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테라피 - 세상은 미쳤지만 멸종하고 싶진 않아
제임스 스튜어트 지음, K 로미 그림, 노지양 옮김 / 윌북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코로나19라는 전세계를 휩쓴 전대미문의 팬데믹 상황으로 도시는 봉쇄되고, 거리두기와 자가격리로 인해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채 집안에 고립되었다. 이런 낯선 상황으로 인해 불안과 우울증, 외로움을 겪게 되는 일명 코로나 블루에 빠지는 사람이 전세계적으로 폭증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정신과적 문제를 가지게 된 것은 꼭 코로나19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이라는 말을 한다. 코로나 이전부터 정신과적 문제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인데 저자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저자는 ADHD 진단을 받은 후 직장을 관두고 친구인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저자 자신도 겪었던 불안과 우울, 외로움, 현대사회의 걱정과 고민 등을 주제로 한 공룡 만화를 SNS에 올리며 세상과 소통하고, 자신과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기 시작했고, 그 만화가 꽤 좋은 평을 받으며 이렇게 책으로까지 나오게 된 것 같다. 이래서 사람 인생은 모르는 거라는 말이 있나보다. [공룡 테라피]는 4컷짜리 만화로 걱정, 고민 많고 우울한 성격의 공룡의 입을 빌려서 어른이 된다는 건, 우울증, 행복, 사랑과 우정, 스트레스·생각 과잉·불안, 일이란 무엇일까, 성공과 실패를 테마로 공감과 격려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왜 하필 공룡이냐는 질문에 멸종한 동물이라는 것에서 뭔가 함축적인 의미나 상징을 읽어내려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은 그냥 일러스트레이터가 공룡을 제일 잘 그리기 때문이라는 심플한 대답을 내놓았다. 공룡 일러스트가 꽤나 귀엽고, 색상도 튀지 않고 차분해서 만화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진정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책의 전체적인 스토리는 걱정고민 많은 보랏빛 공룡이 알을 깨고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해서 걱정고민 많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성장기이다. 공룡이 성장을 하며 매 순간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의문과 생각 등을 4컷짜리 에피소드로 담은 것.


보통 성장기라고 하면 미숙하고 불안한 아이가 여러 에피소드를 거치며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며 마지막엔 훌쩍 커버린 어른이 되는 내면의 성장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내는 게 일반적인데 여기선 불완전한 아이가 불완전한 어른인채로 책을 마무리한다. 굳이 아픔이 치유되고, 내면이 성장하고, 변화를 이끌어내고, 교훈을 얻고, 세상을 알게된다는 따위의 동화같은 억지 해피엔딩은 아니다. 사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 단지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다고 우울증이 사라지거나 하진 않는다. 그냥 우울한 아이는 커서 우울한 어른이 될 뿐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책은 지극히 현실적인 셈이다.


물론 꼭 그런 이유라기보다는 아이의 시각에서부터 어른의 입장에까지, 또 학생과 백수를 거쳐 직장인의 상황에까지 각각의 위치와 여러 상황에서의 우울함과 불안함을 보여주려 하다보니 마지막에는 직장인의 고난과 우울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 것에 불과하지만 오히려 갑자기 우울함을 싹 털어내고 밝고 희망적인 공룡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식의 억지 스토리가 아닌게 더 마음에 든다. 저자는 정신 건강 문제를 있는 그대로 터놓고 말했을 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잠깐이라도 숨통이 트인다는 건데 그래서 책도 해피엔딩으로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거나 하는 스토리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해방구가 되고, 잠시 잠깐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4컷 짜리 만화인데 캐릭터 움직임도 거의 없어서 똑같은 컷을 4컷 모두 복붙해서 그려놓고 대사만 바꿔넣는데 대사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게 이상하게 공감이 가고 울림이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하는 듯하고, 내가 평소 느꼈던 심정을 대사로 치고 있는데 마치 숨겨왔던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느낌이라거나 지금 현재의 속마음을 뭐라고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그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을 정확한 문장으로 나타낸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런 말이었어', '지금 내 기분이 바로 그런 것이었어'와 같은 식의 느낌이다. 일종의 동질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거기서 안도하고 위로를 받게 되는 느낌이다.


별 것 아닌 그림에 몇 마디 없는 대사지만 굉장히 공감되고, 의외로 굉장히 아이디어가 넘치는 내용도 많고, 우울함과 고민 걱정이 많은 사람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고 기막히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어떤 건 아... 하며 나지막히 탄식을 할 정도로 뒷통수를 치는 듯한 내용도 있지만 똑같이 우울증이나 불안감을 안고 살고, 걱정 고민이 많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책에 이렇게까지 공감하지 못 할 수도 있을텐데 개인적으로는 책의 내용 하나하나가 와닿았고, 너무나 만족스럽다. 이 책을 주위 사람에게 선물하며 이게 내 마음이니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그리고 책이 직사각형에 가까운 것도 좋다. 흐트러짐 없이 균형감있게 전부 네 개의 틀 속에 만화가 그려져 있는데 대단한 건 아니겠지만 이런 안정감은 나같은 사람에겐 매우 중요하다. 내용이나 책 자체의 디자인이나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