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하는 고양이 - 새로운 일본의 이해
정순분 지음 / 소명출판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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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유행이지만 90년대만 해도 단연코 사람들의 관심은 온통 일본에 집중되어 있었다.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한 일본의 영향력은 세계로 뻗어나갔고, 일본을 부정하건 수용하건 어떠한 형태로건 일본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당시는 일본의 대중문화가 한국보다 앞서고, 일본문화, 패션 등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힙한 것으로 인식되어서 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도 높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일본과의 민간교류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일본 대중문화는 금지되었으며, 인터넷도 활발하게 보급되지 않았던터라 일본이라는 나라와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접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일본에 관심은 많으나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통로가 없다보니 일본을 다루는 책들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 이규형의 일본을 알고싶다, JJ가 온다, 김지룡의 나는 일본문화가 재미있다, 서현섭의 일본은 있다 따위가 그것이다.


나 역시도 어릴 때 일본과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그런 책들을 굉장히 많이 읽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일방적이거나 편향되고, 극단적이며, 심도있게 일본이나 일본의 문화에 대해 분석하기 보다는 자극적이거나 흥미 위주의 내용을 소개하는데 그쳤던 것 같다. 대부분이 저자가 일본 생활을 하며 겪은 짧막한 에피소드를 소개하거나, 흥미본위의 인상비평 등으로 일본은 이렇다는 식으로 단정적으로 말하는 형식이었는데 그때는 일본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라 거기 소개된 내용들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일본의 이미지와 인식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건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난 후였다. 지금도 일본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많아서 일본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은 큰데 예전처럼 일방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벗어나서 제대로 된 이해와 분석으로 일본의 다양한 측면을 보게 되길 바란다.


[소확행하는 고양이: 새로운 일본의 이해]는 일본 사회, 일본 문화, 일본인이라는 3가지 주제로 일본의 본질을 자세하게 해설하고, 30가지 항목을 통해 일본의 사회와 문화, 일본인을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책을 접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부분은 지난 90년대 수준에 머물렀던 일본에 대한 여러 담론을 지금 현재 시점의 시대정신을 담아 이야기함으로서 그간의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거란 기대였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지금의 4050을 분석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재의 MZ세대를 이해하려하면 갭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세대가 바뀐만큼 사회와 문화는 급격하게 변화하여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에 새로운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일본 사회를 주도하는 MZ세대의 이야기를 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단 재미있는 것은 과거에 어느 책에서나 마치 일본인에 대한 대단한 비밀을 알려준다는 식으로 여러 챕터를 할애하여 설명하던 일본인의 [혼네와 타테마에]라는 부분이 여기에도 어김없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타인을 침해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현상을 메이와쿠 기피 문화라고 하는데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더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 정신적 배경이 된다. 일본은 예로부터 자연재해가 많다보니 단합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개인의 일탈은 전체에 큰 위험을 가져올 수도 있어서 서로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게 되었다는데 반대로 집단을 우선시하고, 개인을 억제하는 집단주의가 심해서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집단 따돌림을 하기도 하는 조직 문화도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것 같다.


개인의 감정보다는 합리주의, 이익 우선주의를 추구하고, 집단을 우선시하다보니 인간의 기본 감정인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데도 절제를 한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자기에게 닥친 불행을 표출하는 것보다 그 불행으로 인해 남들이 자기를 걱정하고 신경 써주는 것을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정서라서 이해는 잘 안 가지만 일본인은 자신이 속한 소집단에 동화되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예의를 몸에 익히며 소위 '공기를 읽는 사람'이 되어 간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분위기 파악하는, 눈치를 살피는 사람 정도의 의미가 될 것 같다. 평소 일상생활에서조차 욕구와 속마음을 억누르고 있다보니 그런 억눌린 욕구를 가상의 세계인 서브컬처로 풀어내게 된다고 한다. 오타쿠 문화와 성문화, 예능 방송 등이 과도할 정도로 발달한 이유도 그런 것이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이다.


과거부터 많이 언급이 되었던 또 하나의 코드가 바로 일본의 오타쿠 문화인데 여기에서도 여러 가지 테마로 이 오타쿠 문화와 일본의 서브컬처를 소개하고 있다. 통칭 아니메로 불리는 제페니메이션과 게임은 전 세계에 널리 퍼진 대표적인 일본 문화이다. 흔히 일본의 문화는 외국의 문화를 수용하지 않아 문화가 단절되었다고 말해지는데, 이 때문에 잘라파고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이 K-pop이나 드라마, 영화로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을 때에도, 일본의 대중문화는 오직 일본 국내 시장만을 목표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런데 전세계 보급을 목표로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만들어 지는 미국의 에니메이션과는 다르게 제페니메이션은 자국민들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소재나 스토리 등에 제약이 덜하고, 하고 싶은 대로 만들 수가 있어서 역으로 그러한 점이 자신만의 독특한 색을 가진 경쟁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가장 일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캐치플레이즈에 어울리게 발전해온 것이다.


오타쿠 문화를 설명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오타쿠의 성지 아키하바라이다. 아키하바라의 소개는 과거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었다. 게임과 아니메는 일본을 이야기하면서 빠트릴 수가 없다. 바로 어제 일본 올림픽이 개막했는데 코로나와 여러가지 재정 문제 등으로 최초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축소되어 개최가 되었는데 원안대로라면 마리오 같은 게임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만화, 아니메, 게임, 아이돌 문화라는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적 특징을 기반으로 형성된 아키하바라는 일본 여행 시 반드시 가봐야 하는 코스에 항상 포함되었는데 그만큼 일본의 서브컬처 문화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뜻도 되겠다. 세계 유일무이한 독특함으로 거대한 유통 채널이자 최고의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아키하바라. 버블 경제가 붕괴된 후에도 오타쿠로 불리는 마니아 계층은 꾸준한 소비패턴을 유지해왔고, 일본 정부는 문화 콘텐츠 산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강화하고 있다고 한다. 과연 오타쿠의 나라라고 불릴만 하다.


오타쿠가 탄생한 것에는 일본 특유의 장인문화와 유사한 정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극단까지 밀어부치는 행위가 전통을 계승하고나 하는 성향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양의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전통을 계승하고 생활문화나 예술 분야, 정치·경제 분야에서도 옛것을 고수하는 경향이 많다. 여기서 세습 문화가 탄생하는데 관직이 세습되는 정치 형태는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 세습 문화는 정치계 뿐만 아니라 경제, 학문, 예술 등 사회 전반에서 널리 퍼져있는데 직업에 대한 편견이 적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장인 정신이 21세기의 빠른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전통에만 매달리며 한 가지에 깊게 매진하려는 자세는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의 니즈를 따라가는데는 방해가 될 뿐이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들 중 많은 것들이 과거 90년대의 일본을 다룬 책의 내용과 비슷하게 겹친다.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 등의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서 살펴본 혼테와 타테마에, 장인정신, 서브컬쳐 등의 테마는 90년대에도 가장 중요한 키워드였고, 21세기 현재에도 일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키워드로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나 변화가 적은 일본 특유의 정서 때문에 시대가 바뀌었지만 일본과 일본인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키워드는 그다지 바뀌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일본 역시 사람 사는 곳인 만큼 사회, 문화, 사람 여러면에서 과거와 달라진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과거와 같은 키워드라도 여기서는 시간이 흐른만큼 현재 시점에 맞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담론이 펼쳐진다. 새로운 예시, 새로운 분석, 새로운 담론. 여러가지 다양한 항목을 통해 일본의 사회와 문화, 일본인의 본질을 살펴보며 이해하기 힘든 일본에 대한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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