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나쁜영화 100년 - 역사의 기록과 영화의 기억
ACC 시네마테크 기획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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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나쁘다'라는 것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책에 나오는 정성일 평론가의 글에서 그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을텐데 '나쁘다'는 '좋다' 혹은 '착하다'의 대극에 있는 말이다. 영화를 예술로서 바라봤을 때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는 소위 예술적인 가치라는 기준으로 의외로 쉽게 그 정의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산업의 영역에서 영화를 하나의 상품으로 놓고 생각했을 때는 많이 팔리는 영화 또는 관객을 많이 끄는 영화 즉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좋은 영화일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를 사법의 영역에서 바라봤을 때는 무엇이 착한 영화이고 무엇이 나쁜 영화일까?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법의 기준을 벗어나지 않는 영화가 착한 영화이고 그 법이나 기준을 벗어나면 나쁜 영화가 될 것이다.


정성일 평론가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지금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노라고 누차 강조한다. 영화라는 예술의 문제를 논하면서 법이라는 영역에서 그 예술을 재단하며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사법의 잣대로 영화가 좋다 나쁘다를 구분지었던 지난 100년 동안의 한국 영화사. [한국 나쁜 영화 100년]은 한국영화 역사에서 검열로 문제시되고, 제도권 밖으로 배제된 영화들을 재조명한다. 영화는 흔히 현실 사회의 여러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데 때로는 영화 그 자체가 사회문제의 주체가 되는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영화가 법에 의해 규제를 당하고, 검열당하면서 영화가 가져야 할 현실의 담론을 담아내지 못하게 되며 그것에 대한 옳고 그름, 혹은 부당함에 항변하거나 검열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사회적 논의가 되는 것을 말한다.


흔히 영화의 검열이라고 하면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독재자 시절의 영화에 대한 사전검열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텐데 이 시절의 검열의 주된 내용은 아마 반공국치일 것이다. 뭔가 조금이라도 북과 관련되었거나 민중운동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있다면 그 장면은 잘려나갔다. 말그대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암흑한 시기였겠지만 그럼에도 감독들은 어떻게든 검열에 걸리지 않고, 독재자의 눈에 거슬리지 않는 방식으로 현실을 영화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당시는 꼭 빨갱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당시 사회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것조차 가위질을 당할 수 있었다고 한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너무나 생생하게 담아내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부활로 말해지는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날이 당대의 현실을 날것 그대로 담아내었기 때문에 가위질을 당할뻔 했다고 한다.


바람불어 좋은날에 비하면 상계동 올림픽 같은 영화는 직설적이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은 올림픽 개최국에 걸맞는 도시를 보여주기 위해 도시 미화라는 이름으로 빈민촌이었던 상계동에 살던 사람들을 모두 내쫓고 강제이주 시켰다. 평화와 조화라는 기치를 내건 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국가가 개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이었다. 철거와 강제이주로 인해 집을 잃은 철거민들의 삶과 투쟁을 그린 다큐 상계동 올림픽은 비제도권 영화여서 검열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로 비제도권의 독립영화이고 검열을 받지 않은 영화다보니 극장에서 정식개봉을 하지 못하고 대학교 같은 곳에서 상영을 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축제의 기분에 들떠 있을 때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리고 있었고 그런 내용을 담은 영화는 당시 기준에서는 나쁜 영화였다.


독재자가 물러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영화의 사전검열이 폐지가 되고 과거에 비해 표현의 자유가 조금 확대되자 나쁜 영화의 기준이 반공 빨갱이, 노동자 문제에서 포르노 같은 소위 사회 질서와 정서라는 쪽으로 옮겨간 것처럼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와 거짓말일 것이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두 영화는 당시 꽤나 뉴스에 오르내리며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 특회 거짓말은 포르노다 예술이다 하며 법적공방으로까지 이어졌고 작품의 검열은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결이 나온 이후임에도 결국 상당부분이 짤려진채 극장에 걸렸었다. 이때 문제가 된것은 빨갱이 반공 프레임이 아니라 포르노라는 영역으로 사회적 정서에 위배되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다는 이유였다. 90-00 시기는 유독 이런 '예술인가 외설인가' 하는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많이 개봉한 것으로 기억한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은 10.26사건을 다룬 블랙코미디이다. 이 영화가 처음 만들어지고 개봉을 앞두게 되었을 무렵 박정희의 유족들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요구했다는 뉴스가 나왔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개봉 전부터 소송에 휘말렸는데 결국 영화의 앞뒤를 잘라낸채 개봉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앞뒤로 실사 이미지가 들어가 있었는데 그것을 잘라내는 조건으로 상영 허가가 난 것인데 이미 구글링만 해봐도 수없이 많은 사진들이 검색되는데 그걸 잘라내고 상영을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당시 극장에서 상영을 할 때는 그런 이미지가 없는 상태로 개봉을 했단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영상은 앞뒤로 10.26 당시의 영상들이 붙어있는데 아마 그 후로 새로 복원된 완전판인 것 같다. 이렇게 보니 한국 영화 100년 동안 '나쁜 영화'에 대한 검열은 꼭 국가 기관에 의해서만 통제가 가해진 것이 아니고, 꼭 반공이라는 테마로만 검열을 당한 것이 아니었다. 


이 영화에선 이렇게 나쁜 영화가 아님에도 시대상황 때문에 나쁜 영화로 낙인찍히고, 제도권 밖으로 배제된 영화뿐만 아니라 애초에 상업 영화의 시스템 밖에서 만들어진 독립영화, 실험영화 들에 대해서도 고찰하고 있다. 앞서 잠깐 언급했던 상계동 올림픽이 그런 영화인데 책에는 제도권 밖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검열을 피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당연히(?) 가위질을 피할 수 없었을 영화들도 많이 다루고 있다. 제도권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표현방식으로 저항을 했던 감독들의 많은 작품들. 이런 영화들은 상당수가 다큐의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아마 현실을 날것 그대로 담아내고, 관련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아무래도 제도권 밖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이다보니 정식 개봉을 하지 않았고 그만큼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탓에 책에 소개된 작품들도 생소한 작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20세기의 나쁜 영화들은 직접 봤거나 보진 못해도 당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만큼 유명한 작품이 많은데 21세기, 그것도 최근의 작품일수록 더욱 모르는 작품들이 많아진다. 그나마 내친구 정일우 같은 작품들은 가끔 언급이 되서 알고 있지만 그 외에는 거의 다 생소했다. 최근 작품일수록 모르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만큼 내가 과거보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덜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수도 있고, 요즘에는 저항과 사회고발을 영화라는 매체보다는 온라인 상의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홍보하고 알리게 되다보니 과거 영화가 하던 기능이 다른 매체로 전이되면서 나쁜 영화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이런 작품들을 모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쁜 영화는 내가 우리가 관심을 가지건 그렇지 않건 지난 100년 동안 순종이 아닌 거절을, 복종이 아닌 저항을 해오고 있었고, 그런 거절과 저항이 사람들의 인식을 조금씩 바꾸고,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믿는다. 그런 점에서 이런 영화들이 가진 힘이라는 것도 적지 않다고 하겠다. 이 책은 시네마테크에서 책의 제목과 동명의 기획전에서 상영된 영화들을 수록하고 있는데 전반부는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의 짧은 소개가, 후반부는 상영 후 감독들 간의 대화를 활자로 옮겨놓은 것이다. 영화를 보는 것만큼 감독의 입을 통해 그 영화에 대해 들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데 책을 통해 감독의 생각을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감독과의 대화 중 단연 눈길이 가는 건 가장 처음 소개되고 있는 이장호 감독의 바람불어 좋은 날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정성일 평론가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영화인지라 평소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와 동시에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영화 속의 현실적인 시대상과 그것에서 이어지는 영화 외적인 검열이라는 실제 사건들이 한데 어우러지며 이거야말로 나쁜 영화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고 생각된다. 한편으로는 영화가 가져야 할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며 요즘의 영화들은 지금의 대한민국의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가를 반문하게 된다. 아무튼 영화와 관련된 감독의 기억들을 통해 나쁜 시대 속에서 나쁜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관객들과 만날 수 있었는지 또 그때를 회상하며 감독의 소회까지 들어볼 수 있다.


다음으로 관심이 가는 감독의 대화는 단연 장선우일 것이다. 장선우의 거짓말과 나쁜 영화는 아마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많은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영화이다. 그 논쟁이라는 것이 영화가 담고 있는 담론이 아니라 그 영화 자체를 둘러싼 논쟁과 담론이다. 당시 18분 정도를 잘라내고 극장에 걸었다고 하는데 영화제 같은 곳에서는 무삭제판을 상영했었고 장선우 본인은 그런 곳에서 무삭제 버전만을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영화제에서는 18분이 삭제된, 그러니까 당시 극장에서 개봉했던 버전을 상영했는데 감독은 그날 처음으로 삭제판을 보았고, 역시 검열이 얼마나 나쁘고 안 좋은 것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술에 대한 검열을 비판하는 영화제에서 검열당한 영화를 상영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마지막으로는 역시 정성일 감독과의 대담이 흥미로웠다. 정성일 평론가라는 말이 입에는 더 붙지만 어느새 영화를 3편이나 찍은 감독이 되어 있었다. 그 3편의 영화 중 2편이 임권택 감독에 대한 영화이고, 이 영화제에서는 그 두편을 다루고 있다. 물론 이 영화들은 검열을 당하거나 한 나쁜 영화는 아니다. 본 영화제는 꼭 나쁜 영화 뿐만 아니라 제도권 밖에서 제작된 독립영화들도 다루고 있는데 요컨데 정성일 감독의 영화는 그런 독립영화인 셈. 정성일은 평론가 시절 '결국 한국영화는 임권택이다'는 말을 한적도 있는데 그만큼 한국영화사에서 임권택의 위치는 크고, 자연스럽게 정성일 평론가가 임권택을 바라보는 시선도 클 수 밖에 없다.


씨네21 시절 임권택 감독이 영화 연출을 하는 현장에 가서 견학을 하며 그것을 기사로 쓰는 임무(?)를 맡았는데 취화선을 연출하는 총 162회차의 촬영 중 98회차를 견학했고 그 견학을 통해 비평의 글쓰기라는 방법으로는 현장에서 벌어지는 연출의 총체적 결정을 기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임권택의 영화 만들기를 훔쳐볼 수 있는 것은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지 어떤 한 순간을 기술하는 것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느꼈다는데 그래서 그때부터 임권택의 다큐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정성일 평론가답다. 임권택의 다큐를 찍게된 이유를 현학적인 표현으로 풀어놓는데 그 내용 또한 상당히 어렵다. 오랜만에 과거 씨네21 기사를 읽는듯한 기분도 들었다.


나쁜 시대 속에서의 나쁜 영화란 저항이나 개혁 혹은 깨어있다는 말로 대신할 수도 있겠다. 순종하지 않고 복종하지 않은 저항의 예술. 정성일 평론가는 착한 영화와 나쁜 영화는 단순히 반대말이 아니라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영화는, 예술은 어느 쪽에 서 있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이 말은 우리는 어떤 영화를 선택해야 하는지를 묻는 물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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