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셀 아트북 : 현대 픽셀 아트의 세계
그래픽사 편집부 엮음, 이제호 옮김 / 아르누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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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는 8비트의 세계였다. 전자오락실부터 가정용 게임기까지 8비트의 그래픽이 만들어낸 세상은 20세기 소년소녀들을 매료시켰다. 그러다가 16비트의 화려함을 묵도했을 때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의 기술로 봤을 땐 그래픽이 깨지고 낮은 화질의 저급한 화면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작은 픽셀이 빚어내는 사각의 세계가 가진 독특한 매력과 감성이 분명 있다. 어쩌면 그것은 20세기를 거쳐오며 그 시대의 낭만과 동시대적인 경험을 실시간으로 체험한 20세기 소년소녀들만이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그렇기에 21세기에 살고 있는 지금도 그때의 감성을 담고 있는 픽셀 아트에 빠지게 된다. 어쩌면 그런 향수 때문인지 이미 철지난 픽셀을 사용한 그림 소위 픽셀 아트라는 것이 탄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거에는 컴퓨터의 표시 성능의 한계로 컴퓨터로 구현해낼 수 있는 이미지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고 지금의 CG가 만들어내는 현실의 풍경 이미지처럼은 만들지 못 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제한된 기술로 구현된 풍경 이미지는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에 의해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이 채워지며 현실의 풍경이 머리 속 혹은 상상력의 영역에서 완성되게 된다. 즉, 초기의 픽셀 이미지는 그래픽상으로 직접 현실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대신 그것을 떠올리게 하고 연상시키는 형식으로 그림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이런 이미지 연상이라는 부분이 픽셀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직관적이기보단 감각적이고 그런 부분이 예술의 영역과 잘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단순하고 조잡하기까지 했던 픽셀 그래픽이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함께 보다 작은 단위의 도트를 표현하게 되고, 점차 색상이 다양해지고 심지어 색의 명도에 변화를 주는 것까지도 가능해지면서 더 이상 기술적 제약 하에서 등장한 저해상도 그림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에는 거의 실제 사진과 다름없는 수준의 그래픽으로 현실의 풍경을 표현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과거의 픽셀 그림이 제작되고 수용되고 있고 이 도트 그림들은 꽤나 인기도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이는 굳이 일부러 그런 형식을 선택하여 제작하고 있고, 그런 형식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뜻도 되겠다.


저자는 픽셀 아트가 인기를 끄고 있는 첫번째 이유로 도트 그림이 주는 특유의 친근감을 꼽고 있다. 이런 도트 형식은 비단 픽셀 아트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나노블록 같은 블록 완구와 십자수 같은 영역에서도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명쾌하면서도 단순한 조형은 친해지기가 쉬워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 그리고 두번째 이유로 레트로의 영향을 꼽고 있다.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올드한 느낌이 나는 저해상도 그림을 소비하게 되었다는데 반대로 나처럼 그 비트의 세계를 바로 거쳐오며 그것의 흥망성쇠를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는 추억까지 더해져서 그야말로 향수를 자극하는 어떤 그리운 맛이 느껴지므로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21세기 초반만 해도 픽셀로 된 아이콘이나 gif애니메이션 같은 것을 온라인 상에서 상당히 많이 볼 수 있었다. 당시의 픽셀 아이콘이나 그림이 상당히 작고 단순하게 하나의 캐릭터를 그려내는 정도였다면 지금의 도트 그림 소위 픽셀 아트는 아이콘이나 개별적인 캐릭터를 넘어서 마치 회화와 같은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재탄생하였다. 과거의 도트 그림 형식에 최신의 기술력을 접목하여 예전의 도트 그림보다는 조금 더 섬세하고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데 반대로 말하면 일부러 과거의 그림의 느낌이 나도록 도트로 열화시켜 표현했다고 하는게 맞겠다.


열화시켰다는 표현을 썼지만 이 열화라는 것이 이미지의 품질이 낮다거나 그림의 질이 나쁘다는 의미로서 한 말은 아니다. 단순히 그림에 사용된 도트의 크기에 따른 픽셀의 표현이 하이비트 로우비트냐를 뜻하는 것일 뿐이다. 즉 똑같이 픽셀 아트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어떤 작품은 일부러 도트의 느낌이 많이 나게 단순화시키고, 어떤 작품은 요즘의 고화질의 이미지처럼 비교적 정교하게 그려낸 것도 있어서 그 바리에이션이 상당히 폭넓은 편이다. 하이비트에 미래적인 느낌이 날 수록 아방가르드하고 로우비트에 레트로 느낌이 날수록 노스탤지어의 느낌을 자아내기 때문에 목적에 따라 픽셀의 표현도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픽셀로 그려진 그림들을 나열하고 소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언급했던 것처럼 현재는 당당하게 대중문화의 한 갈래가 된 픽셀 아트에 대한 나름 진지한 고찰도 담고 있다. 도트의 매력은 무엇인지, 픽셀 아트가 사랑받는 이유나 지금에 와서 도트로 그려진 그림이 소구력을 가지게 된 이유 같은 것들을 생각해보고 픽셀 아트의 역사와 발전과전 그리고 문화계의 동향을 주요 아티스트들의 작품과 코멘트를 통해 정리하고 있어서 마냥 그림만 보며 소비하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픽셀 아트에 대한 매력을 조금 더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책에는 이미 온라인 상에서 익히 많이 봤었던 유명한 픽셀 그림도 소개되고 있는데 보통 온라인 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픽셀 그림은 일본의 아티스트가 제작한 일본풍 그림이 많다. 그래서 역시 일본의 아티스트가 대부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서구쪽의 아티스트도 많이 소개되고 있어서 픽셀 아트의 인기는 일본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미래 세계를 그린 아방가르드한 작품들보다는 게임화면 같은 그림이나 일상의 풍경을 담고 있는 사진 같은 그림들이 보고 있으면 편안해지고 아스라한 기분이 들면서 서정적인 느낌에 빠지게 된다. 활자는 굳이 읽지 않더라도 도트가 자아내는 아스라한 추억의 감정에 빠져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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