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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사라진 날
할런 코벤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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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거장이 쏟아낸 최고의 미스터리
<네가 사라진 날>


 “그는 그렇게 엄숙히 맹세했다. 더는 비밀을 없을 것이다.
이번 한 번만을 제외하면.

 이 문장을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면서 한 생각은 ‘완벽하다!’ 였다. 어떻게 미국의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을 휩쓸었는지 알 듯했다. 은밀하게 복선을 깔아두고 불가능할 것 같은 연쇄살인에 연결고리를 찾고 인간의 심리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으로 독자는 차마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서 공감을 이끌어낸다. 부지기수로 밤잠에 들지 못했고, 출퇴근 시간의 복잡한 지하철 안에서 나를 뉴욕으로 순간이동 시킬 만큼 몰입력있었다.

“하지만 가끔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진실보다 중요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책의 시작은 혼란스럽다. 재정 관리자로 억대 연봉을 벌어들이는 자산가 사이먼은 아름다운 아내 잉그리드와 반짝거리는 세 자녀를 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의 견고한 삶에 금이 가고 그 사이로 걱정이 줄줄 새어나오기 시작한 것은 큰 딸, 페이지가 마약에 손을 댄 이후부터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페이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이성을 간신히 붙들어가며 페이지를 쫓던 사이먼의 모습에 독자도 혼란스럽기는 매한가지다. 책을 펼치자마자 끼쳐오는 심각하고 불쾌한 냄새에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책을 읽어내려갔다.

 마약 중독자가 된 페이지를 방목에 가까운 형태로 남겨두면서 사이먼과 잉그리드의 갈등도 번져나간다. 그런 상황에서 페이지를 마약의 길로 인도한 그녀의 10살 연상 남자친구 에런이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네가 사라진 날>에 스며든 넘실대는 살인이 드디어 그 스타트를 끊은 것이다. 에런에 대한 살해 동기가 확실할 수 밖에 없는 사이먼의 곁으로 형사들이 따라붙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페이지가 사라졌다. 그녀가 죽인 것일까? 그렇다면 그녀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사이먼의 잘못은 어디부터일까.

“하나님, 제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책을 휩쓸고 다니는 파멸의 불씨의 원인을 찾아 사이먼이 백지에서부터 단서를 찾아 퍼즐을 맞추어 가는 동안, 사실 사이먼의 주변에는 더 많은 비밀을 숨긴 사람들이 있었다. 사이먼은 자기 딸이 마약쟁이가 되어 동생의 물건을 훔쳐 팔고 다니는 도둑이 되는 사실을 겨우겨우 삼키는 동안 책 속의 또다른 개인들은 각개 자신만의 전투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니 이건 각자의 전투가 하나의 벌판으로 모이는 최종 전쟁터. 누구의 비밀이 피처럼 흐를까. 누구의 전쟁이 승리할까. 가장 완벽해보이던 가족에게 엄습하는 붕괴를 함께 지켜봐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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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 시네마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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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천재 작가의 가장 트렌디한 단편소설,
육교 시네마

프랑스의 철학자 쥘 드 고티에는 상상력이 현실에 대항하는 유일한 무기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온다 리쿠는 핵무기를 장착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 단편으로 읽기 미안하고 아까울 정도로 기발한 소재들이 폭발하는 단편집이었다. 뛰어난 소재에 이를 뛰어넘는 상상력의 만남이라니.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간의 일반적 사상과 행동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이 더해져 난해한 내용마저 해석하고 싶도록 안달나게 만들었다. 읽는 내내 스산하고, 소름 끼치고, 전율했다. 작가님 정말 가둬 놓고 글만 쓰게 해주고 싶다.

표지부터 살펴볼까. 는 사실 책을 거의 다 읽어가는 시점까지 건물에 비친 그림자가 거대한 뱀이 입을 쩌억 벌리는 모습인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고래였던 것. 잔혹한 뱀의 이빨과 솟아오르는 몽환적 고래가 딱 몽환 속 공포를 다루는 <육교 시네마>를 대변하는 것 같았다.

가령, 구근이 그랬다. 튤립이 겨울을 버텨 내기 위해 품은 파리한 구근을 보고 야하다고 하다니. 소름 끼치고 미친 것 같았다. 미친 사람을 표방하는 작가는 그저 경이로웠다. 작가는 판타지 레버에 수치를 조정해가며 일상 속, 상상 속 스산함을 선사한다. 트와이라이트는 신들의 세계를 끔직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비춰내는 판타지 수 100짜리 소설이라면 보리의 바다에 뜬 우리는 음산한 현실 속 어딘가, 정말 미친 사람들이 미친 사람들을 모으면 이런 곳이 존재할 수 있을 듯한 판타리 레벨 30쯤의 소설이었다. 물론 극히 정상이라 자부하는 나 스스로는 읽는 내내 육성으로 경탄을 금치 못했지만. 황궁 앞 광장의 회전은 판타지 레벨 0이지만 작은 상상에서 비롯된 예술의 전경이 펼쳐져 작가의 이전 작품인 <꿀벌과 천둥>을 연상케 했다.

작가는 단편집은 마치 하나의 초콜릿 박스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소설은 지나치게 쌉쌀하게, 또 어떤 소설을 달콤해 황홀하고, 어떤 소설은 그저 내 입맛에 꼭 맞는. <육교 시네마>라는 초콜릿 박스에서 내가 가장 사랑했던 초콜릿은 비가 와도 맑아도라는 단편이었다. 본격 미스터리 소설급 서사에 완벽한 수미상관 구조의 기승전결. 짧으나마 쏟아지는 떡밥과 깔끔한 회수, 더불어 만족스럽게 맞아떨어지는 의문에 대한 해결책. 더 음미하고 싶은데 감질나게 혀끝을 떠나버리는 단 맛에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구골나무와 태양은 크리스마스라 불리지 못하는 시대의 크리스마스가 담겨 있었는데 한 문장 한 문장 정말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스러웠다. 언어 유희와 적절한 근거가 버무러진 초월적 재해석이라니. 아래는 감탄을 넘어선 경악을 자아냈던 본문의 일부다.

빨간 옷을 입고 흰 자루를 멘 노인이 동지 축젯날 밤에 집에 침입한다는 습관은 너무 부조리하고 무섭게 느껴졌다.

아멘 惡面 (나쁜 아이가 게 있느냐!)

그렇게 외치며 찾아오는 산타 三田라는 이름의 노인은, 실은 삼대에 걸쳐 논밭을 비옥하게 해주는 고마운 내방신이라는 이야기를

단편 하나하나 너무 소중한 초콜릿이었다. 온다 리쿠의 단편을 또 하나의 박스에 담아 선물로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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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을 짊어진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아키라와 아키라>를 읽고

 

 30년 세월이 눈 앞에서 휘리릭 넘어갔다. 석유 파동부터 시작된 일본 경제사가 거품 경제를 지나 장기 불황까지 이어지는 동안 그 세월을 견뎌내고 살아내는 아키라와 아키라의 삶이 눈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자네의 그 경험을 결코 헛되지 않았어.”

 야마자키 아키라는 돈의 아픔을 보고 느끼며 자랐다. 자신의 공장을 이루어낸 아버지를 꿈으로 삼고 컸지만 공장 사정에 따라 날카로워지는 아버지를 몸으로 느꼈다. 아버지가 세상에지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 감내해야 했다. 그래도 일어서는 아버지를 보며, 또 그런 아버지를 믿고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고심한 한 뱅커를 보며 야마자키 아키라는 사람을 위해 돈을 빌려주는 뱅커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사람을 살려내는 힘을 가진 뱅커가 되기로 마음에 새긴다. 그 경험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기까지.

 


“반드시 그 호텔을 흑자로 만들겠어.”

 가이도 아키라는 그야말로 다이아 수저 집안의 후계자였다. , 어쩌면 주어진 운명은 걷어찬 후계자. 가족에서 가족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집안에 진절머리를 느낀 아키라는 외려, 다양한 회사의 융자를 담당하며 기업의 경영에 창의적인 인공호흡을 가하는 투자 은행에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진부한 표현으로 회사 경영은 아키라의 숙명이었던 것. 부족한 자들의 욕심으로 이미 침몰의 길을 걷는 도카이 해운을 살려내야만 한다.

 


 기업 안에 뭉뚱그려진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숙명을 업은 야마자키 아키라, 그리고 300명 이상의 직원과 2개의 계열 회사의 존속을 책임질 숙명을 안은 가이도 아키라. 이들의 숙명이 맞닿을 때 비로소 하늘이 내린 두 천재의 두뇌 합작이 시작된다. 페이지 가득 절대 해결할 수 없을 듯한 고뇌가 담겨있을 때는 함께 숨을 들이쉬며 고심했고, 봇물 터지듯 터져나오는 해결책에는 차마 못 뱉은 숨을 머금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살짝, 울컥한 울음 같은 것이 올라오는 것 같기도 했다. 본문에는 그런 내용이 나온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실수를 해결하는 방법이며,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실수라는 것. 자신의 실수도 아닌 삼촌 혹은 거래 기업의 실수를 짊어지고책임이라는 숙명의 무게를 견디며 문제 속에서 다시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두 아키라의 선택 하나하나에 전율을 느꼈다.

 덧붙여, 600 페이지에 육박하는 책 가득 얼핏 어려울 듯한 기업과 투자 은행의 개념이 담겨있었지만 각주 없이도 이야기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와 개념을 녹여낸 작가의 노고에 박수를 치고 싶다. 잘 알지 못할 분야의 두뇌싸움을 일반인 A인 내가 이렇게 심취해서 함께 삐걱대는 머리를 굴려가며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탁월한 필력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케이도 준의 작품을 다 읽고싶게 만든 역작이었다. 정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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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
한국화 지음, 김주경 옮김 / 비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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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을 읽고
풍성한 도시 속 사막 같은 결핍에 관하여

 번쩍거리는 도시 속을 거닐며 그 속에서 메마르디 메마른 곳을 생각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 이 책을 지은 한국화 작가이다. 작가는 8개의 짧고 깊은 단편을 통해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는 결핍들을 한 겹 한 겹 들추어 낸다. 그 결핍은 아주 사소하기도, 너무 거대하기도 해서 우리는 종종 부족함이라고 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물, 사랑, 사람의 소중함, 가족의 애정이 과도하게 부족한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래는 여덟 편의 단편을 읽어내며, 부족하디 부족한 내가 잠깐 잠깐 부풀려본 생각들이다. 돈을, 물을,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들에 대해 가장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모국어까지 버린 작가의 마음을 모두 파악하기란 어려웠지만, 그럼에도 남기고 싶은 것이, 깊이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기에 몇 몇의 생각방울을 남겨보고자 한다.

❄️[눈송이] 사람이 소중하다는 인식의 결핍

 사람이 죽었다. SNS에서 알았다. 그리고 SNS에서는 무심하게 광고, 요리법, 돌고래 사진, 그리고 출처 불문의 정보를 주는 기사가 연이어 올라온다. 가 무심하게 스크롤함에 따라. 에게 소중했던 기억을 남긴 사람이다. 그 사람이 죽었는데 세상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 돌아간다.

 이태원의 사고를 떠올렸고, 서이초의 선생님이 떠올랐다. 무심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한 내 인스타그램도 곧 펜 광고, 고양이 릴스, 인스타툰, 다시 또 광고를 보여줬다. 그렇게 끔찍한 소식을 전하고, 같은 무게를 둔 게시물인 양 다른 사진들이 같은 크기로, 같은 속도록 전해졌다. 그들의 죽음은 갑작스러웠고, 충격적이었으나 가볍게 전해졌다. 이 단면적인 모습을 통해 사람의 목숨 값이 얼마나 가볍게 전해지는지 내쉬는 숨과 들이쉬는 숨마저 불편할 정도로 진하게 느껴졌다.

🔥[폭염]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기 온기의 결핍

여기, 뜨거운 여름에 뜨겁게 테니스를 치는 그녀가 있다. 이 단편 속 모든 것은 처음부터 뜨겁기만 했다. 여름 날 무더운 땀을 뚝뚝 흘리며 들어오는 그녀의 테니스도 뜨거웠지만, 연이어 테니스 유망주로 언급되는 그녀를 사모하는 학생들의 애정도 뜨거웠다. 그녀의 인기는 하늘로 치솟았고 그녀와 그녀의 팬과 그녀를 열렬히 사랑하는 는 더운 침을 뚝뚝 흘려댔다. 폭염 같은 사랑이 식은 건 한순간이었다. 테니스의 여신인 그녀가 성소수자임을 들켰을 때부터 여름은 불쾌하도록 냉랭해졌다. 악의로 찬 시선이 그녀의 몸에 칼날 자국을 내는 동안, 의 시선은 오직 그녀만을 바라본다. 사랑엔 조건이 없어야 하거늘. 재고 따지고 판단하는 사람들의 냉정한 시선이 폭염과 격하게 대립하며 나는 함께 뜨겁고, 함께 추위에 떨었다.

 이 책에서는 위 두 단편에서 드러난 존재의 가벼움, 온기의 결핍 말고도 6가지의 결핍을 더 이야기한다. 물리적 급수의 결핍, 살아갈 이유의 결핍과 이어지는 감정의 부재, 소통의 결핍 등, 우리가 느껴온 다양한 결핍을 짧고 자극적으로 드러낸다. 감각적인 커버에 반하고, 짧은 길이에 속도의 호흡을 조절하고, 문장 문장에 담긴 생각의 깊이에 감탄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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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평범한 가족
마티아스 에드바르드손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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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평범한 가족>을 읽고
평범, 혹은 완벽한 가족이 무너져 내리는 경계에 대하여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면 자기는 이렇게 하겠다 자신하지만 나는, 특히 내 일을 통해서 그런 말은 다 쓸데없는 것임을 배워왔다. 특수한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예측하는 건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p.440

 책을 읽고 내 남자친구한테 너라면, 모든 상황적 증거가 너의 딸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지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딸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법원에서 위증할 수 있겠어?라고 물었다. 남자친구는 단호히 안 할 것이라고 했다.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면 받고, 잘못하지 않았다면 위증하지 않는다고 해도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그런데 아마, 이런 대답은 위 인용문에 드러난 울리카의 말처럼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거다. 딸은 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어린 우리가 가족의 의무감에 대해서,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사법체계가 정당히 밝혀내지 못하는 진실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거의 평범한 가족 nearly normal family>은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곪아가던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을 담은 법정 스릴러다. 막나가는 다혈질 딸이 살인 용의자로 구속되면서 그간 딸이 숨겨온 정신적, 행동적 문제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공개된다. 10살 이상 많은 남자와 섹스 파트너 관계였으며, 학교에서도 분노조절, 충동조절 장애를 앓는 것으로 드러났다. 마약에, 잦고 얕은 관계 형성에, 지배욕까지. 뭐하나 건드리기 쉽지 않은 아이였다. 더불어 모든 증거까지 마치 조작된 것처럼 하나같이 스텔라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검사와 형사는 스텔라의 정신 상태에 주목했다. 드러난 승부욕과 지배욕. 자신이 모든 상황의 결정자여야 하며 충동 조절을 하지 못해 걸핏하면 갈등을 일으켰다. 스텔라는 아직 5살이잖아요.라는 변명은 벌써 오래 전에 낡아 바스라졌고 스텔라를 통제하기 위한 아빠 아담의 노력이 스텔라를 옭아맬수록 스텔라는 숨구멍을 찾기 위해 그물망을 찢고 또 찢었다. 교사들 사이에 흔히 인용되는 문구가 있는데 바로 콩콩팥팥이다. 아빠의 지배욕을 발버둥쳤고, 어머니의 방치에 외로웠던 스텔라는 지배 받는 대신 스스로 상황을 지배하려 하는 애정 결핍 소녀가 되었다. 자신의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 상황, 섹파에 가까운 남자친구, 그리고 자신이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의 배신 의혹까지. 애초부터 불안정하던 스텔라의 정신상태를 흔들어 놓기 충분한 상황들이 잇달아 일어났고, 스텔라 스스로도 자백하기에 이른다.

 이제 겉보기에 훌륭했던 목사와 뛰어났던 변호사가 같이 해야 할 일은. 이 재판에서 스텔라가 무죄를 받아내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것. 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목사는 종교를 버리고 변호사는 법을 버린다. 스텔라를 위해 자신들을 정의하던 모든 것을 버린 이 부모는 이 모든 일이 종결된다 한들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무죄를 입증한다 한들 스텔라에겐 무엇이 남을까. 후회와 자책과 절망으로 얼룩진 이들 가족이 과연 이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후에 다시 단단히 일어설 수 있을까.

 용의자 X의 헌신 이후로 이렇게 재밌는 스릴러 소설은 오랜만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 무거운 책을 어디든 들고 다니며 종이에 코를 박고 책을 읽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모든 것을 아는 스텔라-짐짓, 아무것도 몰라 보였던 엄마 순서의 관점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도 너무 흥미로웠고 마지막의 반전은 소름이 돋았다. 가족이 신앙보다 소중했던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가족보다 자신과 친구가 더 중요했던 스텔라의 가치 충돌이 와닿았고, 그럼에도 결국 마지막에 끌어안은 것은 가족이라는 것도 미묘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스텔라가 엄마, 아빠를 보고 한 말은 아직도 어지럽다. 시간이 되면 내가 놓친 감정선이나 숨겨진 장치들을 찾으러 한 번 더 읽고 싶은 소설이다. 정말, 정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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