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원더랜드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과학으로 읽다
안세실 다가에프.아가타 리에뱅바쟁 지음, 김자연 옮김 / 애플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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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정말 말그대로 이상한 상상력으로 가득찬 세계이다. 앨리스는 흰토끼를 따라 토끼굴로 떨어진 후 버섯을 먹고 신체가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신체의 변화를 겪기도 하고 제자리에 머무르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기도 한다. 미친 모자장수와 미친 토끼와 함께 차를 마시고, 흰장미꽃을 붉게 칠하는 카드 병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리고 온갖 이상한 동물들을 만나기도 하는데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모순의 체셔고양이나 유니콘과 재버워크와 같은 환상의 동물 또 지금은 멸종된 도도새를 만나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버섯 위에 낮아 긴 후카를 빨고 있는 커다란 푸른 애벌레를 마주하기도 한다. 제정신이 아닌 원더랜드 속에는 현실에는 없는 개성넘치고 재미있는 캐릭터들이 가득하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앨리스가 원더랜드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동식물들은 모두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한다.


[사이언스 원더랜드]에서는 동물행동학자인 두 명의 저자가 가장 과학과 멀어보이는 판타지의 세계인 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에 숨겨진 자연과학의 비밀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물론 그렇다고 루이스 캐럴이 책에 나오는 모든 캐릭터에 저마다 과학적인 배경을 치밀하게 설정해놓고 그것을 근거로 창조해낸 것은 아니므로 정.말.로. 그 캐릭터들에 과학적인 비밀이 숨겨진 것은 아니다. 단지 소설 속에 묘사된 사람이나 동식물, 곤충의 특징이나 행동에서 과학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과학적으로 풀어보거나 과학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말하자면 어떤 것은 제법 그 캐릭터가 가진 특징이나 성격과 저자가 설명하는 과학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맞아떨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억지로 끼워맞춰서 실제 캐릭터와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것이다. 애초에 과학 소설이 아닌 판타지 소설에서 과학을 뽑아내려고 하다보니 어쩔 수가 없는 일일테니 뭐 그정도는 이해해주자.


캐릭터와 과학을 좀 억지스럽게 연결시켰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가장 먼저 소개되는 변태와 변화 이야기다. 앨리스는 유리병에 든 액체를 삼키거나 케이크나 버섯을 먹고서 키가 25cm로 줄거나 2.75m가 넘게 커지게 된다. 이렇게 앨리스의 키가 변하는 것을 저자는 곤충의 급격한 외형 변화 즉, 변태와 연결지어 이야기한다. 다시 생각해도 이건 좀 무리가 있다. 쨌건 형태가 바뀐다는 점에서 저자는 변태를 연상시킨다고 말하며 변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사실 변태라고 하면 이미 초등학교 때 다 배웠을 내용이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을 바로 떠올릴 것이고 그 이상 더 특별히 설명할게 있을까 싶은데 좀 본격적으로 들어가니까 의외로 꽤나 모르는 내용들이 많았다. 또 앨리스의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을 방어 메커니즘으로 빠르게 키를 늘렸다 줄렸다 하는 동물과 비교해서 설명하기도 한다.


반대로 과학적으로 제대로 된 설명이 가능한 캐릭터도 있다. 모자장수 매드 해터는 19세기에 모자장수들이 모자를 만들 때 쓰이는 수은에 노출되서 미쳐버린 일에서 유래한 것이란 설명이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내용인데 책에서는 한발 더 들어가서 그래서 당시에는 도대체 어떻게 모자를 만들었길래 수은이 사용되었고, 수은의 부작용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당시에는 모자를 토끼털 같은 동물의 털을 원재료로 해서 만들었는데 토끼털은 펠트로 잘 만들어지지 않아서 질산에 녹인 수은을 이용해 털을 처리하는 '캐로팅'이라는 기술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 방법은 동물의 털을 주황색으로 변하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팀버튼의 영화에서 조니뎁이 연기한 모자장수의 머리카락과 손가락이 주황색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그냥 팀버튼 특유의 동화적인 색감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라니 재미있다.


모자장수와 함께 또 하나의 인기있는 정신나간 캐릭터로 3월 토끼가 있다. 이것 역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번식기에 나타나는 산토끼의 행동 변화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한마디로 발정이 난다는 것. 여기까지만 알고 있었는데 책에는 번식시기에 발정이 난 산토끼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동물들도 소개하고 있다. 그 정신나간 동물들을 앨리스 소설식으로 말하자면 4월 금조, 5월 바위비둘기로 부를 수 있겠다. 앨리스에는 3월 토끼 외에 한마리의 토끼가 더 나오는데 소설 첫머리에 앨리스를 토끼굴로 이끄는 하얀토끼가 그것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는 하얀토끼는 동글동글하고 3월토끼는 길쭉하게 생겼다. 그냥 캐릭터를 만들어서 그렇게 그린 것인줄 알았는데 책을 보니 하얀토끼와 3월토끼는 아예 다른 종이라고 한다. 붉은 눈동자를 가진 흰토끼로 묘사되는데 이는 가축으로 기르는 토끼일 확률이 높단다. 눈이 빨간 알비노는 야생에서는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이란다. 소설을 읽고, 디즈니 애니를 볼 때조차 토끼의 종이 다르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이렇게 알게 되니 뭔가 신기하다. 말하자면 애니는 꽤 고증을 잘 해서 다른 종을 잘 구분해서 그린 셈이다.


앨리스가 후카를 피우는 애벌레를 만나 이야기하는 장면은 좀 유명하다. 비쥬얼적으로도 좀 많이 알려져있고, 앨리스와 애벌레나 나누는 대사도 명대서처럼 인스타 같은 곳에서 종종 쓰이기도 한다. 아무튼 이 애벌레는 후카라는 담배 비슷한 걸 피운다는 설정인데 이걸 은유적으로 환각제나 마약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이걸 책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과 환각버섯으로 연결지어서 이야기하는데 꽤 재미있다. 또 카드병사들이 하얀 장미에 빨간 칠을 하는 장면에서 야생 장미와 재배 장미, 옛날 장미와 현대 장미 등 장미에 대한 여러가지 썰을 푸는 것도 재미있다. 앨리스가 거울나라에 갔을 때 붉은 여왕을 만나 레이스에 참가한다. 한참을 달린 앨리스는 문듯 자신이 처음 있던 곳에 그대로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자 여왕은 원래 있던 곳에 있으려면 전력을 다해서 달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건 붉은 여왕의 가설이라는 것으로 꽤 유명한 논제인듯 하다. 생물들은 포식자, 질병, 기생충 등의 상황에 맞춰 빠르게 변화해야만 한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환경에서 가만 있다가는 사라져버리게 된다는 진화 경쟁에 대한 진화생물학의 가설이다. 명칭부터 붉은 여왕 가설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소설에서 과학을 읽어낸다는 이 책의 컨셉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소재가 아닐까 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소설을 좋아하는데 판타지 소설을 과학으로 풀이하고 검증한다는 컨셉이 일단 재미있다. 이 소설은 당시 사회에 대한 풍자가 들어있다는데 모자장수의 수은중독이나 차문화 같은 과학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 담긴 풍자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기도 하고, 흰토끼와 3월 토끼가 다른 종이라는 정보처럼 소설 속의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있어서 그것을 통해 소설이나 영화를 더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즐겁다. 소설과는 크게 상관없이 과학 이야기를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알지 못했던 새로운 상식을 얻을 수 있어서 좋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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