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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는 삼국지 - 중원을 차지하려는 영웅호걸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ㅣ 교양으로 읽는 시리즈
나관중 지음, 장순필 옮김 / 탐나는책 / 2021년 5월
평점 :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 인생을 논하지 말고,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충 이런 식의 내용인데 그만큼 삼국지는 세상을 꿰뚫어보는 눈을 틔여주고, 그 속에서 온갖 권모술수와 처세술을 배울 수 있어서 인생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므로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는 의미인 것 같다.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가 많다보니 인생의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지혜를 깨달을 수도 있다는데 그래서 삼국지는 처세와 생존의 지침서로 오랜 시간동안 사랑받아 왔다. 삶의 지혜 같은 것을 얻고 인간사를 배울 수 있다는 점 이외에도 장문의 고전을 읽다보면 논술적인 사고도 늘어나게 된다는 이유로 삼국지가 논술 교재처럼 읽히기도 했었다.
하지만 삼국지는 그 분량이 너무 방대해서 보통 기본이 10권 이상이고, 등장인물과 배경이 되는 장소도 너무 많다보니 그런걸 전부 기억하면서 읽는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그런 기본적인 고유명사들을 어느 정도는 기억하고 책을 읽어야 내용이 이해되지 누가 누군지도 모르고,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채 읽으면 재미있다고 느끼기 보다는 지루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외로 삼국지 완독이 쉽지가 않은 것 같다. 또 삼국지는 약간 무협지적인 요소가 강하고, 그것이 삼국지의 큰 매력인데 그런 무협지스러운 내용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욱 흥미를 가지기가 어렵다. 약간 진입장벽이 있는 작품이라고 하겠다.
솔직히 삼국지를 읽었다고 인생의 지혜를 배우게 될까 싶은 생각도 드는데 꼭 그런 차원이 아니더라도 의외로 삼국지에서 유래한 고사성어도 많고, 여러 미디어에서 삼국지의 인물이나 장면 등이 많이 인용되기도 하기 때문에 삼국지의 내용을 알아두면 은근 이래저래 유용하다. 삼고초려, 읍참마속, 백미, 계륵, 도원결의, 고육지책, 수어지교 같은 고사성어는 특히 정치권 뉴스를 보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인터넷을 하다보면 방구석 여포와 같은 삼국지 관련 밈과 짤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삼국지는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이나 논술 교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몰라도 크게 문제될 건 없지만 여러 대중문화에 광범이하게 파고든 컨텐츠인만큼 알면 아는만큼 즐길거리가 많은 것이 바로 삼국지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삼국지는 분량이 너무 많아서 교양으로 한번 읽어보려고 생각하는 사람 입장에선 읽기가 굉장히 부담스러운데 [교양으로 읽는 삼국지]는 삼국지 입문자에게 알맞은 삼국지 요약본이다. 10권이나 되는 방대한 내용을 주요 인물과 주요 사건들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요약하여 삼국지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은 실제 역사적인 소위 정사 삼국지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나관중이 픽션을 가미한 삼국지연의를 다루고 있어서 소설의 재구성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10권이나 되는 분량을 어떻게 한 권에 모두 담았냐고 궁금해한다면 삼국지는 전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많기 때문에 전투의 자세한 묘사만 생략해도 기본 줄거리는 살리면서도 상당히 많이 압축을 할 수 있다. 반대로 말하면 이 책에서는 삼국지만의 재미인 전투, 전쟁의 묘사가 없어서 조금 아쉽다는 뜻도 되겠다.
삼국지연의가 그러하듯 이 책 역시 기본적으로 유비와 제갈량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애초에 연의 자체가 유관장 삼형제와 제갈량이 메인 캐릭터이기 때문에 촉나라, 유비 시점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그래서 여기서도 유관장 세 사람이 도원결의를 맺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출발한다. 보통은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십상시와 황건당의 난부터 상세히 깔고 가는 게 보통인데 여기서는 처음 도원결의 장에 포함시켜 설명을 해버린다. 굉장히 축약되긴 했지만 있을 건 다 있는 셈. 그리고 의외로 요약이 잘 되어 있어서 전체적인 배경과 내용을 이해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다. 유비 중심으로 진행되는 연의를 따라가다보니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유비가 빠진 관도대전과 유비와 공명 사후의 삼국시대 후반부의 내용은 조금 부실한 것도 사실. 하지만 다른 책에 비하면 강유의 활약이나 사마씨가 삼국을 통일하는 후반부의 파트도 조금 충실하게 나와있다. 특히 후반부의 사마씨가 진나라를 세우는 과정은 보통 요약본에서는 처음 십상시와 황건적 분량처럼 한두페이지로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서는 적어도 맥락을 잡을 수 있는 수준으로 정리해놓았다
대규모의 전쟁 장면이 삼국지의 꽃이고 그게 빅재미이긴 하지만 디테일한 전쟁 묘사에 빠지다보면 종종 전체적인 줄거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참 신나게 전쟁 장면을 보는 것까진 좋은데 그러다보면 큰 흐름은 놓치게 된다. 가령 적벽대전 같은 경우는 원래는 촉의 유비와 오의 손권이 동맹을 맺고 위의 조조의 80만 대군과 싸워 이겼다는 간략한 내용인데 연의에는 제갈량이 화살 백만개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황개의 고육지책, 방통의 연환계, 제갈량의 동남풍이 크리티컬을 터트리며 80만 대군이 모조리 불타죽는다는 내용과 이후 화용도에서 관우가 조조를 놓아주는 장면까지 굉장히 길게 이어진다. 물론 소설적으로야 재미있지만 너무 내용이 길다보니 전체 스토리에서는 정체되는 느낌도 분명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스토리 진행에는 꼭 필요하지 않은 전쟁의 묘사 등을 줄이면서 소설의 재미적인 측면은 사라졌지만 군더더기가 없어서 오히려 내용전달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효율적이다.
보통 삼국지 소설이라고 하면 역시 이문열의 삼국지가 가장 유명한데 이문열 버전은 평역으로 작가 개인의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있다. 인물과 사건 등을 작가 나름대로 분석하고 그것을 설명하는 형태로 진행되기 때문에 삼국지를 처음 읽는 사람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작가의 생각대로 인물과 사건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단점도 있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평역은 장단점이 있는 셈인데 이 책은 그런 고정관점을 주입할 수 있는 평가는 거세되고 원래 나관중이 쓴 원작 그대로의 내용만으로 진행된다. 좋게 보자면 작가의 간섭없이 오롯이 자신만의 판단과 기준으로 인물과 사건을 해석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내용을 짧게 줄여놓았는데 설명도 같이 줄어드는 셈이라서 아무래도 전체적으로는 정보가 부족하여 사건의 정확한 전후관계와 인물에 대한 평가 등이 조금 설익을 수 밖에 없는 단점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
삼국지를 한번 읽어는 보고 싶지만 너무 많은 분량의 압박과 특별히 전쟁이나 전투를 좋아하지 않는 취향 때문에 선듯 도전하지 못하는 삼국지 초심자라면 가볍게 삼국지의 맥락과 대략적인 느낌을 느껴볼 수 있어서 삼국지 입문으로 적당할 것 같다. 사실 교양인문으로 삼국지를 접하려는 사람에겐 전투의 디테일한 묘사 등은 그다지 교양에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그런 내용을 빼버리고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 인물의 성격과 주요 사건들로 핵심만 짚어서 보면 꼭 필요한 교양으로서의 삼국지의 내용은 다 알 수 있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분명 재미적인 측면은 상당히 떨어지므로 만약 이 책으로 삼국지에 관심이 생기고 좀 더 깊게 알고 싶다면 그때가서 장편 소설에 도전하면 될 것 같다. 아니면 교양으로서만 삼국지를 알고 싶다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 한권이면 충분히 필요한 내용은 전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