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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인문학 - 동물은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이강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1년 6월
평점 :

개는 가축을 지켰고, 고양이는 쥐를 소탕하고, 소는 노동력과 단백질 공급까지 모든 걸 아낌없이 내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소와 개는 인간에게 특별한 존재로 대접을 받았는데 흔히 동물과의 공존이라는 말을 하지만 사실상 인류는 일방적으로 개와 소를 착취하였고, 그 대가로 보호관찰을 받는 존재가 되었을 뿐이다. 어쨌건 인류는 오래전부터 동물과 함께 생활하며 동물을 여러 용도로 활용해왔다. 동물의 쓰임이라는 것이 단순히 소나 개처럼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돼지나 닭처럼 식용으로 사용하는 1차원적인 용도에 그치는 것이니라 동물들의 활약으로 인해 인류의 문화와 생활상이 변화거나 역사에 깊히 관여하여 역사적인 사건의 중심에 서는 일도 종종 있어왔다. [동물 인문학]은 동물들의 삶이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동물과 인간의 삶이 어떻게 연결됐고, 상호 작용을 했는지 등을 살핀다.
책은 총 4부로 나뉘는데 동물의 삶과 특질을 살펴보는 제1부 동물의 왕국과 인류의 역사 속에서 동물과 인류가 어떻게 공존하며 함께 살아왔는지를 다루는 제2부 동물과 인간이 만든 역사, 그리고 제3부 중국사를 만든 동물 이야기, 제4부 세계사를 만든 동물 이야기에서는 중국사와 세계사의 관점에서 동물이 역사의 현장에 관여한 사건과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저자의 기본적인 인식은 인간과 동물은 서로 분리되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동물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함께 해야할 운명공동체라는 것이다. 그저 부려먹고 착취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존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대항해시대라는 게임을 하다보면 자주 발생하는 상황인데 항해를 오래 할 때면 쥐 떼가 발생하고 식량이 감소한다. 기항해서 쥐 를 잡지 않으면 계속해서 식량이 감소하게 되고, 식량이 제로가 되면 결국 선원이 죽는 상황에 까지 이른다. 이런 이유로 항구를 멀리 벗어나지 못하므로 장거리 항해도 못하는데 이 때 고양이 아이템이 있으면 쥐를 잡아줘서 장거리 항해가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 현실이 반영된 설정인 것 같다. 고양이가 배에 머물며 쥐를 사냥한 덕분에 식량이 감소하고 전염병이 번지는 일을 방지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15·16세기의 찬란했던 대항해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동물들은 알게모르게 인류 문명에 크게 공헌했고, 인류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14억이나 되는 인구가 살다보니 중국에선 많은 인민들의 먹고사니즘, 식량자주권이라는 측면이 정치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화두인 모양이다. 그래서 '저량안천하; 돼지고기와 식량이 천하를 안정시킨다'는 말도 있다고 하는데 여기서 돼지고기와 식량을 따로 구분했고, 심지어 돼지고기가 식량보다 먼저 나온다. 그만큼 중국인들은 돼지고기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다. 돼지고기 공급이 부족하면 안되고, 돼지고기만 잘 먹이면 만사가 해피하다는 의미. 그래서 그런지 중국 인구가 전세계 돼지 소비량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니 정말 어마어마하게 먹어재끼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중국인의 돼지 사랑에 여러가지 악재가 터지게 된다.
미중 양국 간에 무역전쟁이 벌어지면서 중국은 미국의 농민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미국산 돼지고기에 높은 관세를 때렸고, 그것은 중국이 양돈농가와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부담이 넘어갔다. 돼지고기의 가격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돼지의 사료로 쓰이는 미국산 대두가 제재 품목에 들어간 것으로 인해 중국은 정말 크나큰 타격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백신도 치료약도 없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인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중국의 대도시에서 발생하며 중국 각지로 번져나갔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도 돼지 열병이 큰 문제가 되고 있는데 중국은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미중무역전쟁과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중국은 점차 다른 육고기의 수요를 늘리려고 하는 중이라는데 해결은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중국인에게 돼지고기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지 책에서는 챕터 두개를 할애하여 중국인과 돼지고기에 대해 썰을 풀어놓았다.
중국인에게 돼지가 중요하다면 한국인에게는 아마도 소가 그러한 위치에 있는 동물이 아닐까 한다. 지금이야 소의 위상이 많이 낮아졌지만 예전엔 큰 재산이고, 마치 가족과 같은 취급을 받던게 소이다. 인류가 가축을 키운 첫번째 이유는 단백질을 얻기 위해서이다. 채집시대에서 농경시대로 접어들면서 인류는 사냥으로 잡은 동물을 길러서 조달하는 방식을 고안해내었다. 그러나 소는 농사일을 돕는 용도로 활용했지 젖이나 고기 때문에 소를 키우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일을 하는 역우와는 별개로 고기와 젖을 생산하는 육우와 유우를 개량해서 키우게 되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역우와 육우, 유우는 생물학적으로는 같은 소지만, 경영학적으로는 쓰임새가 전부 다르다고 한다.
동물 인문학이라고 해서 단순히 동물의 역사와 인류의 문화적인 상관관계 같은 것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동물이 역사 곳곳에서 직접적으로 활약을 하고, 역사적인 포지셔닝을 취하는 내용까지 재미있게 담겨 있어서 너무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고 흥미롭게 역사 속의 동물들의 활약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