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거북선 논쟁의 새로운 패러다임 - 민족의식을 탄생시킨 임진왜란 거북선 구조 논쟁의 새로운 가설, 도(櫂) 젓기
김평원 지음 / 책바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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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은 엄밀하게 말하면 완전히 승리한 전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일단 우리 조선의 피해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수많은 조선군과 백성이 죽었고, 많은 수의 백성이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농토의 3분의 1이 유실되며 그야말로 산천초목이 피폐해졌다. 그리고 우리가 싸움에서 승리해서 일본을 쫓아보낸게 아니라 전범인 풍신수길이 사망하면서 전쟁의 동력을 잃고 자발적으로 돌아간 것이었으므로 우리가 승리했다고 말하기가 참으로 애매하다. 임금이라는 선조는 도망을 치고, 조선을 돕기 위해 내려온 명군은 오히려 일본보다 더 심하게 수탈을 하고 백성을 괴롭혔다고하니 당시 조선 백성의 고통은 말로 할 수가 없었을 것이고 이런 상황이니 전쟁에서 이겼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어쨌건 일본이 조선을 점령하지는 못했으니 적어도 비겼다고는 할 수 있겠다.


항간에는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일본에게 점령되지 않은 것이 명나라의 원군 때문이라는 말도 하지만 국뽕을 빼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조선이 왜구에게 점령되지 않았던 것은 명백하게 이순신과 의병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명과 왜의 국제관계가 어떻고, 일본 내 정치지형이 어떻고 하며 아무리 재해석하고 분석을 하더라도 결국 임진왜란은 이순신이다. 이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패배만 하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며 홀로 나라를 구해낸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이런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 때문에 비긴 전쟁이지만 사실상 승리한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보고 있으면 한국 사람이라는 것에 자부심이 차오른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과 함께 조선을 지켜낸 또 하나의 축이 바로 의병일텐데 이 의병이라는 사람들이 생각해보면 참 묘하다. 의병들은 일반 백성 민초들이다. 말하자면 피지배층인 셈이다. 지배층에 대해 불평불만도 많았을 것이고, 조선의 왕이건 일본의 왕이건 누가 지배하건 자신들이 피지배층이란 사실은 변함이 없다. 심지어 일국의 왕이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마당에 이름없는 민초들은 무능한 지배층을 탓하며 왜적에게 굴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 땅을 지키겠다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나로 뭉쳐서 싸웠고 일본군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꼭 의병 뿐만이 아니라 성을 지키기 위해 농민과 천민들까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다 같이 왜적에게 저항했다.


저자는 당시 조선의 백성들이 우리라는 공동체를 자각하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뭉쳐서 저항을 했으며 그 바탕에는 '민족의식'이 있다고 말한다. 서구에서는 민족의식을 근대의 산물이라고 규정하는데 이미 16세기의 조선 백성들에겐 민족의식이라고 규정해도 될 강력한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임진왜란이라고 하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누구나가 이순신에 대해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의병활동으로 대표되는 백성들의 활약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의병활동이나 조선군과 함께 왜적에게 대항한 백성들에 대해서는 궐기나 애국심 정도로만 표현하는데 저자는 이를 민족의식이라는 개념으로 기억하자고 제안한다.


지금까지는 한국사에서 민족주의가 처음 등장했던 것은 삼일 운동 때였다고 하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다. 신분제가 폐지된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에 맞서 저항하는 과정에서 단일한 공동체의식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민족주의라는 것인데 그보다 300년이나 이전에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신분을 초월해 저항하는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민족주의가 탄생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4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 우리가 임진왜란을 기억하는 것은 공동체를 결속시켜주는 전통들을 계속 재생산했기 때문이란 건데 임진왜란 기념비, 추모 사당, 영화, 위인전 등을 통해 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영웅적인 활약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국뽕에 취해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결속시켜준다는 것이다.


하긴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국뽕에 취하고 우리나라가 자랑스럽고 뭐 그런 감정이 드는데 그것이 소위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책에서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민족주의가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한가지 오해하기 쉬운 것이 여기서 말하는 민족주의라는 개념이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적에게 대항해서 싸우며 공동체를 지켰다고 하는 의미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우리 5천년 역사상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외세에 맞서 나라를 지킨 일은 부지기수로 많은데 그렇다면 이미 임진왜란 이전에 민족주의가 형성되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우선 민족이라는 개념부터 정의내리고 가야할텐데 민족의 개념은 같은 언어, 같은 역사, 같은 문화와 관습을 공유한다는 객관적인 측면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본다. 예컨데 평소에는 우리는 같은 민족, 같은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잘 못하는데 거리로 나와서 다 같이 월드컵 축구 응원을 하면서는 애국심이 고취되고 너와 나 우리, 대한민국,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런 개념인 것 같다. 같은 정서를 공유하고 운명의 공동체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상징을 만드는 것은 전통을 만드는 행위이며, 그것이 만들어진 전통이란 건데 임진왜란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콘텐츠가 존재해서 많은 상징과 전통을 만들어 내었고 그런 전통들이 끊임없지 확대 재생산되고 소비되며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해왔기에 임진왜란이 민족주의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보는 견해인 것 같다.


책에는 임진왜란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과 함께 거북선 구조에 대해서도 새로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일단 우리가 알고 있는 거북선의 형태는 실물을 복원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상과 염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다고 말한다. 아직 거북선의 잔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북선의 형태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여전히 형태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는 것 같다. 20세기에는 2층 구조였다는 것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논쟁 끝에 지금은 3층 구조가 정설이 되었다. 그런데 2층 구조와 3층 구조설이 공통적으로 전제하는 방식이 '한국식 노'이다. 즉, 지금까지 거북선 구조의 논쟁은 한국식 노라는 기본 개념을 두고 격군과 전투원의 활동 공간을 해석하는 견해차이였던 것.


그런데 이 책에서는 노 젓기와 관련해 전혀 새로운 견해를 소개하는데 기존에는 노꾼들이 배의 가장자리에 붙어서 노를 저었다고 가정했는데 그래서 노꾼과 전투원이 뒤섞여버리므로 층을 나누어서 격군과 전투원이 분리되었다는 개념으로 논쟁이 있어왔던 것이다. 즉, 앞서도 말했듯이 노꾼이 배의 가장자리에서 노를 젓는다는 대전제 하에서 거북선의 구조를 생각한 것. 그런데 저자는 거북선은 그런 노 젓기가 아니라 격군들이 중앙에서 노를 젓는 소위 도 젓기 방식으로 거북선이 운용되었다고 말한다. 격군들이 가운데서 노를 저으면 당연히 가장자리는 전투원들로만 구성되어서 전투에 용이하다. 만약 기존의 의견처럼 양 사이드에 격군과 전투원이 몰려 있으면 활동에 제약이 있음은 물론 배의 복원력도 낮아지게 된다. 하지만 격군이 중앙에 위치하고 전투원은 사이드에서 있는 형태라면 배가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배의 복원력에도 문제가 없으며 전투원들도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책에는 노 젓기와 도 젓기를 산정하여 각각 거북선 내부를 복원하여 이미지로 제공하는데 이것만 봐도 저자가 주장하는 도 젓기 쪽이 상당히 합리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그 증거로 여러가지 자료를 제시하는데 그 백데이터가 상당히 많다. 즉, 단순히 봐라 도 젓기를 하는 쪽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냐..라는 식의 주장이 아니라 굉장히 여러가지 자료를 근거로 다양한 측면에서 도 젓기에 다가가는데 책을 보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지금까지는 2층 구조냐 3층 구조냐로 싸웠는데 이제부턴 노 젓기냐 도 젓기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쟁점이라고 본다. 만약 거북선이 노가 아닌 도 젓기였다면 애초에 2층 3층 논쟁은 의미없는 것이 되어버리게 된다. 아직까지도 비밀에 쌓여있는 거북선의 구조에 대한 논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 했다. 이것으로 어쩌면 우리는 거북선의 실체에 조금 더 다가가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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