인들은 그들의 논리에 매몰되어서 다른 누구의 주장도 의견도 귀를 막고 듣지 않았다. 흥선대원군 vs 명성황후, 개화파 vs 위정척사파, 급진개화파 vs 온건개화파 등의 갈등은 단결을 필요로 할 시점에 분열과 위기만을 조장했다.

 

위의 세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고종황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려고 노력했다. 서양의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해 영선사, 수신사, 신사유람단, 보빙사 파견. 국력의 보강을 위해 신식군대 양성(물론 임오군란이라는 결과를 야기했지만 군대의 개혁을 필요한 시점이었다), 대한 제국선포를 통해 왕이 아닌 스스로를 황제로 칭함으로서 조선이 자주독립국가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또한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헤이그특사를 파견하고 이에 분노한 일본에 의해 퇴위를 강요받고 순종에게 왕위를 이양하게 된다. 그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렸던 고종황제에게 망국의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흥선대원군 

서원철폐, 비변사폐지, 삼정이 개혁, 서원철폐, 경복궁중건

 

병인사옥(천주교박해) 병인양요

 

제너럴 셔먼호 사건 신미양요

 

고종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최초의 불평등조약)

 

세계와 소통노력 : 수신사(일본)- 김홍집 조선책략 입수

통리기무아문(외교와 국방전문기구)

신사유람단(일본)

영선사()

조미 수호 통상 조약 :

(일본견제하기 위한 미국과의 불평등조약) 보빙사

 

임오군란 : 신식군대 vs 구식군대 흥선대원군 재등장, 청의 개입으로 흥선대원군 을 톈진으로 납치. 일본은 손해배상을 이유로 조선과 제물포조약 체결

 

갑신정변 : 김옥균을 포함한 급진개화파의 독립국가를 만들기 위한 거사

한성조약(조선과 일본), 톈진조약(청과 일본)-

 

거문도사건 : 고종은 청나라와 일본이 충돌할 때 조선의 보호를 조건으로 러시아와

영흥만 조차에 합의. 러시아는 부동항 확보. 이에 영국은 거문도를

점령 러시아의 남하 경계. 러시아의 영흥만 포기.

 

 

동학농민운동 : 동학농민군 토벌을 위해 청에 도움. 톈진조약에 따라 일본군 출병

  일전쟁 : 청나라의 조선 종주권 파기. 조선에 대한 일본의 독점권 인정. 랴오둥 반도, 타이완 차지-삼국간섭(프랑스, 러시아, 독일)으로 랴오둥 청에 반환.

 

갑오개혁(갑오경장) : 청일전쟁이후 일본에 의한 3차에 걸친 개혁. 군국기무처 발족.

 

을미사변 :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의 힘을 빌리려는 명성황후를 시해.

 

을미개혁(3차 갑오개혁) : 군제개혁, 단발령 등 을미의병(단발령과 국모시해반발)

 

 

아관파천 : 고종이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거주

 

대한제국 ; 칭제건원(왕을 황제라 칭하고 연호사용), 광무개혁

 

러일전쟁: 일본의 승리 한일 의정서(일본이 대한제국의 독립과 영토보존을 보증하 며 황실의 안녕과 영토의 보존에 위험이 있을 때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반면 대한제국은 일본의 전쟁 수행에 편의를 제공한다.)

 

포츠머스 조약 : 일본의 조선지배 국제적으로 인정받음. 미국은 필리핀(가쓰라-태프트 밀약), 영국은 인도 지배를 인정받음.

 

을사조약 : 외교권 박탈 헤이그 밀사사건, 고종의 강제 퇴위, 순종 왕으로 등극

 

정미 7조약(한일신협약) : 군대해산, 경찰권, 사법권 위임

 

안중근 의사 : 이토 히로부미 저격

 

한일합방(경술국치) : 국권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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