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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인류 보고서 - 리얼 하드코어 오피스 생존기
김퇴사 지음 / 비에이블 / 2024년 8월
평점 :

이제 며칠 후면 일을 그만 둔다. 함께 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보지말자는 심정이다. 그만두기로 마음을 먹고 사표를 냈을 때는 속이 시원했다. 이 더러운 놈의 회사 탈출은 지능순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지만 막상 일을 두만두려니 달달했던 월급루팡의 시간들이 벌써 아쉽다. 사표를 내고 나서 퇴사하는 디데이를 향해 하루씩 달력의 날짜를 지워가던 그 때 바로 이 책 [퇴사인류 보고서]를 만났다.
[퇴사인류 보고서]는 김퇴사란 필명의 작가가 본인의 sns에 연재한 소위 오피스툰으로 1천만 뷰를 기록한 화제의 웹툰이란다. sns를 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도 온라인 커뮤에서 오며가며 이 웹툰을 봤을 정도니 화제가 되었던 것은 맞는 것 같다. 이번에 출간 된 책에는 sns에 올렸던 그림에 미공개 원고까지 추가하여 총 192편의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책의 컨셉이랄까 웹툰의 형식이 조금은 독특한데 일단 그림체부터가 여타 웹툰의 형식과는 다르다. 특이하게도 미국식 빈티지 그래픽노블을 연상시키는데 "행복한 눈물"로 유명한 로이 릭턴스타인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5~60년대 미국의 빈티지 스타일의 일러스트를 생각하면 되겠다. 그림은 간결하고, 색깔도 검정과 노랑 두가지만으로 되어 있어서 전반적으로 깔끔해보이고, 가독성이 높다.
웹툰의 형식은 약간 '제목학원' 느낌으로 원그림의 상황과는 반대되거나 전혀 맥락이 다른 엉뚱한 드립, 혹은 예상치 못한 대사를 치면서 반전의 웃음을 주는 개그 프로에서 흔히 사용되는 일종의 시바이 같은 건데 인물들은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개소리를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런 반전이랄까 개그가 은근 재미있다. 처음 온라인상에서 이 웹툰을 봤을 땐 원래 오리지날 이미지가 있고 그걸 가져와서 제목학원처럼 적당한 드립을 써넣은 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처음부터 그림까지도 다 직접 그린 것 같다.
책의 제목은 "퇴사인류"지만 의외로 내용은 퇴사를 하지 말자는 느낌이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퇴사욕구를 가지고 있을텐데 마음처럼 쉽게 퇴사를 하지는 못한다. 매일 직장상사의 면상에 사직서를 집어던지고 뒤돌아서 도도하고 당당하게 사무실을 걸어나가는 꿈을 꾸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꿈일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퇴사 욕구는 하루에도 몇번씩 치밀어오르는데 그런 욕구를 웹툰이란 형식으로 표현해내었다. 대신 욕해주고, 화도 내주고, 공감하고, 위로도 하면서 퇴사 욕구를 잠재워주는 것이다.
스토리가 이어지는 것이 아닌 한컷으로 된 한컷카툰이라서 어디를 펼쳐서 읽어도 된다. 하나의 장면, 하나의 대사 안에 기승전결이 다 담겨 있어서 아이디어도 좋고, 박진감도 넘친다. 이 카툰은 직장인이라면 회사생활을 하다가 한번쯤 경험하고 느껴봤을법한 내용으로 꽉 차 있다. 이런 걸 보면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나만 유난히 힘든게 아니라 원래가 노예생활은 누구나 똑같이 힘들고 더러운 것이구나 하고 이상한 지점에서 공감과 위로를 받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