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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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는 이어령 교수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그 두번째 이야기로 첫번째 이야기인 '너 어디에서 왔니' 편이 한국인의 탄생, 출생, 아이 등에 관련된 한국인만의 여러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이번에는 한국인의 젓가락의 문화유전자를 탐구한다. 젓가락은 동양권 중에서도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만 있는 독특한 문화이다. 처음 사용해본 사람도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직관적인 서양의 포크와는 달리 젓가락은 사용하는데 스킬과 연습이 필요하다. 젓가락은 천년도 더 넘은 백제의 무령왕릉에서도 발견이 되었다. 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 두개의 작대기는 전해져 온 것이다. 젓가락이라는 단순한 작대기 두개의 도구가 아니라 젓가락질이라는 행위와 그를 둘러싼 문화로까지 확장시켜 생각하면 젓가락은 동양사상과 한국만의 생활양식이 함축되어진 한국인 특유의 문화유전자라고 할 수 있다.


이어령 교수는 젓가락과 젓가락질을 밈(mem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의 DNA에 새겨지는 생물학적인 유전자와는 달리 문화유전자 밈은 반은 무의식적으로, 반은 의도적으로 배워서 몸에 익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젓가락질은 포크와는 달리 연습이 필요한 행위이므로 어릴 때부터 그것을 할 수 있도록 교육받으므로서 채득하게 된다. 그렇게 젓가락, 더 정확히는 젓가락질이라는 행위는 대를 이어 전승되어 왔다. 말하자면 똑같이 젓가락질을 하는 전세계 30%의 사람들도 전부 다른 문화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즉, 젓가락에서 내가 누구인지, 나와 함께 사는 이웃이 누구인지 한국인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흔히 동양사람은 젓가락질을 하기 때문에 머리가 좋다는 말을 하는 일이 많다. 머리도 좋고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치매도 안 걸린다고 말을 했었는데 실제로 젓가락을 사용하면 손재주가 좋아지고 뇌가 발달한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젓가락 DNA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젓가락 문화는 앞서도 말했지만 생물학적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배우게 되는 것이다. DNA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내적으로 오는 유전자가 아니라 바깥에서 보고 들은 걸 모방하는 데서 오는 것이다. 보고 배워야 가능해진다는 말. 그래서 이걸 책에는 DNA유전자가 아니라 문화유전자라고 말한다. 문화유전자밈은 함께 배우고 공유함으로써 모방 전승되는데 그 전승 과정 속에서 민족의 문화와 민족성이 투영이 된다. 


이어령 교수는 밈의 가장 중요한 세포가 언어라고 말한다. 젓가락을 각 나라의 언어로 칭하는 것에서부터 그 나라만의 문화적 특색이 드러난다. 중국에서는 젓가락을 '저'라고 하는데 한자로는 대나무 '죽' 밑네 놈 '자'를 쓴다. 이로서 예전에 젓가락을 대나무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저' 대신 '쾌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똑같이 대나무 '죽' 밑에 놈 '자' 대신 빠르다는 뜻의 '쾌'가 들어간다. 남송 무렵 해양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양자강 남쪽 지역에서 젓가락 문화가 퍼져서 '쾌자'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쓰이게 되었다는데 순풍에 돛달고 빨리 가야만 하는 뱃사람 문화의 영향으로 빠르다는 '쾌자'를 사용했고, 이때 젓가락이 많이 만들어져서 전국으로 보급되었기 때문에 '저' 대신 '쾌자'란 말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 그런데 내가 이해를 못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아무리 여러번 읽어봐도 그래서 '쾌자'로 바뀐 이유가 뭐라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 아무튼 대충 문화가 바뀌면서 명칭도 바뀌었다는 게 글의 요지다.


일본에서는 '하시'라고 하는데 '구치바시'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구치바시는 새의 부리라는 뜻인데 젓가락으로 뭔가를 집는 모양이 새가 부리로 조아먹는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한다. 일본 젓가락은 유난히 끝이 뾰족하기 때문에 새의 부리처럼 보인다는 것. 그래서 나온 명칭이 '하시'다. 또 다른 썰도 있다. '하시'에는 다리라는 의미도 있는데 젓가락을 하시라고 부르는 건 음식과 나를 젓가락이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하시'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썰이다. 그래서 젓가락을 성스러움과 속된 것을 연결해주는 상징으로 여겨서 매우 신성시했다고 한다. 우리는 밥상에 세로로 젓가락을 놓는데 일본은 가로로 놓는다. 그것은 음식이 하늘이 주신 성의 세계에 속하고, 우리는 속의 세계에 속하므로 그 경계의 표시로 젓가락을 가로로 놓았다는 것. 이렇게 같은 젓가락이라고 하더라도 각 나라의 문화적 의미가 다 다르게 담겨 있고, 부르는 명칭에 따라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젓가락에 얽힌 여러 이야기를 탐구하면 한국인 만의 유전자, 한국인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는 젓가락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도 젓가락을 뜻하는 한자 '저' 뒤에 '가락'이라는 토착어가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라고 한다. 한자어와 토착어가 연결되어 한국만의 독특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로 재탄생한 것인데 이어령 교수는 한자와 우리말의 아름다운 결합이라고 말한다. 젓가락이란 말은 매일 쓰고 있지만 그 뜻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가락이란 손가락, 엿가락, 가락지 처럼 눈에 보이는 것을 뜻하기도 하고, 한가락 한다고 할 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을 뜻하기도 하는 말이다. 아마도 젓가락에서의 가락은 손가락의 가락이 연장되었다는 뜻인 것 같다. 말하자면 대나무 작대기로 만든 손가락으로 손가락의 연장이라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것. 


한국에서는 술을 마시고 신명이 나면 젓가락을 두드린다. 그야말로 젓가락을 두드리며 가락을 맞춘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결코 없는 한국만의 문화다. 다른 나라에서는 이걸 교양없는 행동으로 보고, 젓가라을 두드리면 평생이 고달프다는 말까지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젓가락과 손바닥을 두드리며 장단을 맞춘다. 재미있게도 한중일 3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 쇠젓가락을 사용하는데 나무젓가락은 어디를 두드려도 소리가 크게 나지 않지만 쇠로 된 젓가락을 두드릴 때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쇠젓가락은 소리를 울린다는 행위에 딱 알맞은 도구이자 악기였던 것이다. 이것도 역시 한국만이 가진 쇠젓가락이라는 문화와 흥이 많은 민족성이 합쳐져서 만들어낸 문화유전자라 할만하다.


젓가락이라는 한벌의 작대기로 이다지로 많은 지식의 확장을 가져온다는 것이 재미있고, 꼬리에 꼬리는 무는 지식의 향연이 즐겁다. 글은 단락 단락으로 나누어서 쉽게 읽을 수 있게 구성이 되어 있는데 온갖 국가의 온갖 문화, 언어, 역사 등이 총망라되어 다양한 썰을 풀어놓아서 이어령 교수의 지식의 폭과 깊이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단 중간중간 글이 어려워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한자어를 사용하여 설명하는 곳이 많아서 한자를 모르면 조금 내용을 이해하기 까다로운 곳도 있는 것은 아쉽다. 말하자면 그건 글을 읽는 독자의 수준이 미천하여 천재의 글을 이해하지 못함이니 누굴 원망하랴.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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