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을 짊어진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아키라와 아키라>를 읽고
30년 세월이 눈 앞에서 휘리릭 넘어갔다. 석유 파동부터
시작된 일본 경제사가 거품 경제를 지나 장기 불황까지 이어지는 동안 그 세월을 견뎌내고 살아내는 아키라와 아키라의 삶이 눈 앞을 스치듯 지나갔다.

✨“자네의 그 경험을 결코 헛되지 않았어.”
야마자키 아키라는 돈의 아픔을 보고 느끼며 자랐다. 자신의 공장을 이루어낸 아버지를
꿈으로 삼고 컸지만 공장 사정에 따라 날카로워지는 아버지를 몸으로 느꼈다. 아버지가 세상에 ‘지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 감내해야 했다. 그래도 일어서는 아버지를 보며, 또 그런 아버지를 믿고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고심한 한 뱅커를 보며 야마자키 아키라는 사람을 위해 돈을 빌려주는 뱅커가 되기로 마음 먹는다. 사람을
살려내는 힘을 가진 뱅커가 되기로 마음에 새긴다. 그 경험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기까지.

✨ “반드시
그 호텔을 흑자로 만들겠어.”
가이도 아키라는 그야말로 다이아 수저 집안의 후계자였다. 음, 어쩌면 주어진 운명은 걷어찬 후계자. 가족에서 가족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는 집안에 진절머리를 느낀 아키라는 외려, 다양한 회사의 융자를 담당하며 기업의 경영에 창의적인
인공호흡을 가하는 투자 은행에 매력을 느낀다. 그러나 진부한 표현으로 회사 경영은 아키라의 숙명이었던
것. 부족한 자들의 욕심으로 이미 침몰의 길을 걷는 도카이 해운을 살려내야만 한다.

기업 안에 뭉뚱그려진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숙명을 업은 야마자키 아키라, 그리고 300명 이상의
직원과 2개의 계열 회사의 존속을 책임질 숙명을 안은 가이도 아키라.
이들의 숙명이 맞닿을 때 비로소 하늘이 내린 두 천재의 두뇌 합작이 시작된다. 페이지 가득
절대 해결할 수 없을 듯한 고뇌가 담겨있을 때는 함께 숨을 들이쉬며 고심했고, 봇물 터지듯 터져나오는
해결책에는 차마 못 뱉은 숨을 머금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살짝, 울컥한
울음 같은 것이 올라오는 것 같기도 했다. 본문에는 그런 내용이 나온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이 실수를 해결하는 방법이며,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새로운 실수라는 것. 자신의 실수도 아닌 삼촌 혹은 거래 기업의 실수를 짊어지고 ‘책임’이라는 숙명의 무게를 견디며 문제 속에서 다시 해결방안을 찾아내는
두 아키라의 선택 하나하나에 전율을 느꼈다.
덧붙여, 600 페이지에 육박하는 책 가득 얼핏 어려울 듯한 기업과 투자 은행의 개념이
담겨있었지만 각주 없이도 이야기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와 개념을 녹여낸 작가의 노고에 박수를 치고 싶다.
잘 알지 못할 분야의 두뇌싸움을 일반인 A인 내가 이렇게 심취해서 함께 삐걱대는 머리를
굴려가며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작가의 탁월한 필력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케이도 준의 작품을
다 읽고싶게 만든 역작이었다. 정말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