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의 기억, 시네마 명언 1000 - 영화로 보는 인문학 여행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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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 문학, 연극, 음악 등 예술로 취급받는 수많은 문화가 있지만 그중 가장 대중적인 것이 영화일 것이다. 영화는 회화나 클래식처럼 관련된 지식이 없어도 편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으며, 접근성도 좋고, 다양한 장르가 있어서 자신의 취향대로 골라서 취할 수도 있는 독특한 문화예술이다. 특이하게 기계적 발명품에서 시작하여 예술이 되었다. 발명품의 하나였던 영사기가 예술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영화 속에 철학, 문학, 역사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고, 여느 고전문학 못지 않게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성찰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이 영화를 위대하게 만드는데 짧은 영화 한 편을 통해 얻은 감동과 통찰은 수십권의 두꺼운 책을 통해 쌓은 지식과 맞먹는다. 영화 속의 그런 통찰과 메세지는 대사를 통해 전해지는 경우가 많다. 영상과 함께 직관적으로 때로는 우회적으로 던져진 대사는 깊은 통찰과 감성을 전해주게 된다.


[스크린의 기억, 시네마 명언 1000]은 200편의 영화 속의 1000개의 삶의 사유와 통찰을 담은 명대사들을 정리해놓았다. 나이가 들고나서 어릴 적 봤던 영화를 다시 보거나 영화속의 명장면이나 명대사를 마주하면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영화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여 그때의 감동과 설레임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어린 시절 우리를 감동시키고, 열정을 불태우게 했던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시각매체인 영화는 주로 영화의 한 장면,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그것과 함께 심금을 울리는 한 마디의 대사도 시간이 지나도 오래도록 기억된다. 때로는 영화의 이미지보다 한 문장의 대사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때도 있고, 심지어 멋진 대사 한 마디가 영화 전체의 이미지를 대체할 때도 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명대사, 명언 들은 영화의 정체성을 규정하기도 하고, 영화 전체의 의미를 함축하여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서 영화의 스토리나 장면들은 잊어버려도 그 때 심금을 울렸던 한 마디의 대사는 여전히 가슴에 남아서 아련한 감정에 빠지게 하거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200편의 영화는 꿈과 자유를 찾아주는 명대사, 사랑이 싹트는 로맨틱 명대사, 인문학적 통찰력을 길러주는 명대사,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명대사, 지친 마음을 힐링해 주는 명대사,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명대사,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명대사, 내안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명대사 등 8가지 테마로 분류해놓았고 하나의 영화 마다 대여섯개의 대사들을 뽑아서 소개하고 있다. 200편의 영화는 70년대 영화부터 최근의 영화까지, 영어권·한국·일본·중화권 영화 등 시대와 국가별로 골고루 소개되고 있다.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와 주제도 함께 나와 있고,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명대사들의 선택 기준 같은 것들도 간략하게 나와있는데 말하자면 이런 내용의 영화이고, 이런 주제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영화의 의미를 보여주는 대사들이 이것들이다 라는 식이다. 대사들은 우리말과 함께 원어 대사도 함께 적혀 있어서 원어로는 어떻게 말했고, 우리말 번역과정에서 의미나 표현이 어떻게 달라졌지, 원뜻은 어떠했는지 등도 함께 알아볼 수 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200편의 영화들 중 본 것들도 많아서 영화를 보며 감동받고 영감을 받은 대사들과 비교하며 책을 읽게 된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다가 가슴에 와닿는 대사가 있으면 따로 적어놓는 노트가 있는데 내가 초이스해서 노트에 적어놓은 대사와 이 책에 소개된 대사들이 겹치는 것들도 꽤 된다. 가령 쇼생크 탈출에 소개된 대사 중 [나는 결말이 불확실한 긴 여행을 시작한 자유인이다]라는 모건 프리맨의 마지막 대사는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사람]라는 번역으로 개인 노트에 적어 놓았는데 번역에 따라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리고 반대로 개인적으로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대사들인데 저자는 그것을 선택하여 소개하고 있는 것들도 있어서 역시 사람의 관점이나 시각은 다양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기억에는 없는 대사들이지만 영화를 떠올리며 책의 대사들을 읽으니 그 느낌이 전해진다.


대사들 중엔 영화의 내용과 어우러져서 영화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중에 앞의 상황들이 켜켜이 쌓이다가 그 대사가 나와서 큰 의미를 가지며 빵 터지는 것이 있는데 이런 대사들은 영화를 보며 감정과 내용이 쌓이지 않으면 단순히 그 문장 자체만으로는 큰 의미와 별다른 감정을 가질 수 없다. 가령 양들의 침묵에서 감옥을 탈출한 한니발이 사건을 해결한 클라리스에게 전화를 걸어 '클라리스 양들이 비명을 멈췄나'라고 묻는데 이 대사는 영화 전편을 본 후에라야 소름이 돋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영화를 보지 않은 채 이렇게 쓰여진 문장만을 읽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도 알기 어렵고 별다른 감흥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렇게 영화를 봐야지 그 의미가 뜻깊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겠지만 영화를 보지 않더라도 영화의 내용과 그 속에 등장하는 대사를 접하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대사들도 많이 있다. 사실 책에서 타켓으로 하는 명대사들은 그런 종류의 것들이다.


천국에 가면 바다의 아름다움과 바다에서 바라본 석양을 얘기할 뿐이야

천국에서 주제는 하나야. 바다지. 노을이 질 때 불덩어리가 받로 녹아드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지.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불은 촛불과도 같은 마음속의 불꽃이야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좀 유명한 대사인데 그 자체만으로도 뭔가 근사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다면 이 대사가 정말 가슴을 울려서 끝내 바다로 가서 석양을 보지면 안 될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이 영화를 봤을 때 이 대사가 가슴에 꽂혔고, 데킬라 한 병을 사들고 바다로 가서 해가 지는 걸 봤던 기억이 있다.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는 만 년으로 하고 싶다

[중경삼림]

금성무가 헤어진 여자를 기다리며 여자가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매일 먹으며 내뱉는 말이다. 기억이 통조림이라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만약 사랑에 유효기간이 있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 물론 이 자체만으로 꽤나 멋진 말이다. 하지만 이 대사는 주성치의 선리기연에서 패러디되며 이 말이 얼마나 멋있는지,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지 제대로 알게 해준다.


영화는 현실이 아니야.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혹독하고 잔인하지

[시네마 천국]

이 대사를 보면 세상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며, 희망은 해피엔딩이 아니다는 정성일 평론가의 말이 떠오른다. 납득하기 어렵거나 믿기 힘든 일을 보면 우리는 마치 영화같다고 말을 하지만 언제나 현실은 영화를 넘는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마주하면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영화보다 더한 현실에 좌절하게 된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아가씨]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평가도 꽤 높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영화 전체보다 이 대사 한줄만이 기억에 남는다. 내 인생에도 이런 사람이 한 명 있었기 때문에 이 말에 전율이 돋을 정도로 비수처럼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방탄 노래에 비슷한 가사가 사용되면서 더욱 유명해진 것 같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니.. 정말 아찔할 정도로 매혹적이다.


자존심을 읽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 대사는 이 영화 뿐만 아니라 여러 바리에이션으로 영화, 소설, 만화 등 다양한 곳에서 사용된다. 특히 일본 만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자존심보단 자존감 쪽이 좀 더 공감이 되는 용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다니엘 블레이크는 벽에 자신의 이름을 스프레이로 쓰며 자존심을 나타내는데 내가 나로서 존재하며 스스로를 인정받을 수 있는 마음이란 결국 내 이름 앞에 떳떳할 수 있는 마음이 아니겠는가


실패한 적이 없는 놈은 다른 사람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구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실제로 실패한 적이 없이 승승장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실패해서 좌절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만 의지해서 세상을 보고 실패한 적 없는 관점으로만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결국 라때는~ 이런 말만을 반복하는 꼰대가 되는 것 같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실격이고 하나의 실패가 아닐까?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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