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까발린 영화감독 세르조 레오네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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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레오네는 총 6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저자는 무명인 3부작이라 칭했지만 통상적으로는 무법자 3부작 또는 달러 3부작이라 불리는 스파게티 웨스턴 시리즈와 ONCE UPON A TIME 3부작이 그것이다. 레오네 감독은 소위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불린 하나의 장르를 구축했는데 스파게티 웨스턴은 정통 서부극의 장르 비틀기를 통해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을 비판하고 미국식 정의와 영웅주의를 까발린 일련의 서부극을 말한다. 세르지오 레오네가 만든 서부극은 겨우 5편뿐이고 그 중에서도 스파게티 웨스턴에 해당하는 작품은 3편에 불과하지만 장르적 특징을 만들었고, 워낙 이들 영화 자체의 작품성과 임팩트가 강하다보니 세르지오 레오네는 스페게티 웨스턴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레오네는 무숙자라는 서부 영화의 각본을 쓰고 제작까지 했는데 이로써 6연발의 리볼버가 꽉 차게되는 셈이다. 이후 유사한 소위 수정주의 웨스턴이 쏟아졌지만 레오네 감독의 영화만큼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는 없었기 때문에 세르지오 레오네의 이름에 더욱 무게가 실리는 것이기도 하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무법자 시리즈를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앤리오 모리코네의 이름을 빼고서는 말할 수 없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무법자 3부작에 출연했고, 모리코네는 레오네 감독 6편의 영화음악을 모두 담당했는데 워낙에 영화적으로 궁합이 잘 맞다보니 흔히 이 세 사람을 3총사처럼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스트우드는 레오네나 모리코네와는 결이 상당히 다르다. 일단 이스트우드 옹은 잘 알려진대로 대놓고 공화당을 지지하는 우파이고(지금은 진보 쪽으로 돌아선 희귀한 케이스다) 레오네와 모레코네는 좌파이다. 기본적으로 레오네 영화에서의 정의란 사회주의적 정의로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다. 이런 좌빨 영화에 공화당원인 이스트우드가 출연했다는 것도 재미있다. 좌빨이라는 말이 거슬리겠지만 레오네는 마르크스나 바쿠닌을 자주 인용하는 사회주의자 혹은 아나키스트라는 것을 생각하면 어쨌건 이스트우드와는 정반대 급부에 있는 사람인것만은 분명하다.


레오네 감독이 사회주의자이고 그의 정의가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라는 점이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만들어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존 웨인(그리고 존 포드)으로 대변되는 기존의 정통 서부극은 전형적인 백인 우월주의, 미국 제일주의, 자본주의식 정의를 바탕에 깔고 있다. 애초에 존 웨인부터 골수 공화당원이고 그는 백인 지상주의를 믿고, 흑인이 노예였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등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수꼴 존 웨인이 만든 서부극이라니 안 봐도 비디오 안 들어도 오디오다. 서부극은 역사가 짧은 미국에 있어서는 국가 탄생설화와 같은 것이다. 존 웨인식 영웅 서사는 하나같이 정의를 수호하는 백인 보안관이 야만으로 상징되는 악당인 인디언을 죽이는 백인을 미화하는 내용이었다. 이런 인종차별적인 영웅주의를 사회주의자인 레오네가 비틀고 비판하며 스파게티 웨스턴을 만든 것이다


무법자 3부작 중 제일 처음 나온 황야의 무법자에서 이스트우드는 이름이 없는 노바디로 나온다. 이 무명의 노바디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에 나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책에서는 그것이 황야의 무법자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오디세이에서 어떤 점을 따왔는지는 설명이 없이 그저 오디세이에 나온다고만 알려주고 있다. 여기서 노바디는 무감각하고 무관심, 나태함을 동반한 과소주의적 비쥬얼을 보인다. 이름 없는 남자는 실존적 이방인으로 사회 집단에 통합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한 곳에 머물거나 공동체의 일원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의 내용도 마을의 두 세력 사이를 오고 가며 자신을 돈 몇 푼에 팔아넘기는 게임을 한다. 이는 사회적, 경제적, 이념적인 당파에 반대하는 개인적인 반항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노바디는 기독교적 이미지 안에 있어서 영화 곳곳에서 종교적으로 해석될만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사실 이 영화와 관련해서 영화 평도 많이 봐왔는데 노바디를 종교적으로 해석한 것은 처음이라 신선하다.


속편인 석양의 무법자는 무법자 3부작 중 상대적으로 평이 나쁜데 반대로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좋은놈, 나쁜놈, 추한놈일 것이다. 이 영화 놈놈놈에선 곳곳에 전쟁과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세 명이 찾고 있는 보물은 애초에 남군의 군자금이고, 보물을 찾기 위해 전쟁 속으로 뛰어들기도 하고, 그 속에서 의미없이 죽어가는 군사들 대신 다리를 폭파하는 임무를 맡기도 한다. 세 명의 쫓고 쫓기는 관계는 군대의 의도치 않은 개입이나 전쟁에 의해 계속 상황이 바뀐다. 이들은 남북전쟁의 전장을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지만 정작 이들에게 전쟁은 배경이 되어줄 뿐이고 세 사람에게는 완전히 남의 전쟁이다. 이들은 전쟁터를 누비면서도 전쟁에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그들 뒤로 의미 없이 싸우며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여주며 병사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고 죽어가는지를 묻는다.


레오네는 놈놈놈으로 달러 3부작을 마무리하고 뒤이어 옛날 옛적 3부작 시리즈를 시작한다. 옛날 옛적 시리즈에서 레오네는 폭력을 은유로 사용하여 정치와 비즈니스 세계 및 폭력 자체를 묘사한다. 그리고 그것을 우화처럼 만들어버렸다. 제목이 옛날 옛적인 것에서도 우화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옛날 옛적 시리즈 중 첫 번째 옛날 옛적 서부는 자본주의에 의해 저물어가는 서부를 그린다. 이 영화의 배경은 변경지대에 대륙 간 횡단철도가 놓이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데 보통 서부영화에서 철도는 신생 국가 미국의 상징이자 이민자와 남북군의 갈등을 봉합하는 숭고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철도가 자본가들이 탄생하고 무법자로 대변되는 서부 시대가 끝날 것임을 암시한다. 기존의 철도의 이미지와는 정 반대로 쓰이는 것이다.


옛날 옛적의 두 번째 영화 옛날 옛적 혁명은 레오네 영화 중 가장 덜 알려졌거나 인기가 적은 작품이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 영화가 그다지 많이 언급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마도 이스트우드나 찰스 브론슨, 헨리 폰다 같은 인기 배우가 나오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고, 영화의 배경 자체가 멕시코 혁명이라는 우리에겐 생소한 외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인 탓도 있을 것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은 무지한 원주민 무법자로 이는 앞선 영화들과 통한다. 또 한 명은 아일랜드 혁명가인데 이 사람을 통해 아일랜드 혁명과 멕시코 혁명을 연결한다. 즉,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멕시코 혁명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혁명까지 알아야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영화를 봤을 때 이런 역사적 사실을 모른채 봐서 영화의 내용이나 레오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하면 그저 반영웅주의, 악당 같은 안티 히어로, 도덕적 정의가 아닌 돈의 정의에 따라 움직이는 쾌남. 이런 이미지들만이 떠오르고 액션장면이 간지나는 그런 영화로만 기억되는데 레오네의 영화에는 훨씬 깊은 함의가 숨어 있었다. 미국식 서부 개척사를 부정하고 백인 우월주의와 영웅주의를 전복한 영화라는 정도는 많이들 알고 있겠지만 책 속에서는 신화적 해석 같은 좀 더 깊이 있고 색다른 분석이 담겨 있어서 레오네 감독과 그의 영화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참고가 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레오네 감독의 영화를 다시 한번 본다면 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많은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 같다. 레오네 감독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고전 영화 팬에게 추천할만한 레오네 평전이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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