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블로지 - 히어로 만화에서 인문학을 배우다
김세리 지음 / 하이픈 / 2021년 7월
평점 :

상업적이고 오락적인 슈퍼히어로라는 영화장르를 신화와 철학으로 읽어내며 인문학적으로 고찰한다는 설정은 흥미롭고 재미있다. 하지만 그것이 완전히 새로운 시도는 아니다. 애초에 마블의 히어로에는 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있다보니 마블영화를 신화나 철학적 맥락으로 읽어내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존에는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한 편씩 단편적으로 영화를 분석하고 비평하는 것에 그쳤는데 [마블로지]는 마블 영화를 통털어서 거의 모든 영화 속 캐릭터를 신화적인 상징으로 읽어내고, 하나의 영화를 여러 등장 캐릭터의 시각에서 철학적으로 풀어가거나 소위 마블 유니버스라 불리는 일련의 마블 히어로 영화들이 하나씩 출시될 때마다 슈퍼히어로의 위치와 영화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정의'라는 개념은 어떻게 변화해 갔는지를 인문학적으로 풀어간다.
지금이야 마블이 대세지만 마블 이전 태초에 DC가 있었다. 1938년 슈퍼맨이 처음 등장하며 슈퍼히어로의 시대가 막을 열었다. 1년 뒤 배트맨이라는 또 하나의 불멸의 영웅이 나타났고 그 후로 원더우먼, 아쿠아맨 같은 DC 히어로가 차례로 등장하며 슈퍼히어로의 인기가 높아지며 코믹스의 황금시대가 도래했다. 마블은 DC의 후발주자로 시작했지만 캡틴 아메리카 등의 히어로를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고, DC와 마블은 경쟁관계 속에서 발전해오게 된다. 코믹스의 양대 메이저 브랜드인 마블과 DC는 기본적으로 신화의 이야기로 마블은 신이 된 인간의 이야기이고, DC는 지구로 내려온 신들의 이야기다. 각각 토르와 배트맨 정도만 예외로 하면 이런 공식이 딱 들어맞는다. 이렇다보니 DC와 마블 캐릭터를 신화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아이언맨은 미국의 현실을 상징하는 히어로이며, 미국 정부의 행태를 대변한다고도 한다. 시대에 따라 코믹스의 설정이 조금씩 바뀌는데 1963년 원작에서는 토니 스타크가 베트남전에서 부상을 당하지만 1990년대에는 1차 걸프전이고, 2000년대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으로 부상을 당하는 것으로 바뀐다. 이것은 당시의 미국 국내외 상황을 감안한 시대보정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을 거치며 미국의 현실을 대표하는 아이언맨이 미국의 적국들로 인해 심장을 다친다는 공통된 맥락으로 그들로 인해 미국 정부의 중심부가 타격을 받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언맨에 담겨있는 신화적 상징은 한 가지가 아니라 복합적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여러 공학자들이 나오는데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와 이카루스의 날개를 개발한 다이달로스가 아이언맨의 기원이 되었고, 말하는 헤라 여신상은 자비스의 모티브가 된 것 같다. 못 만드는 것이 없는 만능의 헤파이스토스는 아이언맨 뿐만 아니라 앤트맨 행크 핌이나 판타스틱4의 리드 리처드에도 모티브를 주고 있다. 코믹스의 천재 발명가는 모두 헤파이스토스에서 가져온 설정이라고 보면 된다는 뜻. 하지만 외형적/성명학적으로는 부아고베의 소설 철가면이 아이언맨과 가장 잘 부합된다. 소설의 제목인 아이언 마스크는 아이언맨을 바로 연상시킨다.
팀의 구심점이 되는 캡틴 아메리카는 비실비실한 약골이었는데 슈퍼솔저의 약물주입으로 강한 히어로로 거듭난다. 온몸을 성조기로 두르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이상을 상징화한 인물로 슈퍼히어로의 정의와 윤리관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다. 캡틴의 가장 큰 무기는 애국심과 정의감, 선한 마음, 의지라고 하겠다. 캡틴의 신화적 기원은 방패를 가지고 있다는 점 때문에 페르세우스를 연상시킨다. 페르세우스는 방패를 이용해 메두사의 목을 벤 영웅이다. 캡틴은 레드스컬이 이끄는 히드라와 싸우는데 히드라는 머리가 아홉개 달린 괴물로 메두사와 비슷한 이미지를 가진다.
마블 영화 중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좋아하는데 이 영화는 딱히 신화적인 맥락으로 해석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에는 가오갤을 신화적 하이브리드 유전자로 캐릭터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만큼 신과 인간의 혼혈, 하이브리드가 많이 나오는 것도 없다. 제우스는 천하의 바람둥이에 강간범으로 인간 여성을 수없이 강간하고 반신반인의 자녀를 많이 낳았는데 피터 퀼은 반은 지구인, 반은 외계인인 하이브리드이다. 라쿤을 닮은 로켓도 유전자 조작으로 인간과 동물의 형태로 태어났으며 그루트도 나무의 인간의 모습을 한 하이브리드의 모습이다. 신화 속의 반인반신들이 그러하듯 가오갤 맴버들은 어느 한 곳에 소속되지 못하고 상처와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 그리고 퀼은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모습도 보이는데 이 역시 신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내용이다.
토니 스타크가 만들어낸 비전은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 발견할 수 있고, 퀵 실버는 발에 날개 달린 신발을 신고 엄청난 속도로 지상과 천상을 오가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떠올리게 한다. 활쏘기 능력갑인 호크아이는 아폴론이나 로빈후드 이야기와 맥이 닿아 있다. 토르와 로키는 북유럽 신화에서 따온 것이고, 블랙팬서는 기존에 없던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새로운 신화로 만들어졌다. 1960년대에 처음 선보인 이런 신화적 설정은 아프로퓨처리즘이라 불리는데 흑인 고유 문화 내에서 아프리카 대륙의 미래를 전망하려는 하나의 시도라고 한다. 책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블랙팬서는 라이언 킹의 블랙워싱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히어로 영화를 신화적, 철학적으로 읽어낸다고 하면 보통 슈퍼맨을 예수의 상징으로, 헐크를 인간의 이중성으로 엑스맨을 성소수자들의 억압 같은 것으로 말하는 정도인데 마블의 모든 캐릭터를 신화나 문화적 요소로 분석하고, 철학적 의미를 가져와서 분석해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다양한 측면에서 각각의 캐릭터들을 분석하고 문화적 코드를 읽어낼 수 있어서 무척 재미있다. 캡틴마블이나 블랙위도우 같은 경우는 신화적으로 해석하기 위해 억지로 끼워맞춘 것 같은 느낌도 들지만 그럼에도 가오갤이나 비전 같은 캐릭터의 신화적 해석은 꽤 흥미롭고 볼만하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