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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평점 :
언젠가 일본소설에 굉장히 심취해서 읽던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10년도 훌쩍 지난 이야기이며, 취업을 준비하던 내가 한창 공부는 하기 싫고 책은 읽기 좋은 날이었다. 도서관에 쳐박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열심히 일본 소설을 대여하여 읽던 때였다.
그때 일본 감성 소설로 가장 유명하던 작가는 단연 에쿠니 가오리였다. 그녀가 워낙 다작을 하기도 했지만, 또 그 만큼 유명한 이야기들을 많이 써냈기도 했으니 유명했을 거다. 일본 소설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감성 가득한 문체가 유독 읽기 쉬웠고, 마음에도 쉬이 와 닿았다. 그래서 나는 감성이 촉촉해지고 싶으면 주로 일본의 여류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물론 극강의 T지만)
그러다 세월을 살면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감성 촉촉한 일본 소설을 읽지 않게 되는 시기가 왔다. 너무 매말라 버린 것인지. 그래서 오랜만에 에쿠니 가오리의 이름이 적힌 장편소설의 소식을 들었을 때 예전 생각이 났고, 요즘에 나는 감성 촉촉해져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읽기 시작했고, 역시나. 감성엔 역시 에쿠니 가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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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80대 절친 노인인 간지, 츠토무, 치사토 3명이 호텔에서 엽총으로 자살을 한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래서 처음에 에쿠니 가오리가 스릴러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나 싶었다. 돌연 자살 사건이라니...하지만 이 이야기는 이 3명의 주위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남겨진 사람들이 간지와 츠토무, 치사토를 생각하며 남겨진 사람들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가족일 수도 있고, 자신이 버팀목으로 생각하던 사람일 수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이 책은 줄곧 처음의 노인 3명이 왜 자살을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끝까지 자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저 그들을 보내는 주위 사람들로 어떤 삶은 살던 사람이었는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짐작하게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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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이야기 보다는 이렇게 따라가는 이야기들이 읽기가 편하다. 그리고 꽤 충격적인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긴장감이 느껴지지는 않는 이야기. 정말 어딘가에는 있을 법한 사람의 이야기들이 나온다. 남은 사람들 중에는 가족이 죽었지만 추억이 없이 무감정만 남아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죽은 사람을 한껏 밝게 이야기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었다.
책을 덮고 난 후에는 역시 여전히 에쿠니 가오리 였으며, 감성소설이라고 느낄만 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감성을 스물스물 올라오게 하는 것이 가을밤에 읽기 딱 좋은 소설이었다.
<이 책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