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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살로 읽는 세계사 - 중세 유럽의 의문사부터 김정남 암살 사건까지, 은밀하고 잔혹한 역사의 뒷골목 ㅣ 테마로 읽는 역사 5
엘리너 허먼 지음, 솝희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4월
평점 :

몇 해 전 북한의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독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독살이라고 해서 우리가 상상하는 사람들이 모르게 은밀하게 암살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21세기에 사람을 독살하다니 경악할 일이었다. 그 후에도 영러 이중스파이가 독살을 당했다거나 푸틴이 정적을 독살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뉴스가 간간히 들려왔다. 독살은 자연사로 위장할 수 있고 진범을 찾기가 어려워서 권력을 탐하거나 누군가에게 앙심을 품은 이들이 널리 사용하던 수법이었다. 특히 지금처럼 법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시신으로부터 독살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독살은 위장하기에 더없이 좋은 살해 방법이었고 군주제가 성립된 뒤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왕족이나 귀족, 유명 인사의 석연치 않은 죽음 뒤에는 어김없이 독살 의혹이 뒤따랐다.
앞서 말했듯이 과거에는 중요 인사들이 미심쩍은 죽음을 당해도 당시의 의학수준으로는 질병과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현대 과학으로 당시 사건을 들여다보면 죽음을 당한 이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밝힐 수 있다. [독살로 읽는 세계사]는 당대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독살 사건의 진상을 철저한 고증과 최신 법의학 지식을 토대로 탐구하는 책이다. 독살이라는 것이 실제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계획적으로 독을 먹였을 수도 있지만 당시의 생활환경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독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질병과 무지, 추잡함 그리고 살의에 의해 독살당한 당시의 사건들을 현재의 과학지식으로 밝혀보며 사실관계를 되짚어보고 더욱 정교하고 악랄해진 오늘날의 독살의 사례까지 살펴보며 현재 진행형인 독사의 역사를 살펴본다.
1인자를 시기 질투하는 2인자의 심리를 뜻하는 살리에르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살리에르는 궁중의 음악가였는데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만년 2인자의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평생 모차르트를 시기질투했다고 한다. 모차르트는 어릴 때부터 여러가지 병치레에 시달렸기 때문에 처음 열이 나서 자리에 드러누웠을 때만 해도 그다지 걱정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고열과 부종에 시달리다가 끝내 쓰러져 숨을 거두자 살리에르가 질투로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음모론이 나돌았다. 지금도 이 음모론을 믿는 사람이 많은데 당시 빈에는 모차르트와 같은 병으로 죽은 사람이 무척 많았다고 한다. 당시의 기록으로는 '급성 속립진열'으로 사망했다고 나오는데 정확히 어떤 병인지 알 수 없어서 118가지나 되는 가능성을 두고 연구를 했지만 남아있는 부검 기록만으로는 정확하게 병을 특정할 수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독살은 아닐 거란 것이다.
나폴레옹 역시 독살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대서양 한가운데 있는 세인트헬레나섬으로 유배를 간 나폴레옹은 어느 순간 살과 근육, 장기를 칼로 베어내는 듯한 복통을 느꼈고 이 통증은 몇 주 동안 지속되었다. 결국 작은 거인은 고통에 시달리다가 쥐가 들끟고 곰팡이가 핀 두 칸짜리 집에서 쓸쓸히 사망하였는데 부검 결과 당시 밝혀진 사망 원인은 악성궤양에 의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법의학 지식으로 연구한 결과 나폴레옹은 비소중독으로 사망한 것이라고 밝혀졌다. 어쩌면 나폴레옹이 탈출해서 재기할 것을 두려워한 수많은 정적 중 누군가가 독살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보다는 곰팡이가 핀 녹색벽지에 묻어 있던 비소 가루 때문이거나 머리에 바르는 비소가 포함된 물약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다. 이 역시 정치적 살인은 아니었다는 것.
보통 독살이라고 하면 누군가 그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은밀하게 치명적인 독을 먹여서 죽이는 모습이 연상되지만 모차르트는 누가 독을 먹인 것이 아니라 당시 생활환경의 영향으로 독에 중독되었고, 나폴레옹 역시 살인이 아닌 환경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렇듯 독살이라는 것은 누군가에 의한 독살이 아니라 당시의 생활 습관이나 환경에 의해 독에 중독되어 사망하는 일도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나폴레옹을 죽게 했던 바로 그 비소가 함유된 분을 파운데이션처럼 발랐고, 수은 성분이 들어간 파운데이션도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은 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독성물질이 함유된 화장품과 헤어용품을 사용하며 독에 중독되어 갔다. 때론 진보되지 못한 의학 지식 때문에 의사들이 사람 잡는 처방을 내려서 사람이 독에 중독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중세 유럽에서는 화장실과 위생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배설물을 아무렇게나 처리했다고 한다. 오물들은 그대로 강과 연못으로 흘러들어가서 강과 연못을 오염시켰고, 화장실은 오물이 넘쳐서 집안까지 밀려들어왔다고 한다. 심지어 왕궁 내에서조차 계단, 문 뒤 등 눈길이 닿는 곳마다 배설물 더미가 쌓여 있을 정도로 아무 곳에서나 배설을 했다고 한다. 왕궁이 이럴 정도니 궁밖의 상황은 말로 하지 않아도 뻔하다. 궁 내에 화장실이 있어도 남자들은 그걸 이용하지 않았다고 하니 당시 남자들의 인식이 어떠했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다. 또 한때는 교회에서 목욕을 죄악시 하면서 목욕을 못하게 하기도 했었는데 아무데나 배설하고, 제대로 씻지 않으니 당시 사람들이 온갖 병에 걸렸을 것이라는 건 쉽게 유추할 수 있고 이것이 독살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생활 환경이 사람들을 독살로 몰고 갔다는 내용이 매우 흥미롭다.