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오디세이 - 돈과 인간 그리고 은행의 역사, 개정판
차현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경제학을 배우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현재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중앙은행과 은행, 돈을 불가분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여 돈과 은행을 설명하려는 건데 사실 돈은 은행과 중앙은행이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기존의 경제학에서 말하는 내용은 맞지 않다는 의견이다. 금융경제 시스템은 돈이 탄생하고 바로 뒤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필요와 역사의 우연이 뒤섞여 만들어진 것이므로 지금의 관점으로 돈과 은행, 중앙은행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금융경제 시스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기존의 경제학에서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돈과 금융을 살펴봐야 하는데 무엇보다 기존의 경제학 교과서를 넘어서 금융을 이해하는 데 배경이 되는 인류의 역사와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라고 말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지금의 금융경제 시스템이라는 것은 필요와 함께 역사적 사건 속의 우연이 뒤섞여 형성된 것이므로 인류의 역사를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금융 오디세이]는 역사가 시작된 이후 모든 경제 활동의 중심이 된 돈의 탄생에서 출발하여 돈이란 무엇이고 돈의 가치는 무엇인지 돈에 대한 논쟁과 함께 은행은 어디서, 어떤 이유로 생겨나고, 중앙은행은 어떻게 해서 돈을 발행하게 되었는지를 역사와 철학적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책이다. 1부 돈 편에서는 돈이란 무어시고, 돈의 가치는 무엇인지, 권력과 종교가 돈과 만나서 어떻게 역사가 움직여왔는지를 알아보고, 2부 은행 편에서는 은행의 탄생에서부터 어떻게 발전하고 거대한 권력으로 자리잡았는지, 중앙은행의 출범과 은행과의 관계, 은행이 불러온 공항과 공공의 적이 된 뱅커, 은행의 미래 등에 대해 사건의 흐름에 따라 알아본다. 3부 사람 편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나 경제학자 케인스, 전후 피폐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한 최빈국의 대통령 이승만과 독일의 할마르 샤흐트 등 역사적으로 경제에 큰 영향을 끼쳤거나, 역사적 변곡점을 만든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경제를 역사, 철학, 학문적으로 톺아본다.


책에서 말하는 역사적 사건이란 신성모독, 대금업, 군주, 전쟁 등의 흔히 말하는 역사의 추악한 이면으로 돈의 역사란 결국 권력과 탐욕의 역사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흔히 경제학에서는 물질, 교환, 자유시장,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드는 균형 같은 것들이 경제를 이끈다고 가르치지만 실제 역사를 돌아보면 그런 그럴싸한 가치들이 아니라 종교, 정신, 규제, 위기 등이 돈과 은행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은행의 원조는 고대의 대금업자였고, 사람들은 종교에 헌금하고, 교회는 그 헌금을 예금하고 면죄부를 팔았으며 그 돈으로 사람들을 움직였으며 붉은 십자가를 앞세우고 이교도와 싸우는 전사의 이미지를 가진 템플기사단은 현실에서는 금융업자에 가까웠다는 식이다.


이탈리아는 18세기까지도 민족국가를 형성하지 못한 채 여러 도시국가 체제로 유지되었는데 이때는 각 도시마다 사용하는 주화가 달라서 수십가지 주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도시간의 일정 비율을 정해놓고 '리라'라는 가상의 계산단위로 교환하였다고 한다. 중세시대를 다루는 영화를 보다보면 리라란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리라가 원이나 달러 같은 어느 국가의 통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프랑스권에서는 저울을 뜻하는 '리브르'를 계산단위로 썼고, 영국에서의 '파운드'도 무게의 단위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당시의 돈의 가치는 물리적 특성에 의해 결정되고 저울을 통해 심판을 받는다는 생각이 지배했다고 한다. 이런 개념 자체에는 군주나 국가가 끼어들 공간이 없지만 군주가 힘이 있을수록 화폐 문제에서도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화폐는 군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고 한다.


주화의 앞면에 군주의 얼굴을 새겨넣음으로써 군주의 존재감을 화폐제도에 뚜렷하게 명시했고, 그런 이유 때문에 주화의 앞면을 헤드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와 영국간에 벌어진 백년전쟁 초기에 영국의 에드워드 왕자가 프랑스의 군주 장2세를 생포하고 프랑스에 몸값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당시 가치로 어느 정도의 금액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는 영국에 300만 크라운의 보석금을 주기 위해 돈을 새로 찍게 되었는데 그 때 포로로 잡혀있는 장2세의 모습을 말에 탄 늠름한 왕의 이미지로 새겨서 돈을 찍었다고 한다. 그렇게 찍어낸 돈이 '프랑'이라고 한다.


동양의 경우를 보더라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후 도량형을 통일했는데 1관은 10냥, 1냥은 10전. 이런 식으로 무게 단위를 화폐에 적용했다. 돈의 가치가 무게로 평가되는 것은 유럽의 돈의 개념과 비슷하다. 말하자면 동양에서도 화폐 문제에 있어서 국가나 군주의 역할은 제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돈의 가치를 무게로 평가하자 군주들은 돈을 조금씩 긁어내서 물리적 가치를 낮추는 조작인 디베이스먼트를 하기 시작했는데 명목가치와 실제가치가 달라지니 백성들은 분노했지만 군주의 힘이 큰 땐 찍소리도 못하고 불만을 말하지 못했다. 이렇게 돈 그 자체의 가치에는 군주가 끼어들 여지가 크지 않지만 돈을 둘러싼 정치적인 상황에서는 군주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화폐와 군주가 불가분의 관계라고 하는 것 같다.


동로마제국은 이슬람의 도전을 받고 전투를 벌이지만 무참하게 깨졌다. 이에 격분한 교황은 전유럽인의 각성과 대동단결을 외치며 이슬람을 응징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해서 200년간 이어진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1차 십자군 전쟁의 가장 큰 성과는 이슬람에게 빼았겼던 예루살렘을 다시 찾은 것이다. 유럽인들은 오랜만에 되찾은 예루살렘을 성지순례하기 위해 길을 나섰지만 이역만리에서 목숨과 재산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 이때 템플기사단으로 붉은 십자가를 가슴에 달고 성지순례자 보호를 하겠다며 멋지게 등장했다. 사람들은 템플기사단에 열광했고, 땅과 돈을 헌납하며 지지하였다. 덕분에 템플기사단은 '그리스도와 솔로몬 신전의 가난한 기사들'이라는 공식 명칭과는 다르게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예루살렘 점령은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이슬람에게 빼았겼고, 성지순례자의 발길은 끊어지고, 기사들도 예루살렘 본부에서 철수한다. 유럽으로 돌아온 기사들은 새로운 일거리를 찾게 되는데 바로 금융업이었다. 일단 자본금도 빵빵하게 있었고, 성지순례자의 여행에 필요한 물품 보급과 각종 경비를 관리하면서 얻게된 지급결제에 관한 노하우도 있어서 유대인 대금업자처럼 금융업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기사들의 부업은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고, 방대한 조직과 자금력을 가진 존재가 종교의 경계 밖에서 크고 있는 것을 군주들은 불쾌해했고, 결국 이들을 이단이라고 선언하면서 재산을 몰수하고 단원들을 화형에 처했다. 템플기사단 사건은 종교를 표방하고 있지만 그 이면은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권력과 돈이 연루된 사건이었다.


책이 꽤 두껍고, 3부 인물 편은 살짝 지루한 감이 있지만 의외로 잘 읽히고 전체적으로 재미도 있다. 평소 돈의 개념과 가치에 대해 궁금해했는데 역사적으로 돈과 은행, 금융에 대해 살펴보며 경제학에 대해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돈의 역사와 역사 속의 돈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며 움직여왔는지 역사를 경제적 관점으로 살펴보니 기존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익히 알고 있던 고정관념을 벗어나 몰랐던 역사의 뒷 배경을 알게 되는 것도 좋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