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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평범한 가족
마티아스 에드바르드손 지음, 권경희 옮김 / 비채 / 2023년 6월
평점 :
<거의
평범한 가족>을 읽고
평범, 혹은
완벽한 가족이 무너져 내리는 경계에 대하여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면 자기는 이렇게 하겠다 자신하지만
나는, 특히 내 일을 통해서 그런 말은 다 쓸데없는 것임을 배워왔다.
특수한 상황에서 자신의 행동을 예측하는 건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p.440
책을 읽고 내 남자친구한테 “너라면, 모든 상황적 증거가 너의 딸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지목하고 있는 상황에서 딸의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법원에서 위증할 수 있겠어?”라고 물었다. 남자친구는 단호히 안 할 것이라고
했다.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면 받고, 잘못하지 않았다면
위증하지 않는다고 해도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고. 그런데 아마, 이런
대답은 위 인용문에 드러난 울리카의 말처럼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거다. 딸은 커녕 결혼도 하지 않은
어린 우리가 가족의 의무감에 대해서, 부모의 사랑에 대해서, 사법체계가
정당히 밝혀내지 못하는 진실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거의 평범한 가족 nearly normal family>은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곪아가던 가족에게 일어나는 일을 담은 법정 스릴러다. 막나가는 다혈질
딸이 살인 용의자로 구속되면서 그간 딸이 숨겨온 정신적, 행동적 문제들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공개된다. 10살 이상 많은 남자와 섹스 파트너 관계였으며, 학교에서도 분노조절, 충동조절 장애를 앓는 것으로 드러났다. 마약에, 잦고 얕은 관계 형성에, 지배욕까지. 뭐하나 건드리기 쉽지 않은 아이였다. 더불어 모든 증거까지 마치
조작된 것처럼 하나같이 스텔라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검사와 형사는 스텔라의 정신 상태에 주목했다. 드러난
승부욕과 지배욕. 자신이 모든 상황의 결정자여야 하며 충동 조절을 하지 못해 걸핏하면 갈등을 일으켰다. “스텔라는 아직 5살이잖아요.”라는 변명은 벌써 오래 전에 낡아 바스라졌고 스텔라를
통제하기 위한 아빠 아담의 노력이 스텔라를 옭아맬수록 스텔라는 숨구멍을 찾기 위해 그물망을 찢고 또 찢었다. 교사들
사이에 흔히 인용되는 문구가 있는데 바로 “콩콩팥팥’이다. 아빠의 지배욕을 발버둥쳤고, 어머니의 방치에 외로웠던 스텔라는 지배 받는 대신 스스로 상황을 지배하려 하는 애정 결핍 소녀가 되었다. 자신의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현실 상황, 섹파에 가까운 남자친구, 그리고 자신이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의 배신 의혹까지. 애초부터
불안정하던 스텔라의 정신상태를 흔들어 놓기 충분한 상황들이 잇달아 일어났고, 스텔라 스스로도 자백하기에
이른다.
이제 겉보기에 훌륭했던 목사와 뛰어났던 변호사가 같이 해야 할 일은. 이 재판에서 스텔라가 무죄를 받아내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것. 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목사는 종교를 버리고 변호사는 법을 버린다. 스텔라를 위해 자신들을 정의하던 모든
것을 버린 이 부모는 이 모든 일이 종결된다 한들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무죄를 입증한다 한들
스텔라에겐 무엇이 남을까. 후회와 자책과 절망으로 얼룩진 이들 가족이 과연 이 폭풍우가 휩쓸고 지나간
후에 다시 단단히 일어설 수 있을까.
용의자 X의 헌신 이후로 이렇게 재밌는 스릴러
소설은 오랜만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이 무거운 책을 어디든 들고 다니며 종이에 코를 박고 책을 읽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모든 것을 아는 스텔라-짐짓, 아무것도 몰라 보였던 엄마 순서의 관점에서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도 너무 흥미로웠고 마지막의 반전은 소름이 돋았다. 가족이 신앙보다 소중했던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가족보다 자신과 친구가 더 중요했던 스텔라의 가치 충돌이 와닿았고, 그럼에도 결국 마지막에 끌어안은
것은 가족이라는 것도 미묘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스텔라가 엄마, 아빠를
보고 한 말은 아직도 어지럽다. 시간이 되면 내가 놓친 감정선이나 숨겨진 장치들을 찾으러 한 번 더
읽고 싶은 소설이다. 정말, 정말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