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 진주성 - 전라도로 가는 마지막 관문
정용연 그림, 권숯돌 글 / 레드리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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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라고 하면 (당연하게도) 언제나 자동적으로 성웅 이순신을 떠올리게 된다. 이순신 장군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구국의 영웅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의 공이 물론 엄청나긴 하지만 이순신 장군 외에도 수많은 장군들과 이름없는 영웅들이 목숨을 바쳐 싸웠다는 것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중 한명이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1차 진주성대첩을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동안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들으면서 내내 한가지 궁금한 점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는데 전쟁 초반에는 왜의 육군이 조선군보다 훨씬 강했으니 육로로 이순신 장군의 수군 군영을 치면 쉽게 이길 수 있었을텐데 도대체 왜 왜군은 이순신 장군에게 상대도 안되면서 계속 수군으로만 싸움을 걸다가 판판이 깨진 것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김시민 장군이 전라도로 진격하는 왜군을 진주성에서 막아내어 전라도를 지켜내고 이순신 장군의 군영도 안전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만큼 진주성 전투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었다.


[1592 진주성]은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김시민 장군의 1차 진주성 전투를 그린 만화이다. 만화는 임진왜란이 시작되기 전의 평화로운(?) 시절에 김시민 장군이 전쟁준비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왜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당시 조정에서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선조도 북방에 있던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보내는 등 나름대로 전쟁 준비를 지시했지만 전쟁준비에 동원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는 자료도 있었다고 하니 아무런 준비도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최근의 해석인데 책에서도 이미 그런 전조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순신이나 김시민 같은 몇몇 사람들 외에는 크게 위기감이 없었던 것 같다. 김시민이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무기를 개량하는 것들이 아주 자세히 나온다. 특히 조선 병사들의 전술들을 자세히 그려놓는데 꽤 연구를 많이 한 것처럼 보인다.


김시민은 단순히 진주성을 수성한 수성의 달인으로만 알았는데 전임목사 이경이 죽은 후 김시민은 임시로 진주성 목사가 되어 진주성전투 이전까지 사천성과 고성, 진해, 거창까지 탈환하며 공세를 취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에 의해 바닷길이 막히자 왜군은 한양으로의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전라도로 들어가기로 하고 조선군 주력이 주둔해 있던 전라도의 관문인 진주성을 치기로 한다. 조선군 3천이 지키고 있는 진주성에 왜군 3만이 처들어왔는데 그 시점까지 단일 전투로는 가장 많은 병력이 동원된 전투라고 한다. 책의 중후반은 여러 병법과 전략으로 10배나 되는 왜군을 막아내는 모습을 상당히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아마도 실제 사료에 나와있는 기록들을 토대로 사실적인 고증을 통해 재현한 것 같은데 공선전의 박진감이 느껴지는 꽤 재미있게 전투장면을 묘사했다. (물론 참혹한 전쟁을 "재미있다"고 말하는 게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물론 진주성전투를 승리로 이끈 것은 김시민 장군이지만 김시민 장군을 도와 돌을 던지고, 뜨거운 물을 붓고, 활을 날리고, 총통을 쏜 병졸들과 성안의 백성들의 노력과 희생이 없었다면 결코 이길 수 없는 전투였다고 하겠다. 그래서 여기서는 단순히 김시민 장군 혼자만의 영웅서사시가 아니라 그 순간 그 곳에서 나라를 살리고, 가족의 생명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모든이들을 주인공처럼 다루고 있다. 춤추던 기생과 철없던 어린아이, 늙은 노인, 빨래하던 아낙, 고된 훈련에 불평하던 병졸 그리고 왜군에게 잡혀있다가 왜군의 거짓퇴각하여 조선군을 끌어내어 공격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몰래 탈출하여 그 사실을 김시민에게 알린 아이라던지 이렇게 민초들 한명한명의 희생과 고충을 보여주다보니 오히려 김시민 장군의 영웅적인 면모가 작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그래픽노블(만화)인 만큼 그림체가 중요한데 일단 그림체가 일본만화스럽지 않아서 좋다. 약간 60년대에 나왔던 한국 만화의 느낌이랄까. 캐릭터가 전체적으로 둥글둥글하고 뭔가 한국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리고 깨닫지 못했는데 고증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 같다. 백성들의 옷이나 조선군의 군복 그리고 왜군 장군과 병졸들의 복장에 상당히 공을 들여 그린 것 같다. 첨엔 줄거리만 따라가며 텍스트 위주로 읽다보니 그런 걸 잘 못느꼈는데 일단 한번 읽고 나서 다시 가볍게 책장을 넘기며 보니 디테일이 꽤 섬세하다고 느껴진다. 복장의 고증뿐만 아니라 전투장면이나 동작 같은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다. 처음 책을 읽을 때 그런걸 잘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그게 어색하지 않고 장면장면이 굉장히 자연스러워서 술술 넘어갔기 때문인 것 같다. 뭔가 장면이 어색하고, 동작이 튀고, 고증이 좋지 않았다면 책을 읽는동안 계속 거슬렸을텐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시 상당히 잘 그려진 그림이라고 하겠다.


책의 뒷부분에는 부록처럼 작가가 책을 그리며 알게 된 것들, 즉 일종의 트리비아가 덧붙여져 있다. 화승총은 총구쪽으로 탄알을 넣어서 발사하는데 성위에서 아래로 쏘려고 총을 기울이면 총알이 굴러 빠져나온다. 그런 것을 막기 위해 종이 같은 걸 끼워서 빡빡하게 했다고 한다. 당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조선 병사들이 쓰고 있는 모자에 하얀 솜뭉치가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냥 장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비상시에 지혈을 멈추게 하기 위한 응급붕대 같은 용도였다고 한다. 천민들이 썼던 패랭이모에도 이런 목화솜이 달려있는데 같은 용도이다. 그외에도 일본과 한국의 복장, 조왜 장군들이 들었던 지휘봉, 깃발과 가문의 문장, 병부와 병부주머니, 임진왜란에 참전한 왜군의 수 같은 깨알같은 디테일이 실려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작가가 얼마나 많은 조사와 연구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진주성전투가 얼마나 중요한 전투이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조금 더 상세히 적혀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점이다. 물론 책을 보면 왜가 진주성을 공격한 이유나 그런 것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조금 더 그 중요성과 김시민이 진주성에서 승리하고 전라도로 들어오는 왜군을 막아냈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더 강조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2년여전 쯤 유튜브 역사 강좌를 통해 임진왜란사를 배웠는데 이때 이 진주성전투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요하지 않은 전투가 있겠냐마는 특히 이 진주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고, 왜놈들이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진주성을 함략하려고 했는지, 그리고 기어이 진주성을 지켜냄으로서 그것이 이후 전쟁의 향방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조금만 더 강조했다면 좋았을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그만큼 이 진주성전투는 조선과 왜군 양쪽 모두 큰 전략적 의미를 가진 전투였으니까 말이다.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이순신만을 떠올리는데 이 진주성전투도 꼭 알아두고 기억해야겠다. 유튜브에서 강의형식으로 진주성 전투에 대해 듣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정성으로 그려낸 그래픽노블로 그 위급했던 전쟁의 순간을 직접 보는 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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