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클래식 리이매진드
루이스 캐럴 지음, 안드레아 다퀴노 그림, 윤영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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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를 좋아한다. 기괴하기도 하고, 신비롭고, 초현실적인 판타지의 느낌은 여타의 동화와는 차별화된 앨리스만이 가지는 강점이다. 개성넘치는 캐릭터와 독특하고 독창적인 스토리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앨리스는 만화나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지고, 2차 창작물에서도 많이 차용되고 있다. 앨리스를 다룬 여러가지 창작물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역시 1951년 디즈니 버전의 애니메이션일 것이다. 여기 나온 디자인이 거의 앨리스의 표준처럼 인식되고 있어서, 지금은 원작에 들어있는 오리지널 삽화보다 더 유명하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그 애니메이션의 이미지가 강하다보니 다른 모습의 앨리스는 머리 속에 잘 그려지지도 않고, 간혹 볼 수 있는 다른 삽화나 일러스트의 앨리스는 귀엽게만 그렸다거나 앨리스 특유의 기괴하고 초현실적인 느낌이 빠져버린 경우가 많아서 전혀 앨리스스럽지가 않아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했다.


반면 이번에 새로 나온 '클래식 리이매진드'버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는 아트디렉터이자 삽화가, 그래픽 디자이너인 '안드레아 다퀴노'라는 양반이 삽화를 그렸는데 콜라주 기법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들이 삽화로 들어가 있다. 콜라주 기법은 현대미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양식이라서 삽화가 마치 현대미술을 보는 듯한 느낌도 나는데 이 모양새가 꽤나 세련되면서도 기기괴괴해서 앨리스라는 초현실적이고 판타지스러운 특유의 느낌과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독특한 시각적 해석을 담았다'는 책에 대한 설명을 처음 봤을 때는 책속에 여러명의 예술가들의 그림이나 디자인들이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클래식 리이매진드'라는 책시리즈가 하나의 클래식 소설마다 한명의 예술가가 참여해서 자신의 스타일대로 삽화를 넣거나 구성을 하는 식의 기획이란 뜻인 것 같다.


아무튼 여기에 들어가 있는 삽화들은 지금껏 어떤 책에서도 볼 수 없었던 형식의 독특하고 새로운 느낌의 그림들이어서 일단 굉장히 신선하고 새롭다. 그리고 참으로 앨리스스러움이 가득 묻어난다. 애초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소설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고, 현실 풍자와 은유, 언어유희 등으로 가득찬 초현실적인 판타지 소설이라서 글을 읽을 때도 시각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머리 속으로 그 장면을 이미지화시키며 읽게 되는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을 때면 어떤 판본의 책을 읽더라도 거의 자동으로 디즈니표 앨리스의 캐릭터와 만화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을 때는 디즈니 이미지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책속의 매혹적이고 초현실적인 일러스트를 따라가며 읽게 되었고, 그것은 디즈니에서 벗어난 새로운 재미를 주었다. 소설 속 장면을 어떻게 표현했을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기대가 되었고, 감각적인 디자인과 세련된 이미지에 빠져들게 되었다.


보통 소설책이라면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책의 느낌이 많이 달라진다. 그런데 삽화, 이미지에 따라서도 상당히 느낌이 많이 좌우된다는 것을 느꼈다. 오리지널 삽화가 아닌 책 자체의 삽화가 있는 경우라도 캐릭터나 그림체는 바뀌지만 전체적인 구도나 형태는 디즈니표 앨리스나 오리지널 삽화의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 같다. 모든 앨리스 책을 다 본 것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고 본다. 예컨데 앨리스가 모자장수, 3월토끼와 함꼐 다과회를 하는 장면은 대부분 중앙에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고, 위에서 경사지게 테이블을 보여주며, 인물들은 테이블 양끝 혹은 나란히 앉아 있는 구도로 되어 있는 걸 많이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같은 구도로 되어 있다. 이렇게 기존의 정형화된 구조나 형식을 완전히 벗어나서 완전히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줘서 시각적인 재미와 만족감이 꽤나 큰 편이다. 앨리스 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는데 그런 그런 장면을 독창적으로 해석한 이미지를 보는 맛이 있다. 또 이미지를 적극 활용해서 삽화에 문장을 넣는 형식으로 만화처럼 글을 시각적으로 살려낸 점도 좋았다. 예컨데 앨리스가 토끼굴로 떨어지는 장면에서 앨리스가 토끼굴로 떨어질 때 혼잣말을 하는데 그런 대사를 이미지에 삽입해서 앨리스가 토끼굴에서 계속 떨어지며 독백하는 것처럼 구성하는 식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내용 자체가 난해하고 워낙 말장난이나 은유 같은 게 많아서 번역하기가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즉,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같은 문장이라도 상당히 다르게 번역이 된다는 뜻이다. 이 책의 경우 일단 몇몇 곳은 여전히 난해하다. 그런데 영어식 말장난을 한국어로 그 의미와 느낌을 모두 살려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석이 없이는, 아니 주석이 있어도 스무스하게 문장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런 곳을 빼고나면 가독성이 상당히 좋은 편이다. 딱딱하지 않고, 문장이 쉽고, 동화처럼 가볍게 느껴지는데 특히 대사 같은 것들이 일상 언어처럼 자연스럽게 처리되어 있어서 부드럽고 눈에 잘 들어온다. 쉽게 읽힌다고 유치하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라서 어른들이 읽기에도 적당하다.


지금까지 4~5종의 판본으로 앨리스를 읽었는데 그중 가독성이 높은 순위로 따지자면 1~2위에 꼽을 정도로 문장이 매끄럽고 생동감이 있다. 특히 오래전에 출간된 책들은 좀 딱딱한 문어체로 번역이 되거나 일본식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있었는데 이 책은 캐릭터들의 대화는 구어체를 사용하는 등 일상적이고 가볍고 부드러워서 번역이 상당히 만족스럽다. 약간 영화 자막을 읽는 듯한 느낌의 문장들이라고 하면 비유가 적당할 것 같다. 그래서 글을 읽는 재미와 그림을 보는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글이 쉽고 가독성이 좋아서 앨리스를 처음 읽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고, 이미 여러번 읽은 사람이라도 현대미술 컨셉의 이미지와 디자인의 삽화로 기존의 고정된 틀을 벗어나서 전혀 다른 느낌의 상상력이 가미된 앨리스를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추천할만하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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