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 인간의 잔혹함으로 지옥을 만든 소설
빅토르 위고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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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레미제라블은 장발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장발장 이야기는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왔던 기억이 있는데 도덕시간에 생계형 범죄를 어떻게 볼 것인가 따위의 윤리적 논제로 많이 다루어졌었다. 장발장은 굶고 있는 조카들을 위해 빵 하나 훔쳤다가 빵에 가게 되고, 몇번의 탈옥을 시도하다가 형량이 늘어나 19년을 복역한 후 만기출소한다. 하지만 전과자란 이유로 아무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았고, 미리엘 주교만이 장발장을 사람처럼 대하며 주교관에 머물게 한다. 그러나 장발장은 밤에 주교의 은식기를 훔쳐서 도망치다가 헌병의 불심검문에 걸려 다시 주교관으로 끌려와 현장검증을 하게 되는데 주교는 은식기를 훔친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은촛대까지 주는 퍼포먼스로 장발장을 감화시킨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발장 이야기이다.


이 장발장의 이야기는 아동용 동화나 교과서 등으로 많이 접해본 매우 유명한 내용으로 이게 장발장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이 레미제라블이라는 소설의 하나의 챕터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영화 등을 보고서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챕터의 타이틀은 '장발장'이 아니라 '팡틴'이다. 소설은 팡틴으로 시작하여, 코제트, 마리우스, 장 발장 등으로 챕터가 나뉘어져 있지만 특별히 그 인물들의 시점으로 진행된다거나, 그 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스토리는 아니다. 그리고 소설의 가장 시작은 좀 뜬금없이 미리엘 주교의 소개로 시작된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미리엘 주교의 행동이 모두 담고 있고, 주교의 선한 영향력이 이후의 여러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므로 분량은 적지만 주교의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리엘 주교는 자신의 월급을 대부분 빈민 구제를 위해 사용하고 자신은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한다. 사는 곳도 관사가 아니라 작은 집에 기거하고 있어서 장발장은 그 곳이 주교의 집이란 걸 미처 알지 못할 정도였다. 미리엘 주교의 유일한 사치는 왕고모가 물려준 은식기 셋트로 손님이 오면 은촛대에 불을 밝히고 은식기로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다. 장발장이 문을 두드렸을 때에도 미리엘 주교는 이 은식기로 장발장을 대접한다. 장발장은 빵에서 출소한 이후로 전과자임을 나타내는 신분증 때문에 어디에서도 묶을 수 없었고, 어느 식당에서도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풍천노숙을 하며 120리 길을 걸어온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의 문을 두드리고 스스로 전과자임을 밝혔음에도 음식과 잘 곳을 내어주는 주교를 이해하지 못한다.


의심하는 장발장을 맞아준 주교는 장발장의 이름을 알고 있다며 '나의 형제'가 이름이라고 말한다. 종교인이라서 그런지 미리엘 주교도 구라빨이 좋은 편이다. 그리고 헌병에게 끌려온 장발장에게 은촛대까지 내주는 퍼포먼스도 펼치지만 당장 장발장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한다. 장발장은 인생의 가장 좋을 시절은 감옥에서 다 보내고 악밖에 안 남은 인간이다. 전과자인 자신을 보는 세상의 눈은 차갑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준 주교의 은식기를 훔치는 건 정당화할 수 없다. 이러니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은촛대까지 얻어서 돌아가면서 동네 꼬꼬마가 흘린 잔돈푼까지 삥을 뜯는다. 이쯤되면 그야말로 쌩양아치라고 해도 된다.


세상에 분노하고 악에 받혀 살아가던 쌩양아치 장발장은 뒤늦게 주교의 사랑에 감복받아 새사람이 되기로 결심하고 신분세탁을 한다. 법과 제도에 묶여서 전과자라는 감옥에 갇혀 살아가야 하는 인생에서 탈옥하여 새로운 이름과 직업,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기로 한 것이다. 좋게 말하면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는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또 다시 법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착하게 살기 위해 법을 어기는 아이러니. 다시 태어난 장발장은 마들렌 시장으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구 장발장, 신 마들렌은 과거 주교가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간다. 미리엘 주교가 밝힌 촛불 하나가 또 다른 촛불을 밝히고 그렇게 세상을 밝게 만들어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리엘 주교가 장발장에게 주었던 은촛대는 상징성을 가진다. 이타심과 무조건적인 사랑은 은촛대를 계기로 장발장에게 전해졌고, 장발장은 그 은촛대를 평생 간직하다가 마지막 순간 코제트와 마리우스에게 건낸다. 그렇게 사랑은 다시 돌고 돌아 세상으로 번져가게 된다.


장발장은 주교가 준 은식기를 발판으로 신분 세탁을 하여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었지만 누구나 두번째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아 출신의 직공 팡틴은 자신의 외모를 질투한 여직공에 의해 직장에서 짤리자 딸 코제트의 양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파는 거리의 매춘부 신세로 전락한다. 뒤늦게 장발장의 도움을 받지만 팡틴은 장발장에게 자신의 딸 코제트를 부탁하고 눈을 감는다. 그야말로 고통과 슬픔만이 가득찬 인생이었다. 팡틴의 딸 코제트의 삶 역시 순탄치만은 않았다. 팡틴은 아버지가 없는 사생아로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딸 코제트를 여관을 하는 테나르디에 부부에게 맡기고 돌아오지 않았다. 팡틴은 이 부부에게 양육비를 계속 보냈지만 여관집 부부는 5살의 어린 팡틴에게 온갖 잡일을 시키며 가혹하게 부려먹는다. 책의 표지에도 나오는 자신의 키보다 몇배나 더 큰 빗자루로 청소를 하고 있는 코제트의 모습은 이 꼬꼬마가 얼마나 혹독하게 일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모습이다. 코제트는 돌아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매일같이 힘들게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레 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들이란 의미로 소설 속의 주요 인물들인 장발장과 팡틴, 코제트의 인생은 비참하기 짝이 없다. 장발장이 19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풀려났을 때에도 자유가 아니라 또다른 감옥에 갇혀있는 것 같았고, 팡틴과 코제트 역시 희망없는 지옥에 갇혀서 바닥까지 떨어져 비참한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들의 모습은 당시 프랑스의 하층민 계층의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이었을 것이다. 극심한 굶주림과 신분제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못살겠다 갈아보자란 기치로 수많은 팡틴과 코제트는 시민 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장발장은 주교의 도움으로 새로운 인생을 걷게 되지만 프랑스의 시민들은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레미제라블은 영화와 뮤지컬이 워낙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소설보다 영화나 뮤지컬로 접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영화에 삽입된 노래가 매우 유명하고 크게 히트를 해서 그 음악을 들으면 그 노래가 나오던 영화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데 소설을 읽다가도 영화 속에서 그 노래들이 나오는 장면과 겹치는 부분에서는 책을 읽으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그 음악의 멜로디를 마치 배경음악처럼 떠올리며 책을 읽어나갈 수 있었다. 비참한 소시민들의 삶과 혁명이라는 소설 속의 두 가지 큰 축이 우리의 역사에 오버랩되며 조금 더 생동감있는 이야기로 다가온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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