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 3부작 - 전4권
로스 레키 지음, 이창식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과연 인간은 이성적 동물일까? 감성적 동물일까?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 라는 말 이후로 인류는 언제나 이성적 동물이다. 철학을 비롯한 과학, 수학 그리고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이성을 두고 인간을 분석하고 인류의 우수성을 증명하려고 했다. 결국 이성적이라는 것은 언제나 옳음을 추구하고 발전 지향적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언제나 인류는 옳음을 추구하지 못하고 언제나 발전 지향적이지 못하다. 인류의 탄생이후로 전쟁은 인간의 또 다른 성별이었으며 파괴는 인간의 사생아였다. 지금도 우리는 종교전쟁을 하고 있으며, 인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감성적 존재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쉽게 변하지 못한다. 머리로 논리성과 합리성을 따지기 이전에 이미 우리의 감성은 직감적으로 선택을 한다. 이후 이성은 그것의 대변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다. 조너선 하이트 교수의 바른마음에서 이것을 코끼리 등에 탄 기수로 비유하고 있다. 코끼리는 감성(직감), 기수는 이성을 나타낸다. 우리는 기수가 코끼리를 조종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코끼리가 가고자 하는 길로 기수가 인도해 줄 뿐이다. (말이 아닌 코끼리로 비유한 것은 그 만큼 인간의 감성이 큰 역할을 한다는 의미이리라.) 따라서 언제나 나는 옳지만 너는 언제나 틀리다. 코끼리에 의해 이미 옳은 길을 안내받은 우리 이성은 거기에 합당한 이유들은 만들어낸다. 당연히 인간 vs 인간 의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논쟁이 되고 있는 국정 vs 검인정, 보수 vs 진보 등은 언제나 내가 옳다는 코끼리에 이끌린 기수들의 싸움인 것이다.

 

로스 레키의 카르타고 3부작은 같은 역사를 다른 렌즈를 가지고 바라본 인물의 책이다. 앞의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입장에서 스키피오는 로마, 그리고 마지막 편인 카르타고는 로마인과 카르타고인의 관점차이를 다시한번 보여준다. 당연히 로마인은 카르타고를 나쁘게, 그에 반해 카르타고인은 로마인을 안 좋게 표현하고 있다. 후세대인 우리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하나? 역사의 승리자인 로마중심으로 쓰여진 책을 많이 접한 나로서는 로마를 비판하는 한니발의 서자인 한노가 불편하기만 하다. 곧 나의 이성은 로마인들의 편을 들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카르타고는 유서 깊은 고대 도시이다.... 로마가 단순한 왕정일 때에도 카르타고의 복잡한 국체는 수백 년간 잘 운용되고 있었다.....로마에서는 투표하려면 로마 시민이 되어야 하는데 그건 쉬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카르타고는 평화로이 입국한 사람은 누구든 언제나 환영했다. p.65-66”

 

로스 레키의 카르타고 3부작은 흥미 있는 소재여서 산 책이었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는 책이었다. 한니발과 스키피오 두 명장은 무엇보다도 뛰어난 전략과 전술이 돋보이는 인물이라 그림을 첨부한 상세한 전투장면의 묘사를 기대했다. 그림이 없는 간단한 전투장면은 나의 상상력부족으로 새 생명을 얻지 못하고 책 속의 글자로만 사장되어 버렸다. 카르타고 3부작의 2부인 스키피오에서는 한니발의 적수로의 스키피오보다는 그의 성장기를 그리는 것으로 대부분의 페이지를 소모하고 있다. 보통 인간인 스키피오는 있지만 로마의 영웅인 스키피오는 몇 페이지 되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같은 역사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컨셉 덕분에 다시한번 균형적인 시각을 가진 인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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