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 인간의 욕망이 갖는 부의 양면성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서상원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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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츠비를 처음 접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였다.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극찬했고 그로 인해 위대한 개츠비를 읽게 된 사람이 꽤 많았다고 전해진다. 개인적으로도 노르웨이 숲에서 출발하여 개츠비에 도착한 경우인데 가장 사랑하는 소설 노르웨이 숲을 쓴 가장 사랑하는 작가의 극찬을 받은 소설이니 무조건 좋아야한다는 선입견으로 게츠비를 영접했으니 당연히 좋을 수 밖에 없었다. 하루키 옹이 빈말을 했을리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대학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이 소설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첫 직장에 들어가서 첫 월급을 받았을 때 기념으로 개츠비를 샀고, 한동안 사람들에게 개츠비 소설을 사서 선물로 마구 뿌리고 다녔었다. 그때 첫월급으로 샀던 기념비적인 그 책도 어디로가 사라져버리고 개츠비를 마지막으로 읽었던 것도 벌써 꽤 되었다.


그동안 위대한 개츠비는 굉장히 애뜻한 사랑이야기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다시 만난 개츠비는 결코 그런 선하기만 한 순수한 사랑꾼은 아니었다. 개츠비는 금주령이 내려진 1920년대 미국에서 밀주를 유통시키는 등 불법 행위로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졸부다. 그렇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매일 밤 화려한 파티를 벌려 수백명의 사람을 불러들여 호화로운 상류층의 삶을 즐기고 있다. 파티에 참석한 상류층 사람들은 금주법이 시행되는 중이었지만 샴페인을 마시며 음주파티를 즐긴다. 이건 마치 코로나로 영업제한이 시행되고 있는 중에 강남 유흥주점에서 숨어서 접대부를 불러놓고 양주를 마시는 한량들처럼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돈 많으면 법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모양이다.


개츠비가 매일밤 잔치를 여는 것은 옆집에 사는 데이지가 보고 싶어서 파티를 열면 호화로운 상류층 파티를 좋아하는 데이지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데이지는 탐의 아내였는데 말하자면 개츠비는 다른 남자의 아내를 넘보는 불한당이었던 것이다. 남의 아내를 대놓고 만나거나 들이댈 수는 없으니 파티를 구실삼아 잔치를 열면 데이지가 잔치에 참석해 올지도 모르고 그렇게라도 한번 데이지를 보고 싶은 마음에 매일 밤 그렇게 돈을 써재꼈던 것. 돈이 많으니 들이대는 것도 통크게 들이댄다. 그리고 책의 화자인 닉에게 호의를 배풀고, 친해지고자 한 것도 닉이 데이지의 사촌이고, 평소 데이지와 친하게 지낸다는 것을 알고 접근한 것이었다. 돈 많은 사람이 이유없이 친한척 하는 것은 다 무슨 사정이 있다. 부자는 이유없이 친절을 베풀지 않는다.


사실 개츠비가 이렇게까지 데이지에 집착하는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데이지는 한때 개츠비와 썸을 타던 사이였는데 개츠비는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흙수저였고 데이지는 명문가 금수저여서 그 둘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개츠비는 자신이 흙수저라서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불법적인 일까지 해가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그렇게 개처럼 벌어서 갑부가 된 개츠비는 알마니 수트에 외제차를 타고 금의환향, 데이지 집 근처 강북 한강변의 대저택을 인수하여 거기서 파티를 벌렸던 것이다. 파티에 데이지가 와주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헤어진 여자를 잊지 못하고 성공해서 다시 여자 앞에 짠하고 나타나는 것은 첫사랑에 실패한 모든 남자들의 꿈이자 판타지이다.


이것은 비단 남자들만의 판타지가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판타지이다.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도 여전히 여자를 잊지 못해 나중에 성공해서 멋지게 여자 앞에 다시 나타난 남자. 그렇게 돈을 벌고 성공을 한 것도 여자 앞에 당당히 나서기 위해서고 그렇게 평생을 나만 바라보는 남자가 있다는 것은 여자가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자들에게도 그런 남자는 판타지이다. 데이지는 개츠비가 아니라 개츠비의 비싼 셔츠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 다시 돌아온이 아니라 성공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다. 거지꼴을 한 이몽룡이 장원급제를 해서 어사가 되어 돌아온 것이 아니라 정말로 거지가 되서 온 것이라면 춘향이는 예전과 똑같이 이몽룡을 사랑했을까? 사랑이란 화학적 반응에 상대의 재산, 옷차림, 지위 따위가 영향을 주지 않을까?


데이지는 속물적이다. 남편인 탐이 바람을 피우고 있고, 그 사실을 주위 사람들이 다 아는데도 데이지는 일부로 그것을 모른척하며 현실에서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자신은 남편의 재산으로 안락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살아간다. 어차피 사랑없는 결혼생활이라 그냥 돈이나 쓰며 상류층의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다. 그런데 그런 데이지가 돈이 많아진 개츠비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데이지가 개츠비의 재력에 넘어가지 않았던 것도 탐 역시 굉장한 갑부였기 때문이다. 데이지의 남편 탐은 금수저에 일류대 출신의 몸도 좋은 엄친아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쓰는 데이지에게는 탐은 트로피 남편으로 더할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만약 데이지가 현재 찢어지게 가난해서 단칸방에서 피자 박스나 접고, 인형 눈깔을 붙이며 겨우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상태였다면 개츠비가 얼마면 돼? 얼마면 되겠냐? 라고 물었을 때 바로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별로 아쉬울 것이 없이 공주처럼 살고 있고, 오히려 남편 탐의 재산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깨끗한 돈인데 반해 개츠비는 더러운 재산이다. 이왕이면 깨끗한 게 좋지 않을까? 


개츠비는 그야말로 풍족했던 미국의 버블이었던 광란의 1920년를 살았던 상류층들의 추악한 본질을 잘 보여준다. 개츠비는 불법적인 사업으로 돈을 번 범법자이고, 데이지는 돈 때문에 결혼을 하고 사랑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톰은 친구의 아내와 불륜을 저지르고, 톰의 친구는 자신의 아내와 바람 난 개츠비(사실은 톰이지만)를 죽이고 자살한다. 책을 읽으면서 현재 21세기 한국의 상황과 자꾸 대비되었는데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한 상류층의 호화로운 삶, 재산싸움, 불륜, 음모, 살인 이런 것들이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펜트하우스를 연상시켰다. 개츠비는 결국 1920년대 판 미국의 막장 드라마였던 것이다.


예전에 개츠비를 읽었을 때는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이번에는 책을 읽는 동안 줄곧 머리 속에서 한가지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도대체 개츠비가 왜 위대하다는 것인가? 무엇이, 왜 위대하다는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 생겼다. 책을 다 읽어도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전히 모호하다. 앞서 말한대로 개츠비는 금주법 시대에 밀주를 불법으로 유통하는 밀수업자에 조폭 연루설까지 도는 뒤가 구린 인물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조폭과 연루되어 불법적인 일로 검은 돈을 버는 사짜들이 많은데 이런 인물을 위대하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지고지순한 사랑 하나 남는다. 단순히 사랑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을 하는 것인가?


개츠비는 어쨌거나 성공한 인생이다. 돈도 많이 벌고, 5년전 헤어졌던 여자 앞에 외제차 끌고 떵떵거리며 나타난다는 판타지를 실현한 인물이다. 그러나 다시 만난 데이지는 과거의 기억속 모습이 아니었고 개츠비는 순간 실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현실은 언제나 환상을 넘지 못하는 법이다. 개츠비가 사랑한 건 데이지가 아니라 그 당시 이루어지지 못하고 헤어져야만 했던 그 상황속의 데이지였고 그 시간들이었다.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꽤 있다. 정말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어지지 못한,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환상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마치 자신이 비운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개츠비는 그럼에도 데이지에게 마음을 주고, 데이지 대신 자신이 뺑소니를 쳤다고 죄를 덮어쓰기까지 한다. 그리고는 상간녀의 남편의 총에 맞아 죽게 된다.


그런데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는다. 개츠비의 아버지와 닉과 경찰과 기자들만이 찾아왔을 뿐 그의 파티에 참석했던 수많은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같이 돈을 써도 정작 정승집 개가 죽으면 사람이 찾아오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안 온다는 우리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 심지어 데이지도 개츠비의 장례식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자기 대신 뺑소니의 죄를 뒤집어쓰고 죽었는데 데이지는 장례식에 참석하기는 커녕 남편과 여행을 떠나기 위해 가방을 싸고 있다. 건축학개론의 첫사랑 수지처럼 데이지도 천하의 쌍년이라고 불러야 하는걸까?


돈을 버는 것, 사랑을 쟁취하는 것, 멋쮜게 인생을 즐기는 것. 이런 것들이 아메리카 드림이라면 개츠비의 죽음은 결국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것이 얼마나 추악하고 속물적인 것인지 그리고 그 아메리카 드림은 비극적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펜트하우스 같은 막장의 1920년대를 나름 순수하고 사랑 하나 보고 인생을 살아간 사랑꾼이었던 개츠비를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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